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ㅣ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흐름출판 서포터즈 12기로 선정되어 첫 번째 활동이 바로 이 책 ≪골든아워≫ 서평 활동이다.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죽음 직전에 몰렸던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과 이국종 교수의 에세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이국종 교수는 중증외상치료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혜성처럼 나타난 스타였다. 생사의 기로에서 죽음쪽으로 기울었던 환자들은 빛나는 수술로 살려내는 뛰어난 외과의사. 똑소리는 나는 정책이나 주장을 펴내는 한국 최고의 엘리트 의사.
이상이 이국종 교수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였다.
내가 ≪골든아워1≫을 펴보기 전까지의 이미지.
이국종 교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나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상이군인의 자녀로 어렵게 성장한 어린 시절.
마음 깊이 의지했던 친구를 따라 신설의과대한인 아주대학교 의대에 지원하고 외과를 선택한 이유.
의대를 마치기전 현역병으로 입대를 해야만 했던 집안 사정.
그리고 해군에서 배운 인생의 원칙.
“원칙을 지켜야 한다.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옳은 것을 주장하며 굽히지 않는다, 안 될 경우를 걱정할 것 없다, 정 안 되면 다시 배를 타러 나가면 그뿐이다. 나쁜 보직을 감수할 자세만 되어 있으면 굳이 타협할 필요가 없다. 원칙에서 벗어나게 될 상황에 밀려 해임되면 그만하는 것이 낫다.”
그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외상외과’를 선택했다.
‘중증외상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나의 업(業)인데도 환자들은 자꾸 내 눈앞에서 죽어나갔다. 살려야 했으나 살릴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필요한 것은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병원에는 그 ‘시스템’이 없어 계속된 죽음이 이어진다.
그 시스템을 찾으러 UC 샌디에이고 외상센터에서 단기 연수를 받고, 영국의 로열런던병원 외상센터에서 연수를 받으며 그들의 ‘시스템’을 들여오고자 했다.
그래야 이 병원 저 병원을 오가다 허무하게 스러지는 생명들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그는 ‘삶의 보편성으로부터 먼 일상과 상식 밖의 시선까지 버텨야 하는 진흙탕’에 뒹굴게 되었다.
이때 이국종 교수 밑에서 외상외과 수련을 받고 싶어 한다는 정경원이 등장한다.
이 책의 책 제목을 넘기면 나오는 ‘정경원에게’
나는 그 이름이 이국종 교수의 아내인줄 알았다.
정경원은 이국종 교수의 처절한 현실에 대한 설명에도 ‘그리스토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외상외과를 선택한다.
“5월에 정경원이, 9월에 김지영이 오면서 팀의 전력은 향상됐으나 앞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가진 것이 몸뿐인 환자들은 몸을 써서 밥벌이를 하다 으스러져 밀물같이 밀려왔고, 우리는 밀어닥치는 파도에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새로 합류한 팀원들과 내가 열심히 일해서 살려낸 환자의 수가 늘어날수록 적자는 정비례해 커졌다. 괴이한 일이었다.
나를 향한 따가운 눈초리와 뒷말은 여전히 무성했다. 팀원들이 있어서 혼자 버티던 날보다는 나았으나 여전히 무참한 날들이었다. 일상이 핏물과 비난의 파도 속에 있었다.”
공사판의 산업재해, 도로의 교통사고, 형사사건의 피해자, 가정폭력의 피해자 등등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외상외과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병원 내의 지원은 여전히 없었다.
“해가 지날 때마다 새롭게 추가되는 200명 정도의 새로운 환자 명단과 협의 진료 실적이, 내가 세상에서 일을 하면서 존재했다는 유일한 흔적이었다. 적어도 환자 명단만 보면 병원 내 복잡한 정치적 상황이나 정부의 정책 방향에 신경 쓰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나는 정경원과 주위 사람들의 희생으로 때로는 부축받고 때로는 떠밀리듯이 이 일을 계속 지속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몸서리가 쳐졌다.”
2011년 1월 아덴만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삼호주얼리호가 피랍됐다.
피랍된 배의 선장은 고의적으로 선박의 항로를 지연시켰고 배의 엔진도 일부러 망가뜨렸다.
