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구 - 그때 우릴 미치게 했던 야구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김대환 옮김 / 잇북(Itbook)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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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게마츠 기요시, 김대환 역, [열구], 잇북, 2010.

Shigematsu Kiyoshi, [NEKKYU], 2002.

  야구에 관한 기억...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이전에는 모두가 고교야구에 열광하는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고향의 선수가, 출신 학교의 팀이 서울에 올라와 결승전을 치르는 날에는 야구장에서 동창회와 동문회가 같이 열리기도 하고... 심지어 후배 선수에게 잘하라는 응원과 함께 무작정 고기를 사 먹여서, 요즘과는 다르게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던 때라 갑작스러운 폭식으로 배탈이 나서 경기를 망쳤다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항상 '역전의 명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며 역전 야구의 묘미를 알게 해준 군산상고... 아무튼, 그 옛날 아마추어 야구와 함께 웃고 함께 아쉬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먼 저편의 꿈이라도 좋다. 실제로는 가지 못해도 상관없다. 고시엔이 있다. 확실히 그곳에 있다. 그걸 믿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p.246)

  프로야구가 출범한 해에는 이다음에 커서 어른이 되면, 우리는 쉽게 야구선수가 되는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동네를 가도 한적한 골목이나 빈 공터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박철순이 되어 공을 던지고 김우열, 백인천, 이만수, 김봉연, 김용희... 가 되어 방망이를 휘두르며 시간을 보냈다. 내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어렸을 때의 야구를 향한 열정이 있었을 것이다. 조금 더 자라나서 우리는 엘리트 체육으로 선수가 되기 위한 스포츠는 있어도 취미나 또 다른 즐거움을 위한 야구는 플레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생활 체육으로 청소년 시절의 스포츠 활동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듯하다. 시게마츠 기요시의 [열구]는 고시엔 출전을 꿈꾸는 고교 야구의 열정과 성인이 되어 중년의 나이를 바라보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혼슈의 서쪽 끝에 있는 인구 10여만 명의 항만도시이자 성시인 스오 시가 온통 들썩였던 20년 전 여름.

  구제도의 중학교부터, 아니 정확하게는 한코부터 이어져 내려온 100여 년 전통을 자랑하는 현립 스오 고교, 사람들은 슈코라 부르는 그 학교가 여름의 고시엔 대회 지역 예선을 거짓말처럼 연전연승하고 있었다.(p.16-17)

  야구부실에 있던 여덟 명 모두가 어느새 캄캄한 그라운드에 나왔다. 두 사람씩, 네 쌍. 하늘 꼭대기에 걸린 달빛에 의지해 포물선을 그리며 공이 오간다. 연습용 공에는 모두 사인펜으로 '열구'라 쓰여 있다. 슈코 야구부의 전통이다. 진노가 던진 공을 받아 달빛에 비춰 보니 동그스름한 글자의 '열구'가 보였다. 교코가 쓴 글자였다.(p.65)

  서른여덟의 시미즈 요지는 도쿄에서 언론 출판의 일을 하다가 불황으로 회사가 넘어가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퇴직하여 고향에 내려온다. 아내는 미국에 유학 중이고, 어머니는 몇 개월 전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홀로 있는 집에 머물며 데리고 온 딸과 함께 다시 전원생활에 적응하는 중에 옛날을 회상한다. 20년 전 여름, 슈코라고 불리는 현립 스오 고교는 오랜 전통의 명문이지만, 야구는 별 볼 일 없는 팀이었다. 하지만 야구를 향한 열정은 그 누구보다 강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들은 연습을 쉬지 않았고, 낡아서 실밥이 풀린 공에는 '열구'라는 글자를 써넣으며 고시엔 출전을 목표로 투혼을 불살랐다. 그런데 매번 지기만 하던 팀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지역 예선에서 잇따른 행운(?)으로 거짓말처럼 연전연승한다. 하지만 그동안 함께한 행운의 여신은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뜻밖의 예상치 못한 사건에 연루되어 출전이 금지된다. 모두의 꿈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사건... 그때의 상처는 아물 때도 되었지만, 여전히 가슴 한쪽이 쓰리다.

  "가메처럼 마누라 부모님한테 신세를 지는 것도 스트레스이겠지만, 자기 부모와 아내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도 여간 괴롭지 않다."

