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 - 하나님 자리를 훔치다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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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윤종석 역, [내가 만든 신], 두란노, 2017.

Timothy Keller, [Counterfeit gods], 2010.

  기독교 신앙에서 성경은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애굽기 20:3-6)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의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와 "우상을 만들지 말라"이다.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노예로 살다가 탈출한 후에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에서 이스라엘은 율법적인 체계를 갖추게 된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혹시 모를 원주민의 토착 종교를 하나님으로 여길까 하여 미리 단속(?)이라도 해둔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러한 신앙의 전통은 개혁교회에서 깊이 뿌리를 내려 오늘날 교회가 '배타적'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현대의 그리스도인 중에서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어 절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십계명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계명은 단순히 배타적이라는 비난 속에서 변명의 도구로만 사용되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우상숭배는 여전히 우리에게 적용되는 큰 죄악 가운데 하나이다. 눈에 보이는 형상을 만들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외면하고... 평생소원, 사랑, 돈, 성취, 권력, 문화와 종교... 등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모두 우상이다.

  팀 켈러 목사님은 무엇이든 우상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다면, 우상이고 가짜 신이다. 또, 좋은 것이 우상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 건강, 가족, 학문, 심지어는 교회 사역까지도 우상이 될 수 있다.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것, 더 사랑하는 것은 전부 우상이다.

  절망에서 헤어나 전진하려면 우리 마음과 문화에 자리한 우상을 분별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짜 신들의 악영향에서 해방되는 길은 참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뿐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시내 산과 십자가에서 자신을 계시하였다. 그분을 만나면 진정으로 당신을 채워 주신다. 당신이 실망시켜도 참으로 용서해 주신다. 능히 그러실 수 있는 분은 주님뿐이다.(p.31)

  대부분은 평생을 바쳐 마음의 가장 절실한 꿈을 이루고 싶어 한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라면 웬만한 것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러나 마음의 가장 깊은 소원을 이루는 것이 곧 자신에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일 수 있다. 오랫동안 간절히 바랄수록 우상이 되기 쉽다. 적절한 경계선을 벗어난다면, 그것이 좋은 것일지라도 이미 가짜 신으로 변질하였다는 증거이다. 승진이나 성취를 위해서 건강을 해칠 정도로 일하고 법률을 어긴다면, 그것은 우상화되었다는 뜻이다. 연인의 폭행과 가학 행위를 당하면서도 콩깍지가 씌어 병적인 관계를 보지 못한다면, 사랑이 우상화된 것이다.

  돈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사용을 위한 도구인가? 아니면 그 자체가 목적인가? 끝없는 욕망으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성취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시대이다. 그러나 성취의 욕망은 '나는 누구인가?', '내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라는 중대한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이것은 금방 사라지는 만족감이다. 정치 권력의 허황한 망상... 하나님 없는 권력에 대한 기대와 확신은 곧 허물어져 실망하게 된다.

  우상이란?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것을 얻고자 의지하는 대상이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교리의 우상에 빠질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보다 교리와 전통을 앞세운다면, 율법의 우상에 빠져있던 바리새인과 다르지 않다. 은사(재능, 능력, 행위, 성장)를 영적인 열매(사랑, 기쁨, 인내, 겸손, 용기, 온유)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우상숭배는 단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만이 아니라 온 마음을 하나님 아닌 다른 데 두는 것이다. 자신에게 우상이 있음을 회개하거나 의지력을 발휘해 다르게 살려고 애쓰는 것만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우상에서 돌이키려면... 예수님이 당신을 위해 이루신 일을 올바로 알고 그 일을 기뻐하고 그 안에서 안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기도하는 즐거운 예배도 거기에 포함된다. 우상보다 예수님이 당신의 머릿속에 더 아름다워지시고 당신의 마음속에 더 매력 있어지셔야 한다. 그래야 당신의 가짜 신이 대체될 수 있다. 우상을 뿌리 뽑기만 하고 그 자리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지'않으면 그 우상은 다시 자라난다... 기쁨과 회개가 함께 있어야 한다. 기쁨 없는 회개는 절망에 이르고, 회개 없는 기쁨은 얄팍해서 잠깐의 감동 외에 깊은 변화를 주지 못한다...(p.251-252)

  가짜들에게 결별을 선언하다!

