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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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 권영주 역,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비채, 2012. 

Mitsuda Shinzo, [MAJIMONO NO GOTOKI TSUKUMONO], 2006.

 

  몇 년 전 일본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아는 작가가 거의 없어서 무턱대고 오쿠다 히데오와 히가시노 게이고만을 사들인 적이 있습니다. 히데오는 처음으로 만난 작가이고, 그의 작품을 통해서 일본소설에 매료되었다고 할까요? 유쾌함으로 사회를 풍자하는 메시지가 좋아서 금세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게이고는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이라는 입소문과 함께 당시에 영화 <백야행>(박신우 감독, 2009.)의 개봉으로, 그의 작품이 TV 드라마와 영화로 다양하게 제작되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아직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익숙하지 않던 시절이라 신선하게 다가왔고요. 아무튼, 지금까지 두 작가의 작품을 제일 많이 읽고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인터넷 카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작가에 관한 정보가 무엇보다도 절실했습니다. 히데오와 같은 글솜씨에 게이고와 같은 치밀함이 있는... 아니, 일본소설을 좀 더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원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알게 된 이름 중의 하나는 바로 '미쓰다 신조'입니다. '본격 호러 미스터리'라는 특이함으로 그의 작품을 읽은 대부분은 공포의 전율과 추리의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호평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위시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드디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염매(厭魅)

  1) 가위 누르는 귀신

  2) 짚으로 만든 인형(제웅)을 매개로 삼는 주술의 일종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병에 걸리게 하려고 귀신에게 빌거나 방술을 쓰는 행위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은 조금은 예사롭지 않은 제목인데요. 전후 시대를 배경으로, 옛 화족 가문의 출신임에도 기이한 이야기를 좋아해서 여기저기를 여행하며 괴담을 수집하는 소설가 '도조 겐야'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첫 번째입니다. 시리즈의 제목은 '... 하는 것'이라는 패턴을 보이는데, 이미 국내에는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비채, 2010.)과 [산마처럼 비웃는 것](비채, 2011.)이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도조 가문이 과거 도쿠가와가의 남계 자손이며 그 때문에 메이지 2년 행정관 포고(포달)로 화족 계급이 탄생했을 때 공작으로 서임되었다는 사실을 안 다음이었다...

  아버지 말로는 화족은 가문에 의한 것과 국가에 대한 공훈에 의한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가문에 의한 화족은 옛 황족이나 궁중 귀족, 제후, 승려와 신관, 충신 등의 집안이 대상이다. 국가에 대한 공훈의 경우는 정치가, 관료, 학자, 기업가 등의 문공과 군인 등 무공으로 나뉜다. 작위는 당시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이렇게 다섯 개로 나뉘었다고 하니 도조가가 얼마나 명문인지 알 수 있다.

  하기야 도조의 아버지 가조는 젊었을 때부터 특권 계급을 싫어했던 모양이다. 이윽고 장남인 자신이 호주가 되어 공작의 지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현실에 반발해, 집을 뛰쳐나오다시피 해서 오에다 다쿠마라는 사립탐정의 제자로 들어갔다. 그 때문에 도조가에서 의절당했는데, 그게 지금은 명탐정으로 유명한 도조 가조라는 말을 듣고 나도 놀랐다...

  그런데 그 아들인 겐야는 아버지의 탐정사무소를 이어받기 싫어 방랑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니 하여간 이상한 부자다. 걷는 길은 달라도 부자가 닮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p.255-256)

 

  괴이담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첫번째 버릇과 이따금 괴이를 해석하고 싶어하는 두번째 버릇 그리고 꼭 합리적 해결을 본다는 보장은 없다는 세번째 버릇(이를 버릇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는 결국 이 버릇들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터무니없이 기괴한 사건에 말려들어 심지어 위험에 처하곤 한다.(p.179)

 

  비단 미스터리뿐만 아니라, 모든 소설에서 매력있는 주인공의 설정은 글을 읽는 독자에게 커다란 재미를 선사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미스터리와 스릴러에서 그 효과는 더 크다는 생각이고요.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의 독특한 캐릭터는 모든 사람의 이목을 끌 만합니다. 명문가의 출신으로 가업을 이어가기보다는 변화의 바람인 청바지를 입으며, 괴담이라면 앞뒤를 가리지 않아 때로는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결국에는 합리적으로 괴이를 추리하고 해석하여 의문을 하나씩 해결해 나갑니다.

 

  마귀 계통인 가가치 집안과 마귀 계통이 아닌 가미구시 집안이라는 대립하는 두 구가(舊家), 신령에게 납치됐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불가사의한 상황에서 사라진 아이들, 인습의 의례 중 죽으면 산신령이 될 수 있다고 설득하는 노파, 생령을 봐서 그에 씌었다며 시름시름 앓는 소녀, 염매(厭魅)가 나왔다고 수군거리는 마을 사람들, 죽은 언니가 돌아왔다며 두려워하는 동생, 흉산을 침범했다가 공포 체험을 한 소년,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에 쫓기는 무녀.

  그리고 내가 마주친, 뭐라 말할 수 없는 불가해한 상황에서 잇따라 끔찍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과 그들에 얽힌 소름 끼치는 수수께끼들.(p.8)

 

  소설은 가가구시촌이라는 어느 외딴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비교적 작지 않은 공간이지만, 본격 미스터리답게 때로는 밀실의 환경이 되기도 하고 미로의 역할을 하여 사건의 의문을 증폭시킵니다. 마을 안에는 대립하는 두 개의 가문이 있는데, 흔히 윗집이라고 부르는 가가치가와 큰신집이라고 부르는 가미구시가입니다. 두 집안은 마귀 계통과 마귀 계통이 아닌, 흑으로 상징되고 백으로 상징되는, 대대로 쌍둥이 무녀를 배출하여 전통을 고수하고자 하는 사람과 이제는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사람... 그리고 호러 미스터리답게 허수아비신과 뱀신의 전승과 초자연적인 신비현상이... 서로 공존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장벽을 쌓은 사람들 사이에서 의문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우연히 괴담 수집을 위해 마을을 찾은 도조 겐야는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고요.

 

  괴담을 찾아 여행하며 환상소설을 쓰는 주인공은 어쩌면 호러 소설을 쓰는 작가 자신을 작품 속에 투영해 놓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리즈의 처음이라서 아직 구체적인 돌출행동은 보이지 않지만, 평범하지 않은 출신 배경과 독특한 생활 방식은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합니다. 호러와 미스터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의 심리를 자극하는 글솜씨는 과연 미쓰다 신조라는 이름이 허상이 아님을 잘 알려주고 있고요. 그리고 혀를 내두르게 하는 방대한 사전조사는 작품을 쓰는 작가의 열정이 보이는 듯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인생의 산전수전을 겪을 대로 겪어서인지, 아니면 호러 장르에 관한 알레르기(?) 때문인지...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무서움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한 가지 사건을 두고 소설의 진행과 개인의 일기, 작가의 취재노트와 등장인물의 수기는 입체적인 구성처럼 보이나 이야기의 전개가 느려서 조금은 지루한 느낌도 들었고요. 아무래도 호러는 저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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