  맞장구는 치지 않았다. 진노도 그 이상은 푸념하지 않았다. 서른여덟 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년. 서로 다른 삶이 있고,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것도 다르다. 그 무게를 비교하거나 동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우린 이제 그 정도는 아는 나이가 되었다.(p.133)

  "나, 고타이 엄마랑 설에 둘만 있었잖아. 그때 나한테 왕따 당하면...... 도망가도 된다고, 정말로 힘들면 도망가도 전혀 상관없다고. 그리고 이 동네엔 도망간 사람을 쫓아올 정도로 본성이 악한 아이는 없다고 했어. 또 제일 좋지 않은 것은 도망갔는데 도망가지 못했다고, 도망갈 수 없었다고 생각하면 그건 이미 아웃이고,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진다고......"(p.151-152)

  부원총회에서 정해진 야구부의 슬로건은 '야구를 통한 밝고 즐거운 고교 생활을 보내자.'였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의 맹연습은 '밝고 즐거운 고교 생활'에는 반하는 것이므로 중지. 짧게 깎은 머리도 '밝고 즐거운 고교 생활'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가끔은 야구부 외의 친구들과 놀거나 가족과 보내지 않으면 '밝고 즐거운 고교 생활'을 보낼 수 없으므로 일요일 연습은 쉬는 것이 당연하고, '밝고 즐거운 고교 생활'은 공부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에 정기 시험 전 일주일은 야구부실을 닫는다.

  "요컨대 고교 생활의 일부인 거야, 야구는. 그 이상의 것이 아냐. 우리 때처럼 다른 걸 전부 희생해가며 야구에 몰입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라."(p.158)

  진노도 가메야마도, 그리고 교코도, 현재를 살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시간 속에 있다. 나는 이 마을에 돌아와서 옛날 일만 돌아보고 있다. 이 마을에 남은 추억을 끄집어내는 것만이 나의 일상이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니면, 도망가도 된다고 교코는 말했다.(p.159)

  달려 나가는 쪽이 빠르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1루에 헤드슬라이딩을 하길 바란다. 수비에 나가고 들어올 때는 전력질주를 하길 바란다. 한여름 폭염 속을 달리는 것이나 빗속에서 공을 쫓는 것의 '의미' 따위 묻고 싶지 않다.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리고, 집에 오면 시체처럼 쓰러져 자고, 이기면 친구와 얼싸 안고, 지면 아이처럼 울기도 하고, 그게 내가 생각하는 '고교구아'였다.(p.174-175)

  나이를 먹고 있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젊음을 잃어가고 있다. 하룻밤 자고 나도 풀리지 않는 피곤이 몸속 깊숙이 엉겨 붙는다. 마음속은 어떨까. 여든 살까지 산다고 하면 아직 반환점을 돌기도 전인데, 장래의 꿈을 그릴 여지는 이제 별로 남아 있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든다.(p.179)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추억 이야기만 하고 있을 순 없다.

  꿈 이야기만 나눌 수도 없다.

  달콤새콤하지도 않고 장밋빛도 아닌 현실을, 설령 무거운 걸음이라 해도 한 걸음씩 내디디지 않으면 안 된다.(p.194)

  "그럼, 그런 식으로 도망가지 마."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찔했다.

  도망가도 돼, 하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20년 전에 도망쳤고, 그래서 살았고, 지금 고향에 돌아온 사람이 있다.(p.229)

  "고교 야구란...... 슈코의 야구란 지는 것에 묘미가 있다고 우린 자와 옹께 배웠습니다. 고교 야구에서 계속 이기는 학교는 고시엔에서 우승하는 단 한 곳밖에 없습니다. 어느 학교나 한번은 집니다. 지는 것이 고교 야구입니다. 자와 옹, 당신은 우리들에게 져도 가슴을 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지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소중한 경험인지를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도 지는 일뿐이었습니다. 계속 이기기만 하는 사람은 필시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당신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잘 싸웠다, 잘 싸웠어.'하고...... 어른이 되고 나서 자와 옹 당신의 목소리가 고교 시절 이상으로 또렷하게 들립니다. 그 목소리에 힘을 얻고, 용기를 얻으며 우리는 인생이라는 이름의 그라운드에 서서 행복이라는 이름의 백구를...... 아니 열구를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을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우리는 당신께 배웠습니다......"(p.251-252)