  우상의 문제, 가짜 신의 문제... 나는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른 신을 만들고 있었다. 내가 만든 가짜 신에 관한 인식, 성장하고 성숙한 신앙을 위하여 기독교 세계관의 인식을 넓히는 기회가 되었다. 현재의 문제와 성경의 고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는 전개는 복음적이며 은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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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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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에 마사시, 권영주 역,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비채, 2018.

Matsuie Masashi, [YUUGANANOKA DOUKA WAKARANI], 2014.

  2016년에 읽은 책 중에서 최고를 꼽으라고 하면, 주저 없이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비채, 2016.)를 말한다. 건축 설계를 소재로 하는데,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매년 여름이면 초록이 우거진 여름별장으로 옮겨가 두 달을 지낸다. 시대의 유행을 따르거나 건축가의 이름을 알리기보다는 주변 환경하고 어울리면서 용도에 적합한 설계를 원칙으로 한다. 국립현대도서관의 설계 경합에 참여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건축가의 열정과 사람을 배려하는 세심한 설계는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덕분에 요미우리문학상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책을 좋아하는 몇몇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다른 소설하고 다르게 어떤 악인이나 갈등을 유발하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매우 건전하다. 다툼이나 대립 없는 전개는 지루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가랑비에 옷이 젖어가는 줄 모르게 서서히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은 이러한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우아함에 관하여... 특히, 중년의 우아함이란 무엇인가? 안정적인 돈벌이로 물질의 자유로움... 교외에 마당이 딸린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을 가꾸는... 자녀를 키우고 부모를 봉양하는데 무슨 문제가 없는... 우리는 너나없이 내일의 우아함을 위해 오늘의 젊음을 소비하고 있다. 우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일본은 어떤 우아함을 추구하고 있을까? 이 책은 우아함에 관한 책이다...

  이혼을 했다.(p.7)

  자연림이 남아 있는 공원이 근처에 있을 것. 잔디밭이 환하게 펼쳐진 공원이 아니라, 나이를 많이 먹은 거목이 우뚝 솟았고 놀이기구 따위 없는 살풍경한 공원이 좋겠다. 그리고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할 수 있는 오래된 단독주택일 것. 헤어진 아내가 들으면 뭐 하러 그런 짓을 하느냐며 당장 얼굴을 찡그릴 듯한 계획이다.(p.13)

  40대 후반의 오카다 다다시는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살던 아파트에서 이사해야 한다. 까다롭고 자기중심적이며 그러면서도 똑 부러지는 성격으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아내와 이혼했다. 고연봉의 전문 분석가는 가정에서의 삶을 피곤하게 했나 보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린 것은 그의 잘못이다. 다행히(?) 아들은 미국 유학 중이고... 그는 살던 아파트를 넘겨주고, 공원 근처의 오래된 집을 찾아 수리해서 사용하기를 원한다. 마치 중년의 우아함을 즐기려는 듯이...

  "낡았죠. 쇼와 33년(1958)에 지었다니까 오십 년 더 됐습니다. 이층 목조 주택이고요. 이노카시라 공원에 면했답니다."(p.15)

  나는 북쪽으로 난 이 창문이 좋았다. 옆집에서 보이지 않도록 사이에 가시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나무만 보인다. 창문에는 차양을 깊게 쳤다. 지붕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내뻗은 서까래가 차양을 지탱한다. 오랫동안 아파트에 살았더니 이층 어느 방에서나 창문으로 차양이 보인다는 게 생각 외로 신선했다. 서까래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래된 집에 산다는 게 실감났다.(p.63)

  글 곳곳에서 오래된 집에 관한 서술을 한다. 서정적이면서 편안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데(건축 설계를 내용으로 하는 전작의 분위기도 떠오르고...), 아내와 살던 집을 나와서야 비로소 안식처를 얻은 기분이다. 집을 수리하고 가구를 배치하는 과정은 마치 우아함의 결정체인 것처럼 세밀하다. 세를 준 집 주인의 배려와 늙은 길고양이, 낡은 집을 수리하며 맞이하는 계절의 변화... 겨울에는 벽난로를 사용할 계획이다.

