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선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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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라시 다카히사, 이선희 역, [리카], RHK, 2016.

Igarashi Takahisa, [RIKA], 2002.

제2회 호러 서스펜스 대상

  '악녀'라는 말은 있어도 '악남'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단순히 범죄의 통계만 보더라도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이 나쁜 짓을 벌이는데, 왜 여자에게만 이러한 칭호가 붙는 것일까? 일본에서 제2회 호러 서스펜스 대상을 받은 소설 [리카]는 리카라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기괴한 악녀의 활약(?)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큰 키에 삐쩍 마른 몸, 역겨운 체취, 멍한 눈빛, 괴이한 웃음으로... 망상에서 허우적거리며 애정을 갈구하는 그녀의 집착은 매우 끔찍하다.

  "오늘 아침에 쟀더니 85킬로그램이더군요. 하지만 선배,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니까요. 어차피 누가 알겠어요? 이건 놀이예요, 놀이. 일종의 게임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그냥 가공의 자신이 되는 게임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면 돼요."(p.30)

  지금은 모바일 세상이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컴퓨터를 기반으로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에는 늘 그렇듯이 이성을 상대로 하는 사업이 먼저 발 빠르게 움직인다. 혼마 다카오는 후배의 소개로 인터넷 만남 사이트에 관해서 알게 된다. 아내와 딸이 있지만, 생활의 활력이라고 해야 하나? 호기심과 함께 가벼운 놀이로 여기고 일탈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그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해 가는데, 상상 이상의 일이 일어난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도내의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리카예요.

  올봄에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행복한 만남이 없었어요.

  매일 병원과 집만 왔다 갔다 하니까 가끔 숨이 막힐 것 같더라고요.

  밖에서 노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고, 집에서 느긋하게 있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이런 저를 누가 바꾸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괜찮으시면 메일 교환부터 시작해보시지 않을래요?

  내성적이고 말주변도 없고 이런 건 처음이라서 재미가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기다릴게요. 인연을 즐겁게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잘 부탁합니다. 리카.(p.64-65)

  혼다라는 가명으로 나이와 직업을 적당히 바꾸어 소개 글을 올린다.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메일을 보내어 답장이 오면, 대화를 이어가며 조금씩 인연을 만든다. 여기에는 약간의 스킬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모든 게 서툴고 어색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익숙해졌다. 그러다가 리카라는 여자를 알게 되는데... 스쳐 지나간 다른 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감정을 느꼈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남자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눈이 멀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녀는 이상하다.

  "인터넷이 어떤 곳인지 알아?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아느냔 말이야? 요즘엔 누구나 인터넷, 인터넷 노래를 부르지만, 그게 악마의 소굴이란 걸 왜 모르는 거지?"

  ...

  "인터넷은 역사가 생긴 이래 인간이 처음으로 가지는 개인 미디어야. 전 세계로 정보를 내보낼 수 있는 미디어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 듣기는 좋지만 실체는 무섭기 짝이 없지."

  ...

  "미디어는 본래 책임과 공공성이 없으면 존재해서는 안 돼. 그런데 인터넷은 그 부분이 완전히 빠져 있어. 그게 인터넷의 본질이야. 인쇄업자니까 이런 부분은 누구보다도 잘 알 텐데?"(p.152-153)

  인터넷 공간에서의 익명성은 보호막인 줄 알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점투성이이다. 한번 올린 글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족쇄가 되고, 개인 정보 유출은 사생활 침해는 물론이고 경제활동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휴대전화로 무차별적인 전화를 하고, 음성 메시지를 가득 채운다. 모르는 사이에 회사 컴퓨터를 건드리고, 뒤에서 미행한다. 심지어 집까지 찾아오는데, 딸과 아내가 걱정이다. 점점 거세지는 그녀의 스토킹은 읽을수록 온몸에 소름을 돋게 한다.

  "범인은 여자입니다. 리카, 또는 아마미야 리카라고 하는데, 본명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자칭 28세. 겉으로 보기엔 30세에서 50세 사이. 간호사라고 합니다. 피해자가 의뢰한 탐정 사무소의 조사에 따르면 이 병원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또한 2년 전에 의사를 토막 살해한 범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건을 조사하던 하라다를 죽인 것도 그 여자고요."(p.358-359)

  작가는 [리카]라는 제목에서부터 범인을 드러내고 있는데, 호러 문학답게 해결의 과정보다는 범행의 공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실적이지 않은 다소 초인적인 괴력을 발휘하는 게 조금은 거슬리지만, 음울한 분위기에서 압도적인 긴장감을 주는 악녀 캐릭터를 잘 만들었고... 인터넷 세상에서 개인 미디어와 책임감이라는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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