  빚에 시달리며 손님이 오지 않는 가게를 하는 친구, 불임으로 아내와 부모의 갈등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친구, 싱글맘으로 트럭 운전을 하며 아들을 키우는 친구... 요지만 해도 재취업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고 딸의 진로를 생각해야 한다. 도쿄로 돌아가 살기를 원하는 아내와 외동아들로서 홀로 계신 아버지를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요즘에 하는 야구는 내가 했던 옛날의 야구와 다르고... 인생의 반환점을 코앞에 둔 나이에 마냥 과거를 추억하며 살 수 없고 미래를 꿈꾸기는 더 어렵다. 그래도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비슷한 나이라서 그런지 책을 읽는 내내 시미즈 요지에게 감정의 이입이 많이 되었다. 막연히 결정을 뒤로 미루는 어쩌면 우유부단한 모습까지도 비슷하고... 원래 야구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이 책을 선택하고 읽기 시작했다. 물론 야구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절반을 사는 남자에게 잠시 뒤를 돌아보고... 다시 앞을 내다보며... 한 걸음씩 전진하기를... 그리고 아주 힘들어 죽을 것 같으면, 도망쳐도 괜찮음을... 우리의 인생은 승패와 관련 없이 열정만으로 빛나고 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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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청접대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2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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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리카와 히로, 홍은주 역, [현청접대과], 비채, 2014.

Arikawa Hiro, [KENCHO OMOTENASHI-KA], 2011.

  어떻게 사소한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작가의 문학적 사고와 글쓰기 감각은 내가 생각하는 범주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독특한 제목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아리카와 히로의 [현청접대과]는 일본의 고치 현청 관광부 소속 공무원과 이와 연관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접대'의 의미를 갑과 을의 사업 관계에서 계약을 성사해야만 하는 을이 선택권을 쥐고 있는 갑을 찾아가 대접하는 것으로 다소 어두운(?)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접대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그해, 고치 현청 관광부에 '접대과'가 발족했다.

  목표는 관광입현(觀光立県). 관광객을 글자 그대로 '접대'하는 마음으로 관광을 부흥시킨다는 콘셉트를 담으면서 친근감을 추구한 결과 붙게 된 이름이었다.(p.19)

  안됐지만 접대과에 배속된 이들은 좋건 싫건, 공무원이었다.

......처절할 만큼.(p.19)

  가진 것이라고는 태평양을 바라보는 장대한 해안선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진 광대한 숲과 들... 아직 개발하지 않은 자연환경 말고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지방, 고치 현에 관광입현을 목표로 접대과가 발족한다. 다른 외국의 국가 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공무원에 관한 이미지는 우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나 보다. 개성이나 창의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항상 언론과 시민단체의 눈치를 살피며, 변화를 두려워하고 책임지기를 싫어하는... 접대과에 배속된 이들은 나름대로 열의를 보이지만, 역시나 이들은 뼛속까지 공무원이다.

  "메일 내용대로라면, 홍보대사가 현 외 사람들한테 명함을 나눠주면 되는 거죠. 한 장 한 장 조촐하게 손으로 건네서 홍보대사 한 명당 대체 얼마나 나눠줄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그걸 받은 사람 중에 그 명함 때문에 '진짜로' 고치에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런 거 생각하면 아무래도 실효성이 얄팍하달까, 좀 비효율적이지 않나 싶어서...... 이 홍보대사제도의 목적은 결국 무엇인가요?"(p.24)

  독창성과 적극성을 가지고 새로운 기획을 착착 내놓기 바란다는 접대과의 발족 이념이 무색하게 이들이 세운 첫 번째 기획은 이미 다른 현에서 낡고 닳은 '관광 홍보대사'의 도입이다. 현 출신의 연예인이나 스포츠선수... 등 유명인을 홍보대사로 임명해 현을 알리자는 것이다. 가장 젊은 직원으로 처음 의견을 제시한 가케미즈 후미타카는 일을 진행하는 도중에 요시카도 교스케라는 작가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그는 집요하고 날카롭게 제도의 허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툭툭 던지는 한 마디에 접대과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면서도 발상 전환의 도움을 얻는다.

  "그것도 그쪽 사정이잖아. 보통은 그런 걸 먼저 해결한 다음에 부탁하는 거 아닌가? 첫 타진 후에 이만큼 시간이 흐르면 이쪽에선 물 건너간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돼. 그게 이쪽의 시간감각이라고. 개인이 천 장 단위로 명함을 주문해서, 며칠 만에 배송받는 일반 세상의 시간감각. 알아?"(p.40)

  요시카도가 한 번 더 깊은 한숨을 흘리고 입을 열었다.