  "오카다는 아직 사십대잖나. 월급은 많이 받으면서 마음 편하게 혼자 살지. 이걸 우아하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나. 아들이 있었지? 지금 몇 살이지?"

  "스물두 살입니다."

  "벌써 성인이군. 부양 의무도 좀 있으면 끝이야. 부모님은 어떠시지?"

  "칠십대 후반인데 뭐, 정정하시죠."

  "하여간 부러울 따름이군. 이걸 우아하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나."(p.77)

  "오래된 걸 이것저것 손보는 게 즐겁거든.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정원도 업자를 부르면 되살아나고, 다다미도 이불도 손질하면 새것이 되고, 장지도 덧문도 마찬가지야. 부엌 공사도 그랬어. 어둡지, 간장 냄새 나지, 전체적으로 기름때가 묻어 있었지만, 물론 그건 그것대로 운치가 있었지만, 싹 고쳤더니 몰라보게 좋아졌어. 수명이 다해가던 게 되살아나는 게 뭐라 말할 수 없이 기쁜 거야."(p.85)

  다른 이들이 원하는 우아함이란? 자유로움인가 보다. 직장 상사는 이혼하고 혼자 살며 부양의 의무가 없는 것에서 우아함을 말한다. 하지만 오카다는 오래된 것을 손보며 수명이 다해 가는 것을 되살리는 것에서 우아함을 찾는다. 그런데 퇴근해서 장을 보고, 음식을 요리하고, 라디오로 뉴스와 일기예보를 들으며 목욕하고, 12시면 잠자리에 드는 일상은 심심하다. 우아함의 이면에는 남이 모르는 쓰라림이 있다. 그는 헤어진 여자친구를 다시 만난다. 우아함이란 빈틈없는 생활이다. 그는 우아함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까?

  "그렇게 우아한, 빈틈없는 생활에 여자가 끼어드는 건 쉽지 않아. 자기가 잡음이랄지, 이물질이 되지 않을까 싶으니까. 연애에 푹 빠져 있을 수 있는 건 처음 석 달, 길어봤자 반년이잖아? 그 뒤로는 점점 냉정해져서 거기서부턴 서로가 상대방을 어떻게 인정하느냐야."(p.216)

  죽을 때는 어차피 혼자라도, 살아 있는 동안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가나의 아버지를 보고 그런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p.234-235)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은 이전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처럼 서정적인 묘사와 특유의 잔잔함으로 재미를 주는 소설이다. 오십 년이 더 된 고택에서 우아함을 말하고,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우아함을 다루고 있어서... 인생의 의미를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남의 눈을 의식하며 빈틈없는 생활로 심심함을 추구하고 있지만, 이것을 적당히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 천박하지는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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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 중 98명이 틀리는 한글 맞춤법 100명 중 98명이 틀리는 한글 맞춤법 1
김남미 지음 / 나무의철학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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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미, [100명 중 98명이 틀리는 한글 맞춤법①], 나무의철학, 2013.

  블로그를 하면서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만큼 신경 쓰는 것은 맞춤법이다. 다행히 검사기가 있어서 어느 정도 고민을 해결할 수 있지만, 그런데도 약간의 강박증으로 쓴 글을 자세히 살핀다. 영어권의 외국인이 수능 영어 시험을 치르면, 절반을 맞추기 어렵다고 하는데... 우리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검정 시험을 보면, 좋은 점수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말에는 실제로 언어의 규칙이 있고... 때로는 잘못 사용하는 어휘가 많다.

