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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2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13-2018 ㅣ 골든아워 2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교수의 에세이 2편
1편이 저자가 외상외과로 임용된 2002년부터 2013년까지의 기록.
2편은 2013년부터 2018년까지의 기록
막을 수 있었던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도 왜 우리는 변하지 못하는가?
-1편을 통해 단 한 생명도 놓치지 않으려는 의료진과 관계자들의 분투를 기록했다.
그 기록은 2편으로도 계속된다.
여전히 저자는 자신의 인생을 비루하다고 표현하고 있고, 여전히 선진국 수준의 시스템은 갖추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소위 높은 양반들이 정치질에 외상외과는 좌초의 위기 속에 노출되어 있었다.
헬리콥터는 바람을 깎아내며 그 반동으로 솟아오르고, 앞으로 나아간다.
어쩌면 나도 중증외상센터도 헬리콥터가 바람을 깎아 나아가듯, 내 동료들을 깎아가며 여기까지 밀어붙여왔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않았고, 힘들어도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았다.
간신히 구축해온 선진국 표준의 중증외상센터를 유지하기 위해 말없이 버티다 쓰러져나갔다.
결국 이 중증 외상센터 바닥은 내 동료들의 피로 물들었다.
-중증외상 환자가 발생하는 대형 사고는 연이어 터지고 있었지만 제도적인 준비는 항상 더디었다. 고위급의 결심에도 실무진으로 내려오면 희미해지다가 사라지곤 했다.
저자에게 희망은 사라지고 있었다.
동료들의 희생에 항상 죄스러움을 느끼는 저자는 스스로 사라지기를 바라기도 하였다.
내가 외상외과라는, 한국에는 정착할 수 없어 보이는 괴이한 일을 할 때마다 나와 연관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문제를 알고도 그만두지 못했고, 문제의 본질이 다른 곳에 있음을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했고,
문제의 본질이 다른 곳에 있음을 알면서도 권한 밖의 일이었으므로,
나는 늘 진퇴양난이었다.
-그가 지켜내고자 하는 삶의 원칙들. 그 속에서 그는 산화하고 있다. 우리는 그에게 너무나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오락프로그램에서 유행했던 그 말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이 너무나 싫다.
왼쪽 눈의 안저 촬영 사진을 나는 한동안 멍하니 보았다.
최근들어 헬리콥터 안에서 고글을 자꾸 닦아내던 것을 생각했다.
며칠 전 직원 식당에서 좋아하는 반찬이 나왔을 때 젓가락이 허공을 헤집었던 것을 기억했다.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허탈한 웃음을 애써 참았다.
10분 가까이 멍하니 않아 있었다.
오른쪽 어깨가 부서져나갔고, 왼쪽 다리도 성하지 않은데 이제는 한쪽 눈도 멀고 있구나…….
돌보지 못한 몸이 깎여 나가고 있었다.
-2014년 우리가 기억하는 큰 아픔이 터졌다.
기이하리만큼 움직이지 않았던 구조대와 구조헬기들.
사고 현상의 상공을 비행했던 이국종 교수팀의 헬기는 당국의 명령으로 회항할 수밖에 없었다. 구조대원들과 의료진의 깊은 무력과 좌절이 분노가 되었다.
세월호 침몰을 두고 ‘드물게’ 발생한 국가적 재난이라며 모두가 흥분했다.
나는 그것이 진정 드물게 발생한 재난인지, 드물게 발생한 일이라 국가의 대응이 이따위였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이든 국가든 진정한 내공은 위기 때 발휘되기 마련이다.
내가 아는 한 한국은 갈 길이 멀어 보였고, 당분간은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에 힘이 빠졌다.
한 지방자치 단체에서 1,800억 원을 들여 대규모의 안전체험 테마파크를 지어놨다.
하루 평균 입장객은 350여 명, 연간 적자 규모는 15여억 원이라고 했다.
1,800억 원이면 중증외상센터 전체건립 비용을 상회하며, 소방항공대 두세 곳을 창설할 수 있는 금액일 것이다.
세월호와 증증외상에 대한 이슈가 불거진 이래로 안전과 외상을 테마로 수많은 것들이 벌어지고 있으나, 나는 그 핵심가치를 알 수 없었다.
-2권 말미엔 부록으로 ‘인물지’가 실려있다. 중증외상센터 건립에 생의 일부분을 바친 사람들에 대한 인물평이 쓰여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소방관계자, 군관계자, 정치인 등등.
그러나 1, 2권을 통틀어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 있다.
이국종 교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
아내나 자녀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사실 의료비를 적절히 투입했을 때 가장 극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는 중증외상이다.
그것이 세계 의료계의 정설이지만, 한국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하긴 한국의 어떤 분야가 그렇게 세계적인 표준을 좇아가겠는가?
해외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몇몇 민간 기업을 제외하면 한국 사회의 그 어느 분야도 그렇게까지 세계 표준을 추구하지 않는다.
다들 제 살 길 찾기에만 고도로 특화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나는 그동안 쓸데없는 짓을 해온 것만 같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드라마 장르가 의학 드라마였다. ‘하얀 거탑’이나 이국종 교수가 모티브였다는 ‘낭만닥터 김사부’와 ‘골든타임’ 같은.
천재적인 의술을 발휘하는 주인공이 온갖 역경 속에서도(주로 정치적 술수나 권력의 유혹 등) 의사로서의 정의를 지키며 승리한다는 스토리.
이제는 의학 드라마를 보지 못할 것 같다. 너무나 처절하고 먹먹하게 현실과 싸우는 이국종 교수를 보았기 때문이다.
헬리콥터의 로터 소리는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를 이승으로 끌고 오는 소리였으나, 주민들에게는 정적을 깨뜨리는 소음에 불과했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에서조차 주거지역에 인접해 병원이 위치한 경우가 많았지만, 병원에서 출동하는 헬리콥터 소음으로 민원이 제기되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미국 메릴랜드주의 외상센터에는 연간 2,500여 명의 외상환자가, 영국의 로열런던병원 외상센터에는 연간 1,500여 명의 외상환자가 헬리콥터로 실려온다.
일본 오사카나 지바의 외상센터에도 헬리콥터로 실려 오는 환자가 연간 1,200여 명을 상회한다.
민원에 시달리는 우리의 항공 출동은 기껏 연간 300회에 불과했다.
이런 식이라면 한국에서는 외상센터를 운영할 수 없다.
항공 전력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초단위로 죽음의 문턱을 넘는 중증외상 환자들을 살려낼 수 없다.
-선진국의 시스템. 이국종 교수를 절망시키고 있는 그것.
우리가 만들어야만 한다.
우리가 입 밖으로 뱉어내는 인간 존엄성과 자유와 평등을 지키는 일은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길바닥에서 죽게 만드는 일을 멈추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