  "손님들을 잡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인데 당신들한텐 전혀 없는 게 있어."

  "그게......"

  "민간감각. 당신들, 자기 사정밖에 모르잖아."(p.52)

  비효율성과 전시행정에 관한 비판...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현청에 들어와서 현청의 상식뿐이 모르는 이들에게 요시카도가 말하는 외부의 시간감각과 민간감각은 여전히 감당하기 버겁고 어려운 숙제이다. 그럼에도 가케미즈는 그의 조언을 흘리지 않고 귀담아들으면서 계속된 도움을 요청한다. 요시카도는 결정적으로 과거 20년 전에 현청에서 '판다 유치론'을 주장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것을 조사하라고 한다. 판다 유치론자는 누구이고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숙박, 식사, 선물, 고속도로 요금과 기름값을 포함한 교통비. 그쪽 수입이 훨씬 큰 거야. 특히 민간에 돈을 쓰도록 하는 게 중요 하잖아. 시설 입장료 챙기는 것보다 2차 수입 쪽이 훨씬 중요하다고. 입장료 같은 건 인심 팍팍 써야 하는 거야. 관광시설이 살뜰하게 훑어가면 손님들은 지갑을 닫아. 딴 데 쓸 돈 아낀다고. 생각해보면 알잖아?"(p.64)

  "과에 한 사람, 외부인을 스태프로 채용해. 우선 공무원이 아니어야 한다는 게 최우선 조건. 풋워크가 가볍고, 학력은 상관없으니까 눈치 빠르고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으로. 외려 쓸데없이 학력 프라이드 같은 거 없는 사람이 더 좋겠네. 그리고 가능하면 젊은 여성."

  ...

  "기본적으로 여자는 여행을 좋아하고, 장소에 까다롭지. 지갑도 잘 안 열어. 그러니까 여성 테스트 유저가 인정하면 그 기획은 성공한 거야."(p.68-69)

  실례지만 현청 직원들한텐 '우린 현청'이란 교만함이 있는 것 같아요.

  ...

  거래처를 통해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내면 된다는 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발상이에요. 일단 연결만 되면 그다음엔 '현청이란 간판'으로 어떻게든 될 거란 생각 아닌가요? 그거, 상당히 기분 안 좋거든요.(p.107)

  "고치가 관광입현을 목표로 한다면, 과거 행정의 '서투른 개발'의 유산인 이 자연을 살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알겠습니까? 고치 현의 가치야말로 이 자연이라는 걸. 고치의 자연을 현재의 기술로 섣불리 건드리는 순간 고치 현의 가치는 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잘 기억해두세요. 그리고 유산을 방치해둔 십수 년 사이, 바야흐로 고치에 유리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요."(p.142-143)

  "따라서 내가 고치 현에 제안하는 기획은 이 두 가지!"

  기요토가 폴 스미스 가방에서 A4 용지 두 장을 꺼냈다.

  각각 굵직한 고딕체로 '아웃도어 스포츠 및 자연투어' '그린투어'라고 적혀 있다.

  ... 그래서, 하고 말을 이으며 기요토가 가방에서 용지를 한 장 더 꺼냈다. 역시 굵은 고딕체로 '고치 현을 통째 레저랜드로'라고 적혀 있다.(p.145)

  "이 구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마인드의 공유야."

  "마인드?"

  "접대 마인드"

  ......드디어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p.379)

  "레저랜드화 구상의 핵심은 관광지로서의 의식의 공유입니다. 크게는 지자체와 관광업자, 작게는 현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관광객을 맞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관광입현은 실현이 불가능할 겁니다."(p.385-386)

  "헤드카피가 제대로 먹힌 책은 잘 팔린다는 것. 그건 곧 상품의 세일즈 포인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단 소리거든. 세일즈 포인트를 자각한 상품과 그렇지 않은 상품은 천양지차지."

  ...