  전자책으로 출, 퇴근 시간을 이용해서 휘리릭~ 읽었다. [100명 중 98명이 틀리는 한글 맞춤법]이라는 제목 그대로 저자는 국어의 맞춤법 체계를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문법적인 설명에만 치중하고 있어서 살짝 지루하다. 좀 더 독자의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있는... 콩트나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하면 어땠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진중함은 피로함으로 상당한 인내를 요구한다. 하지만 저자의 성실함은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어법과 자주 틀리는 맞춤법을 꼭 집어내고 있어서 글쟁이(?)라면, 한번 읽어두면 두루 도움이 될 것이다.

  품사와 조사, 합성과 파생... 비슷한 발음으로 헷갈리는 말... 낫다와 낳다, 넘어와 너머, 어떻게와 어떡해, 붙이다와 부치다, 그러므로와 그럼으로, 반드시와 반듯이, 지긋이와 지그시, 바치다와 받치다, 받히다와 밭치다, 맞추다와 맞히다, 비치다와 비추다, 로서와 로써, 채와 체, -든지와 -던지, 바라다와 바래다, 안치다와 앉히다, 늘이다와 늘리다, 야위다와 여위다, 띄다와 띠다, 네와 예... 품위 있는 우리 말... 모양이 미슷해서 헷갈리는 말... 왠지와 웬지, 되다와 돼다, 며칠과 몇일, 알맞은과 알맞는, 예스럽다와 옛스럽다, 아무튼과 아뭏든, 퉁퉁 불은 라면과 퉁퉁 분 라면, 나는 슈퍼맨과 날으는 슈퍼맨, 재떨이와 재털이, 모둠 회와 모듬 회, 담그다와 담구다, 마라와 말라, 웃어른과 윗어른, 물러나거라와 앉거라... 띄어쓰기의 핵심은 단어... 공부하다와 공부 하다, 뿐과 만큼과 대로, 만, 먹는데와 먹는 데, 나랑 같이와 나같이, 못하다와 못 하다, 책인걸과 책인 걸, 이외에와 이 외에... 한자어... 결재와 결제, 안일하다와 안이하다, 결단과 결딴, 사단과 사달, 계발과 개발, 이용과 사용, 삼촌과 삼춘, 파투와 파토, 댓갈과 답글과 덧글, 곤혹과 곤욕과 고역, 역할과 역활, 유례와 유래... 고유어와 한자어...

  저자의 풍부하고도 해박한 학식은 단 한 권으로 부족했으리라... 이 책은 시리즈로 구성되어 3권까지 출간하고 있다. 충실한 내용, 부담스러운 가격... 전자책의 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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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지기가 들려주는 기이한 이야기
나시키 가호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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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시키 가호, 김소연 역, [집지기가 들려주는 기이한 이야기], 손안의책, 2005.

Nashiki Kaho, [IEMORI KITAN], 2004.

  나는 초판본을 가지는 것보다 절판본을 어렵게 손에 넣었을 때 더 기분이 좋다. 나시키 가호의 [집지기가 들려주는 기이한 이야기]는 우연히 초판본인 동시에 절판되어 가치가 크게 느껴진다. 몇 년 전, 어느 못생긴(?) 작가가 나눔으로 보내준 책이다. 최근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독서의 여유가 없어 자기 전에 조금씩 읽으려고 여름부터 시작했는데, 채 절반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가 마음먹고 끝을 보았다. 수필 형식의 글에 기이함이 더해져서 재미보다는 특이한 구성에 눈이 가는 작품이다.