조영주 함장은 최영함을 이끌고 선박을 따라잡았다. 5시간의 교전.
여덟 명의 해적이 사살됐고 다섯 명은 산목숨으로 잡혔다.
21명의 한국인 선원은 전원이 살아서 구출되었다.
그러나 석해균 선장은 해적이 쏟아부은 AK-48 총탄에 부셔져 있었다.
오만의 술탄카부스왕립병원에서의 1차 응급수술과 환자의 상태 악화.
이국종 교수는 정경원과 김지영과 함께 오만으로 출국.
오만 도착 후 2차 수술. 그리고 다시 상태 악화.
죽어가는 선장의 숨을 붙여 데리고 돌아가기 위한 에어 앰뷸런스를 마련하기 위한 비용 38만 달러. 우리의 행정절차를 모두 따르면 선장을 죽게 될 것으로 판단한 이국종 교수가 싸인.
그 이후는 매스컴을 통해서 우리가 아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병원 측에서 언론을 상대로 브리핑을 했다. 나는 언론과 접촉하지 않았다. 병원은 인터뷰 중에 ‘아주대학교병원이 지난 10년간 중증외상 분야를 집중 육성해왔다’라고 했다. ‘10년’과 ‘집중 육성’ 사이에서 나는 씁쓸해졌다. 내가 겪어온 10년과 병원이 말하는 10년은 같지 않았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병원 안팎으로 나를 향해 겨눈 무수히 많은 칼들이 날을 바짝 세우고 희번덕거렸다. 나는 한낱 지방 병원의 외상외과 의사였다. 나의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칼을 겨누게 하는지 좀처럼 헤아려지지 않았고 헤아리고 싶지도 않았다. 사는 것의 지리멸렬함이 지겹고 지난했다. 환자들이 쏟는 핏물이 나를 완전히 삼켜버리기를 바랐다. 내 삶에 대한 의지는 소멸에 가까웠고, 그저 나는 관성적으로 살아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생(生)’은 그 자체로 의지를 지녀, 사경을 헤매던 석 선장의 의식은 점차 분명하게 이 세계로 넘어오고 있었다.”
2012년 정부 차원의 권역별 중증외상센터 설립 사업 선정에서 아주대학교병원은 탈락했다. 예견된 수순이었다.
“병원 내에 돌고 있는 ‘탈락’에 대한 수많은 말들 속에서 탈락의 원인은 오롯이 나였다. 내가 중앙정부와 학회에 적이 많아서라고 했다. 이런 말들의 대부분은 핵심 보직교수들에게서 쏟아져나왔다. 원내 사람들은 나를 볼 때마다 그 진위 여부를 알고자 물어댔으나 나는 입을 닫았다.”
“병원은 앞으로 있을 ‘제2차 중증외상센터 사업 공모’ 지원을 원하면서도, 우리 팀이 그때까지 버티는 데 필요한 지원은 하지 않았다.
중환자실 자리가 없어 여전히 응급실 급성구역 병상을 얻어 써야 했고, 팀원들은 불가능한 당직 일정과 환자 부담을 버텨내며 헬리콥터에 올랐다. 모두가 극심한 악조건 속에서 일하고 있으나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병원의 보직자들은 헬리콥터의 소음을 여전히 문제 삼았고, 별것 아닌 환자들로 쇼를 한다는 말까지 뱉어냈다.”
저자는 <서문>에서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를 언급했다. 김훈 선생의 작품에서의 이순신 장군의 외로움을 읽었던 나는 ≪골든아워1≫을 읽어 내려가며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오롯이 감내하면서도 알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그를 보았다.
그의 삶의 원칙과 그 원칙을 비웃는 세상의 모든 권세들 간의 전투 기록에서 이국종 교수와 그의 팀은 희생당하고 무너지고 있다.
목숨을 걸고 왜군과 싸운 이순신이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전투마다 승리했던 이순신 장군과는 다르게 이기고 지는 전투가 잦은 이 전쟁에서 이국종 교수팀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그의 팀이 더 이상 다치지 않기를 기원한다. 어서 선진국 수준의 시스템이 완성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