  "서점에서도 띠지나 피오피광고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판매부수가 변하거든. 물론 상품을 잘 만드는 게 기본이지만 판촉 작업도 소홀히 할 수 없어. 내 책은 내 입장에서야 매번 노력해서 내놓는 신제품이지만, 손님 입장에선 다달이 수백 권씩 쏟아지는 상품 중 하나일 뿐이야. 그렇다면 어떻게 손님 눈에 띄느냐, 손님 의식을 찌르느냐가 중요하지."(p.420-421)

  [현청접대과]는 픽션이지만, 실제로 고치 현에는 접대과가 있다고 한다. 현 출신의 아리카와 히로는 홍보대사를 하면서 홍보 방안을 모색하는 중에 이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고향에 관한 진한 애정은 물론이고 그녀가 쓴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경계에서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허구인가를 가늠해보는 재미가 있다. 독창성과 적극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공무를 집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것을 깨뜨리고 변화와 혁신을 가져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감동과 전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작품 안에는 조금 지나칠 정도로 고치 현의 관광입현에 관한 정보가 넘치는데, 이것은 마치 소설의 옷을 입은 '공무원 업무 개선 지침서'나 '관광개발 계획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이나 갈등과 해소의 과정을 통해서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기에 별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발상의 전환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방대한 사전조사, 특별한 세계관, 각자의 처지에서 보여주는 상황 심리 묘사는 정말 최고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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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에세이만을 발표해서 그의 문학적 역량을 이미 다 소진해 버린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었는데요.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9년 만에 [완전변태]라는 작품으로 우리 곁에 돌아와서 매우 기쁩니다. 작가의 성향상 `변태`라는 단어는 중의적 의미가 있을 거 같은데요. 개인적인 추측인데, 정상이 아닌 상태의 변태와 본래의 형태가 변하여 탈바꿈하는 변태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거 같네요. 정말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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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화 - 꽃을 사르는 불
이경민 지음 / 노블마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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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민, [멸화], 노블마인, 2014.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이면 늘 불장난을 했다. 어른들의 음흉한(?) 짓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것을 비유로 말하는 불장난이 아니라 실제로 불을 피우고 놀았다. 매번 부모에게 꾸지람을 당하면서도 우리 중의 하나, 꼭 누군가의 주머니 안에는 집에서 몰래 가지고 온 성냥이 있었고 공터는 땔감이 넘쳐나는 우리들의 세상이고 우주였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주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여느 신화에서 신은 동물에게 두꺼운 가죽과 날카로운 발톱을 주는 대신에 인간에게는 불을 주었다는 전설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태어난 지 십 년이 지나지 않았던 우리는 마치 태곳적 일을 본능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매캐한 연기가 눈을 찔러와도 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오후 내내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모름지기 방화가 일어난 곳에서 드러나게 자취가 있는 자는 포획하여 바로 좌죄(坐罪)한다' 하였고, 세종조 병오년에는 화재가 더욱 심하여 바로 화적으로 의심할 만한 사람 십수 명을 잡아서 죽였습니다마는, 그러나 어떤 사람은 혹 그들의 죄가 아님을 의심하였습니다."<조선왕조실록> 성종 51권, 6년 1월 9일(p.169)

  [조선왕조실록]이 기록한 세종 8년 병오년(1426년)의 한성대화재사건에 관한 기록, 단 몇 줄의 문구는 작가의 호기심을 적잖이 자극했나 보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얼마나 큰불이 났기에? 당시에도 소방관청과 불을 진화하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 이러한 의문은 점차 불어나 작가의 상상력을 거세게 자극하여, 이것을 모티브로 하여 여기에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가며 극적인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소설 [멸화]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불'을 소재로 하는 팩션이다.

  도성 내에서도 시전은 요주의 관리 대상이었다. 행랑 사이에 불막이 담이 놓여 있어도 다닥다닥 붙은 시전의 특성상 불이 순식간에 번져나갈 수 있었다. 특히 종이, 옷감 등을 파는 시전은 그 자체로 땔감이나 다름없었다. 불이 번져 크게 나면 당장 도성 내에 비상이 걸릴 것이 분명했다. 도성 사람들이 먹고 입는 것은 그들의 손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상인을 통해서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민가도 아닌 시전에만 연거푸 불을 지르는 것은 도성 전체의 안위를 위협하겠다는 뜻이었다.(p.57)

  세종 18년(1436년) 한성... 3일 동안 도성 안 2,500여 채의 가옥이 불타버린, 즉 한성의 1/5이 전소하여 잿더미로 변하고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을 양산한 병오년 대화재는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날리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 억울하게 방화범으로 몰려 사형을 당한 이들, 불과 싸우는 멸화군 중에서 노년의 선임은 그때의 상흔을 여전히 몸에 새기고 있다. 그런데 또다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잇따라 발생한다.