  이곳은 학창 시절에 죽은 내 친구의 본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졸업한 후에 팔리지도 않는 글을 쓰며 변함없이 학생 시절의 하숙집에 눌러붙어 있었다. 달리 갈 곳도 없었고 이사할 돈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잡지에 글이 게재되는 정도의 벌이로는 먹고 살 수 없다. 그래서 영어학교에서 비상근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정직원이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역시 나의 본분은 글쟁이이니 너무 다른 일에 힘을 쏟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정중하게 거절했다.(p.9-10)

  와타누키 세이시로는 졸업 후, 학창 시절에 산속의 호수에서 보트를 타다가 행방불명 된 친구의 집에서 집지기 노릇을 하게 된다. 북쪽은 산이고, 산 옆에는 호수에서 끌어온 작은 수로가 있다. 남쪽은 밭으로, 그 밭에는 수로에서 끌어온 용수로가 있다. 연못이 있고... 마당에는 배롱나무, 고향초, 수련, 달리아, 어성초, 하눌타리, 대나무꽃, 백목련, 무궁화, 잔대, 야고, 단풍, 칡, 싸리 억새, 뻐꾹나리, 들국화, 노간주나무, 애기동백, 용수염, 레몬, 남천, 머위, 바람꽃, 패모, 산초, 벚꽃, 포도... 등이 계절별로 찾아온다. 작가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포함해서 집지기로 사는 동안 마당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는데, 정령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신비롭다.

  이불에서 머리만 빼꼼히 내밀고 벽 쪽을 보니, 족자 속의 백로가 허둥지둥 옆으로 달아나는 모습이 보이더니 어느새 족자 속에는 비가 내리고 그 너머에서 보트가 한 척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노를 젓는 사람은 아직 젊은...... 고도였다.(p.13)

  죽은 친구가 나타나고,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들어와 같이 산다. 꽃과 나무, 벌레와 짐승... 이웃 주민과 산사의 스님, 요괴와 영혼... 봄, 여름, 가을, 겨울... 마당에는 각가지 사연이 있다. 절반은 알지 못하는, 마치 식물도감 같은 다양한 식물의 등장은 일본 특유의 정서와 함께 판타지의 세계로 독자를 인도한다. 마당은 작은 우주이고, 그곳에서는 색다른 인연이 존재한다. 이생의 현실하고 확연히 다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신앙이란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는 것이며, 그래야만 저렇게 안타깝고 아름답게 떠오르는 법일세. 물론 비바람을 견디며 단련되는 신앙도 있겠지만, 이것은 이런 형태인 걸세. 함부로 파내서 남들의 시선에 드러내는 것만이 언제나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야. 특히 지금 여기 사는 우리들과는 속한 종교가 다르네. 밖으로 파낸다 하더라도 호기심의 시선을 받을 뿐이겠지. 그럼 가장 소중한 그 순수의 부분이 위태로워질 뿐이지 않겠는가.(p.87)

  넋을 잃고 무언가를 한없이 바라볼 때가 있다... 그것이 천혜의 자연경관이든 귀여운 애완동물이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멍하니 바라본다. 이것은 무언가에 홀린 것인데, 수달은 인간을 홀려서 물고기가 어망에 가득 잡힐 때까지 수로를 바라보게 만든다. 자연을 호기심과 감탄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을 작가는 상상력을 동원해서 무언가에 홀린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만남과 공존... 꽃과 열매는 매년 찾아오는 정해진 손님이지만, 여기에서는 경이롭게 느껴진다. 때로는 기이함이 부담스럽지만, 오늘은 마당에서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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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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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문학동네, 2013.

  웬만하면 읽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랜만에 읽은 국내 소설이다. 김영하라는 이름은 2000년대 중반, KBS 1라디오 프로그램 <김영하의 문화 포커스>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매일 저녁 10시 10분이면 공연 예술을 포함해서 문화계 전반의 소식을 들려주었는데, 나는 그의 차분한 목소리와 문학에 관한 내용을 좋아했다. 이후에는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서 그가 소개하는 책을 만났고, 최근에는 TV 오락(?)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의 작품에는 손을 대지 않았는데, 국내 문학에 관한 반감 때문이었으리라...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영화(원신연 감독, 2017.) 개봉을 이유로 이제야 읽게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그때까지 나를 추동한 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살인의 충동, 변태성욕 따위가 아니었다. 아쉬움이었다.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희생자를 묻을 때마다 나는 되뇌곤 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p.7)

