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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 보이스 - 법정의 수화 통역사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3월
평점 :
마루야마 마사키, 최은지 역, [데프 보이스], 황금가지, 2017.
Maruyama Masaki, [DEAF VOICE : HOUTEI NO SHUWA TSUUYAKU-SHI], 2011.
일반적으로 '청각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들은 '농인'(농아인)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고 한다. 성경은 시대의 옷을 입고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소경, 앉은뱅이, 문둥이... 라고 쓰인 것을 새롭게 맹인, 못 걷는 사람, 나병환자... 로 바꾸어 번역했다. 이것을 일상에서는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한센병자... 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이러한 것을 겪는 사람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장애라는 단어, 장애인과 일반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것부터 불쾌하게 여길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소설 [데프 보이스]는 법정에서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수화통역을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청각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돕고 싶다든가 그들과 비장애인 사이의 징검다리가 되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로 맺어진 '동지'.
그러나 아라이는 달랐다. 스스로 수화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봉사 정신도, 복지에 관한 관심도 전혀 없었다. 그가 수화 통역사 시험을 치른 건 그저 실리적인 이유에서였다.(p.13-14)
듣지 못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면, 자연스러운 소리를 낼 수 없고... 배움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과거 일본에서는 형법 40조 조항으로 농아자 불처벌 및 형 감경을 내용으로 하는 법이 있었다고 한다. 사회에서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전제는 뭔가 석연치 않다. 농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조금 다른 삶을 살게 되는데... 아라이 나오토는 수화 통역 자격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시험은 처음이지만, 수화는 어렸을 때부터 사용해온 언어로 그에게는 별다른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와 형제 사이에서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아이로 태어나 남들하고 확실히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아라이였다. 왜 가장 어린 자신이 그런 일을 해야 했던 걸까. 아라이는 자신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p.22)
<뭐, 아이일 때부터 싫을 만큼 통역을 해 왔으니까요.>(p.24)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아이... 그는 어린 나이에 가족과 가족 외의 사람들 사이를 잇는 역할을 했다. 병원에서 의사가 말한 아버지의 시한부 삶을 먼저 들었고, 이것을 어머니에게 통역해야 했다. 수화는 여러 가지 상처로 뼛속까지 배어있는 아픔이고, 또한 그에게는 원어민의 언어와 같다. 경찰서 사무직원의 일을 그만둔 지금은, 수화는 생계를 위한 벌이의 수단이다.
쳐다보니 소녀의 손이 문득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우리 편? 아니면 적?>(p.88)
그 주장의 핵심은 이제까지 '장애인'이라는 병리적 시점에서밖에 이야기되지 않았던 농인을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집단'으로서 다시 파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농인의 언어란 일본수화이고 일본어는 제2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도 마찬가지. 따라서 일본수화와 동시에 일본어도 이해하고 일본문화도 수용한 농인은 두 가지 언어를 갖고 두 가지 문화를 아는 '바이링구얼, 바이컬처럴'한 존재로서 정의된다.(p.134)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고, 이것은 강한 유대감으로 작용한다. 일반인과 농인 사이에서, 특히 법정에서 수화 통역을 하면서 어느 편이라는 질문을 받는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농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만큼 농인은 불신을 키워왔다. 다시 찾아온 정체성의 혼란... 그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코다, 즉 부모가 모두 농인이면서 들리는 아이의 경우 음성일본어보다 먼저 일본수화를 자연히 습득합니다. 농문화도 자신들의 문화입니다. 아무리 음성일본어를 이야기하는 '청인'이라도 본질적으로 그들은 '농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농인 부모의 아이(Children of Deaf Adult)의 약자인 코다(CODA)라는 호칭은 14~15년 전 미국에서 들어온 단어이다.
이제까지 '농인을 부모로 둔 들리는 아이'를 가리키는 단어는 없었다. 단어가 없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와 같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대부분은 '들리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런 존재는 드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라이는 자신 외에 그런 아이와 만난 경험이 없었다.(p.139)
[데프 보이스]는, 코다(CODA)... 농인을 부모로 둔 들리는 아이로 자라난 한 남자... 를 주인공으로 일본 사회의 농인 문화와 그와 연관된 사회 현상 그리고 이런저런 문제를 지적하며 한 편의 법정 드라마를 완성한다. 배움의 혜택이 없어 저능한 취급을 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유전병으로 여겨 강제적으로 불임수술을 시행했던 인권침해의 사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어서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일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단순히 오락적인 재미를 넘어서 사회 문제를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는데, 이것이 일본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