  왜 하고 많은 이들 중에서 아버지였을까. 호림은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다른 집과 달리 그의 집에서는 비혈단의 일원이라는 증좌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비(緋)자가 수놓인 붉은 천 조각. 아버지는 그 글자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피처럼 붉다...... 피로 물들여 붉다......"

  ...

  - 적(赤), 홍(紅), 비(緋)는 모두 같은 뜻을 갖고 있어. '붉다'라고 하지.

  - 뜻이 같으니 쓸 때 헷갈리겠는데.

  - 그럼 이렇게 해. 적(赤)은 노을처럼, 홍(紅)은 꽃처럼, 비(緋)는 피처럼 붉다고 외워.(p.173)

  수성금화도감(修城禁火都監)은 도성의 수리, 도로와 교량의 수리를 담당하는 성문도감(城門都監)과 도성의 화재를 방지, 소방과 금화를 담당하는 금화도감(禁火都監)으로 되어 있다. 금화도감에는 멸화군(滅火軍)이 편재되어 있다. 10년 전의 한성대화재사건으로... 사형당한 아버지의 진실을 제대로 밝히기 원하는 호림, 어두운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의준, 모든 것을 잃고 어쩔 수 없이 기녀가 되어야 했던 자란, 살기 위해 궁녀가 되어야 했던 채령... 도성의 연이은 화재는 모두를 긴장하게 한다. 생존을 염려하는 백성, 사건을 신속히 해결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 과거의 상처를 다시 건드려야 하고... 그런데 이번에는 마치 누군가에게 입막음 경고라도 하듯이 입이 인두로 지져진 시신이 화재현장에서 발견된다. 연쇄 방화사건은 연쇄살인 방화사건으로 진화하여 우리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꽃을 사르는 불'은 명쾌한 문장으로 웹툰을 즐기는 것처럼 머릿속에 이미지로 각인되어 오랫동안 기억된다. 역사의 사실에 더해진 작가의 상상력은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고 적절하게 배합되어 문학의 맛을 느끼게 한다.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가독성, 철저한 고증으로 인위적이거나 작위적이지 않은 절제된 표현,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스터리와 가슴을 설레게 하는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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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 이선희 역, [방황하는 칼날], 바움, 2008.

Higashino Keigo, [SAMAYOU YAIBA], 2004.

  일본 미스터리에 빠져가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름은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이다. 물론 표본 추출이 잘못되었고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시비를 걸어온다면, 할 말은 없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내 주변의 대부분은 그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다작을 쏟아내서 쉽게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재미를 보장하고 있어서,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의 어감이 좋아서... 이런저런 다양한 이유로 일본 미스터리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해야 하나, 한동안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 가장 최근이 [신참자](재인, 2012.) 정도이니, 새로운 번역이 나와도 그냥 무관심하게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방황하는 칼날]은 영화의 개봉으로, 갑작스러운 관심으로 단숨에 읽었다.

  과거에 일어난 몇몇 부조리한 사건들이 그의 뇌리에서 되살아났다. 범인이 항상 사형에 처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이름도 공표되지 않고, 사형에 처해지는 일도 없다.

  소년법은 피해자를 위한 것도, 범죄방지를 위한 것도 아니다. 청소년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것에는 피해자와 그 가족의 슬픔과 분노는 반영되지 않고, 현실을 무시한 이상적인 도덕만이 존재한다.(p.88)

  사회파 미스터리의 매력은 사건과 수사의 과정보다 범죄의 원인에 초점을 맞추어 인간의 본성을 깊이 있게 다룰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다양한 문제를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여 독자로 하여금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게 하고 간접으로 경험하게 한다. [방황하는 칼날]은 일본의 '소년법'을 소재로 하여 청소년 범죄와 형벌의 수위에 관한 논란을 다루고 있다.

  이미 아시리라고 생각하지만 아쓰야는 제가 죽였습니다. 구태여 말씀드리자면 동기는 물론 딸의 복수입니다.

  ...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쓴 짐승들은 친절하게도 에마를 유린하는 모습을 비디오테이프에 담아두었더군요. 딸이 유린당하는 모습을 직접 본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실 수 있을까요?

  ...