  어느 문학평론가의 해설과 함께 작가의 말을 포함해서 173페이지 분량을 출, 퇴근 지하철에서 이틀에 나누어 보았다. 첫인상은 유려하고 유연하면서 담백함이 물씬 느껴진다. 너무 힘을 가하지 않으면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문장은 절제미가 돋보이고... 나는 시끄럽고 복잡한 환경에서도 술술 읽을 수 있었지만, 작가는 책상 위의 원고 노동자로 얼마나 많은 글을 썼다가 지웠을까? 고생의 흔적이 여백마다 묻어난다. 남이 하지 않은 일을, 아니 남이 아직 오르지 않은 산을 먼저 선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는 먼저 산에 올랐고, 땅을 선점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연쇄살인범을 소재로 해서...

  반야심경이 손에 잡힌다. 펼쳐 읽는다.

  "그러므로 공(空)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의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p.11-12)

  여기에는 작가의 독서, 종교, 사상, 철학, 음악, 예술, 역사, 의학... 등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마치 고전에 등장하는 현자의 목소리처럼, 그의 글은 머릿속을 오랫동안 울리게 한다.

  철학자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 이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을 보면서였다.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경계... 그 경계를 가르는 기준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였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퇴행성 치매로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인간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몽테뉴의 [수상록]. 누렇게 바랜 문고판을 다시 읽는다. 이런 구절, 늙어서 읽으니 새삼 좋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p.14)

  나의 이름은 김병수, 올해 일흔이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25~26년 전이다. 살인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 살인을 멈췄다. 희생자의 딸 은희를 입양해서 키웠다. 다른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나와 비슷한 놈이 나타났다. 박주태,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는 은희의 남자친구가 되어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이 생의 업, 내 모든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은희가 살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먼저 그를 죽여야 한다. 선수를 쳐야 한다... 치매 노인의 시각으로 서술하는 소설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다. 죽기 전에 바보가 될 테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될 테니까.(p.52)

  공(空), 불교에서 말하는 비움... 심오한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마음속의 모든 것을 비우면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 행복조차 비워야 하나? 하지만 주인공은 비움으로, 잊어버림으로 또 다른 고통을 맞이한다. 비웠으면 새로운 것으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야 하지 않을까? 고통 없이 바보로 죽는 걸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오랫동안 기억되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사는 게 아닌가...

  살인자로 오래 살아서 나빴던 것 한 가지 : 마음을 터놓을 진정한 친구가 없다. 그런데 이런 친구,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있는 건가?(p.57)

  나는 조용한 세상이 좋다. 도시에서는 살 수가 없다. 너무 많은 소리가 나를 향해 달려든다. 너무 많은 표지판, 간판,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표정들. 나는 그것들을 해석할 수가 없다. 무섭다.(p.94)

  책장에서 괜찮은 시를 발견했다. 감탄하여 읽고 또 읽으며 외우려 애썼는데, 알고 보니 내가 쓴 시였다.(p.96)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숨이 막힌다.(p.98)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오니 밤하늘엔 별들이 찬란하다. 다음 생에는 천문학자나 등대지기로 태어나고 싶다. 돌이켜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를 상대하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p.119)

  오늘은 정신이 너무 또렷하다. 내가 알츠하이머라는 것은 정말 사실일까.(p.123)

  미지근한 물속을 부유하고 있다. 고요하고 안온하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공(空) 속으로 미풍이 불어온다. 나는 거기에서 한없이 헤엄을 친다. 아무리 헤엄을 쳐도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소리도 진동도 없는 이 세계가 점점 작아진다. 한없이 작아진다. 그리하여 하나의 점이 된다. 우주의 먼지가 된다. 아니, 그것조차 사라진다.(p.148-149)

  시간과 기억의 싸움은 이미 정해진 승부이다... 약을 쓰고, 메모하고, 녹음해도 시간은 막을 수 없다. 나이 들어감이 서글프다.

  김영하의 소설을 더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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