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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06년 3월
평점 :
정호승,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비채, 2006.
정호승,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비채, 2013.
2월 한 달은 귀에 문제가 있어서 아쉽게도 책을 별로 읽지 못했습니다. 눈이 아픈 것도 아닌데, 귀가 아픈 것과 독서를 하는 것 사이에 무슨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귀에는 우리 몸의 균형과 평형을 감지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메니에르병이라고 해서 여기에 이상이 생겨 평상시에도 머리가 심하게 어지럽고 멀미 상태로 구토를 유발하는 증상이라 일상생활조차 힘겨운 시간이었습니다. 치료가 어렵거나 위중한 병은 아니지만, 고통을 겪는 환자의 처지에서는 매우 불편하고 기분 나쁜 병입니다. 의학에서 발병의 뚜렷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스트레스를 피하고 카페인을 줄이고 저염식을 해야 한다고 하네요. 아무튼, 귀는 소리를 듣는 본질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매우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이러한 내 귀에 좋은 소리를 많이 접해야 하겠다는 결심도 하게 되었고요.
오랫동안 특정(?) 종교에 관심을 두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매주 일요일이면 빠짐없이 모임에 참여하고 예배를 드렸는데요. 물론 모든 종교가 마찬가지겠지만, 한 가지 특징은 모두가 좋은 말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일주일간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날 하루 그곳에서만큼은 선한 마음으로 서로 인사하고, 격려하고, 축하하고, 위로하고, 칭찬하는... 어쩌면 신이 있어서 복을 내려주는 것보다도 공동체 안에서 긍정의 대화를 나누며 힘을 얻고 용기를 얻는 것은 아닌가? 라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아브라카다브라
마술의 주문인 아브라카다브라는 히브리말 'Habracadabrah'에서 나온 것으로 '말한 대로 될지어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즉, 말로 나타낸 일들이 실제로 이루어지리라는 뜻이다. 중세에는 열병을 다스리기 위한 주문으로 이것을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손재주 마술사들이 이것을 마술의 주문으로 차용하게 되었다. 그들은 마술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즉 관중이 곧 멋진 구경거리를 보게 될 찰나(말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에 이 말을 사용하였다.(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세욱, 임호경 역,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열린책들, 2011. p.339)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말에는 어떤 힘이 있고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치에 맞는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사소한 말실수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짐작하기를 생각이 말을 지배한다고 여기지만, 최근의 어떤 연구에서는 생각이 말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말이 생각을 지배한다고 합니다. 즉 사람은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호승 시인은 이러한 원리를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는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와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라는 두 권의 책을 통해서 말의 도구를 사용하여 희망과 용기, 격려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두 권의 제목이 매우 흥미롭고 인상적입니다.
1)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가 아버지처럼 큰 힘과 용기를 줄 때가 있습니다. 책에서 읽은 한 줄의 글귀가 어머니처럼 큰 위안과 위로를 줄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말과 구절들을 만날 때마다 늘 마음속에 새겨두거나 시작노트 한 귀퉁이에 메모해두곤 했습니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꺼내어 마음속에 새기거나 읽으면서 제 인생의 소중한 물과 밥으로 삼았습니다.(p.6)
글을 쓰는 작가의 기본 소양은 좋은 글을 많이 읽고, 그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글을 수집하는 것일까요?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는 작가의 삶 속에서 만난 힘과 용기를 주는, 위안과 위로를 주는 메시지를 메모해 두었다가 한 권의 책으로 펼쳐낸 작품입니다. 실제로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원하지 않는 실패를 경험합니다. 처음으로 용기 내어 사랑을 고백했으나 단숨에 거절당한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시험을 잘못 보아서 1년을 다시 준비해야 했고요.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제출했으나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때도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헤어짐이 있었고, 때로는 억울한 누명으로 책임을 떠안기도 했습니다. 기나긴 인생의 여정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당시에는 왜 그렇게 힘들고 좌절을 느껴야 했는지... 그리고 그럴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가족, 친구, 선배의 따뜻한 말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책장을 하나하나 넘길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 곡선으로 직선을 그려라,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지 말고 품에 안고 가라,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하라, 왜 가장 원하지 않는 일에 인생을 낭비하는가, 오늘이 지나면 다시 못 볼 사람처럼 가족을 대하라,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목표를 세우면 목표가 나를 이끈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매일 죽으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단 한 번밖에 죽지 않는다, 마지막이라고 느꼈을 때 30분만 더 버텨라...