  아쓰야는 미성년자입니다. 더구나 의도적으로 에마를 죽인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가령 변호사가 알코올이나 마약으로 인해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고 주장한다면 도저히 형벌이라고 할 수 없는 판결이 내려질 우려가 있습니다. 미성년자의 갱생을 우선해야 한다는, 피해자와 그 가족의 심정을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합니다.(p.172-173)

  사랑하는 딸 아이가 납치되어 마약에 취해 성폭행을 당하고 시신으로 발견된다면, 이것을 보고 가만히 앉아 경찰의 수사만을 믿고 기다리는 아버지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에 의해 범인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된다면... 나가미네는 몇 년 전에 아내를 잃고 딸과 함께 평범한 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불꽃놀이를 보러 간다던 딸은 밤이 늦도록 귀가하지 않는다. 휴대전화는 꺼져있고, 친구들에게 연락해 보아도 행방을 알 수 없다. 실종신고를 하고 이틀이 지난 후에 딸은 반라의 시신으로 발견된다. 장례를 치르고 절망으로 지내고 있을 때에 한 통의 전화는 범인에 관해 알려준다. 그들은 아직 성인이 아닌 미성년자로, 여자를 납치해 마약을 투여하고 성폭행을 하며 그 장면을 고스란히 비디오 촬영하여 신고하지 못하도록 협박한다. 아버지는 그들을 하나씩 추적하는데...

  자신에게 죄를 심판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법원의 일이다. 그런데 법원은 범죄자를 제대로 심판하는가? 아니다. 법원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재판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사건에 어떤 판결이 내려졌는지 그도 조금은 알고 있다. 그것을 보면 법원은 범죄자에게 정당한 심판을 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법원은 범죄자를 구해준다.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갱생할 기회를 주고, 증오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범죄자를 숨겨준다.

  그것을 형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 기간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짧다. 한 사람의 인생을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는 인생을 빼앗기지 않는다. 더구나 아쓰야와 마찬가지로 가이지도 미성년자이리라. 에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어쩌면 교도소에도 가지 않을지 모른다.(p.128-129)

  소설은 단순히 억울하게 죽은 딸의 원한을 갚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아버지의 어긋난 부정(父情)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미성년자의 범죄와 처벌에 관한 논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과 비슷한 내용으로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황금가지, 2009.)가 있는데, 피해자의 처지에서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는 주장과 가해자의 처지에서 아직 어리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의 첨예한 대립을 매우 잘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도 비슷한 맥락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피해자의 시선이 강조되어 독자로 하여금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감정적인 판단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아무튼, 딸을 죽인 범인을 추적하는 아버지와 피해자에서 새로운 가해자로 뒤바뀐 아버지를 뒤쫓는 경찰은 흔들리는 논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다.

  다카아키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체스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처음에는 모든 말을 다 가지고 있지. 그대로 있으면 평온하게 지낼 수 있지만 게임인 이상 그런 건 허용되지 않아. 어떻게든 움직여서, 자기의 진지에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되지. 그리고 많이 움직일수록 상대 말을 쓰러뜨릴 수도 있지만 그만큼 자기도 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어. 그런 면이 사람의 인생과 똑같지 않니? 또 상대의 말을 빼앗았다고 해서 지가 것으로 만들 수도 없지."(p.217)

  "경찰이라는 건 무엇일까? 경찰은 과연 정의의 편일까? 아니야, 경찰은 단지 법을 어긴 사람을 잡고 있을 뿐이야. 경찰이 지키려고 하는 건 시민이 아니라 법이란 말이지. 경찰은 법이 상처 입는 것을 막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뛰어다니고 있어. 그런데 그 법이란 게 절대적으로 옳을까? 절대적으로 옳다면 왜 끊임없이 개정되고 있을까? 법은 결코 완벽하지 않네. 그 완벽하지 않은 법을 지키기 위해 왜 경찰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걸까? 그 법을 지키기 위해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을 마구 짓밟아도 되는 걸까?"(p.534)

  복수의 길을 걷는 아버지는 사냥 총을 가지고 다니는데, 제목은 왜 '방황하는 칼날'인가? 책을 다 읽기 전에는 (아버지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총을 잃어버리고 칼로 복수를 이루는 것으로 예상했다. 흔들리는 감정으로 방황하는 이를 아버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은 주변인들에게 물었을 때에, 흔들리는 것은 일본의 사법체계라는 답변부터 사무라이 정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는 내내 아버지의 복수가 성공하기를 바랐는데, 이것은 요즘에 우리의 사법질서가 바람 부는 들판의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특유의 빠른 가독성 하지만 예측 가능한 아쉬운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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