산문 형식으로 쓰인 67개의 잠언은 작가의 삶이 녹아 있고, 로마 가톨릭을 배경으로 하는 종교의 메시지가 있으며, 부처의 가르침과 현자의 격언이 있고, 작가의 시와 인생에서 얻은 교훈이 있습니다. 시인의 수려하고 유연한 글솜씨는 전반적으로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와 위로의 메시지를 던지고, 때로는 거친 파도처럼 밀려와 인생의 항로를 이끌기도 합니다. 이 책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이제라도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지금 항상 생각하라
나의 미래는 지금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나의 미래는 나의 미래가 결정짓는 게 아니라 나의 오늘이 결정짓습니다.(p.41)
대패질하는 시간보다 대팻날을 가는 시간이 더 길 수도 있다
박완서 선생도 마흔이 넘어서야 작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일찍 시작했다고 해서 반드시 일찍 이룰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일찍 핀 꽃이 튼튼한 열매를 맺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얼마만큼 오랜 시간 동안 참고 견디며 얼마나 정성껏 준비했느냐가 중요합니다.(p.81)
지갑에 돈을 가득 채우는 것보다 방안에 책을 가득 채우는 게 더 낫다
어쩌면 인생은 책입니다. 인생이라는 책은 단 한 번밖에 읽지 못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마구 넘겨버리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열심히 밑줄을 그어가며 읽습니다.(p.131)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p.155)
남의 흉은 사흘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내가 사는 게 아닙니다. 내 인생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p.201)
목표를 세우면 목표가 나를 이끈다
목표를 가질 때 잠재능력이 일깨워집니다. 저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시인이 되었습니다. 평생 시를 쓰면서 살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시를 쓸 수 있습니다.(p.283)
2)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이 책에 있는 '한마디'는 우리보다 앞서 살아간 이들의 인생의 과정이자 결과의 소산입니다. 누구의 인생에나 해당되는 말씀의 보석이며, 인생이라는 사막의 우물입니다. 이 고단한 인생의 사막에서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런 말씀의 우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우물에서 인생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지혜와 깨달음을 얻으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물론 이 한마디 말씀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말씀을 통해 내 인생을 어떻게 형성하느냐 하는 실천이 더 중요합니다."(p.4-5)
경제의 불황과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맞물려 있는 가운데 최근 몇 년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스스로 멘토임을 자청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책이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습니다. 어느 한 편에서는 사회 구조와 국가 시스템의 문제를 왜 개개인의 문제로 몰아 모두가 더 치열한 경쟁의 늪에 빠지게 하느냐... 라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현상만을 보면 요즘에는 힐링이 대세인 듯합니다. 하지만 과열된 힐링의 열풍 속에서 정말로 치유를 얻는 젊음은 얼마나 될까요? 현실과 동떨어진 메시지는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고 절망의 벽 앞에서 진짜로 필요한 것은 용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는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에 이어서 7년 만에 나온 후속 작품입니다.
가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해보세요, 상처 많은 나무가 아름다운 무늬를 남긴다,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은 있다...
전작 이후 7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과학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으나 인간성은 오히려 후퇴하여 인생은 고단해졌습니다. 경제는 지속해서 성장했으나 주머니 사정은 여전하여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일자리가 없는 20대는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하여 3포 세대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고요.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순탄치 않은 인생의 모퉁이에서 만난 한마디의 말은 76개의 잠언이 되어 보다 폭넓고 세밀하게 다가와 용기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책 속에는 사제의 강론, 현자의 가르침, 철학가의 강의, 문학가의 이야기, 시인의 노래, 그리고 인생의 선배가 들려주는 조언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을 눈으로 즐기고 생각에 머물기보다는 하나하나 작은 실천으로 내 인생 변화의 밑 걸음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모든 벽은 문이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에게도 '해리포터 시리즈'는 인생의 벽 앞에서 작가 자신이 연 용기의 문이었습니다. 이혼 후 어린 딸을 데리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벽 앞에 서 있었지만 그녀는 해리포터를 씀으로써 벽을 문으로 만들었습니다.(p.21)
사진을 찍으려면 천 번을 찍어라
저는 이제부터라도 시를 한 편 쓰더라도 천 번을 써야 합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노력입니다.(p.66)
눈을 짊어지고 우물을 메우는 것처럼 공부하라
"아들아, 젊을 때 하는 공부도 이와 같다. 눈을 짊어지고 우물을 메우는 것처럼 열심히 공부해라. 아무리 힘들어도 노력엔 끝이 없는 법이다. 우물에 흙을 져다 부으면 우물이 없어지지만, 우물에 눈을 져다 부으면 우물은 그대로 있다."(p.84)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시 많은 나무에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 가시가 원망스럽습니다. 가시만 없다면 저 꽃이 더 아름다울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가시가 증오의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가시 많은 나무에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면 장미가 더 아름답게 느껴지고 감사의 존재가 됩니다. 아름다운 장미가 가시를 가졌다고 슬퍼하는 마음이 가시가 장미를 가졌다고 감탄하는 마음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p.122-123)
산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내가 산에게로 가면 된다
무엇이든지 간절히 원하는 게 있으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그것을 향해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은수자는 정말 산이 움직여 자기한테 온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믿음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들에게 '믿음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믿음을 향해 떠나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산이 내게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산을 찾아가 나를 맡기는 것, 그게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p.190)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독서하는 습관이 더 중요하다
사형을 집행하기 전에는 사형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관행이어서 사형집행인이 안중근 의사에게 "마지막 소원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안 의사는 "5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는 "아무것도 남길 유언은 없으나 다만 내가 한 일은 동양평화를 위해 한 것이므로 한일 양국인이 서로 일치협력해서 동양평화의 유지를 도모할 것을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5분 동안 읽던 책의 마지막 부분을 다 읽고 어머니가 직접 지어주신 하얀 수의를 입고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p.255-256)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아무도 슬퍼하지 않도록
그대 잠들지 말아라
마음이 착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지닌 것보다 행복하고
행복은 언제나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곳에 있나니
차마 이 빈손으로
그리운 이여
풀의 꽃으로 태어나
피의 꽃잎으로 잠드는 이여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그대 잠들지 말아라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p.374-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