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지기가 들려주는 기이한 이야기
나시키 가호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나시키 가호, 김소연 역, [집지기가 들려주는 기이한 이야기], 손안의책, 2005.

Nashiki Kaho, [IEMORI KITAN], 2004.

  나는 초판본을 가지는 것보다 절판본을 어렵게 손에 넣었을 때 더 기분이 좋다. 나시키 가호의 [집지기가 들려주는 기이한 이야기]는 우연히 초판본인 동시에 절판되어 가치가 크게 느껴진다. 몇 년 전, 어느 못생긴(?) 작가가 나눔으로 보내준 책이다. 최근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독서의 여유가 없어 자기 전에 조금씩 읽으려고 여름부터 시작했는데, 채 절반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가 마음먹고 끝을 보았다. 수필 형식의 글에 기이함이 더해져서 재미보다는 특이한 구성에 눈이 가는 작품이다.

  이곳은 학창 시절에 죽은 내 친구의 본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졸업한 후에 팔리지도 않는 글을 쓰며 변함없이 학생 시절의 하숙집에 눌러붙어 있었다. 달리 갈 곳도 없었고 이사할 돈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잡지에 글이 게재되는 정도의 벌이로는 먹고 살 수 없다. 그래서 영어학교에서 비상근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정직원이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역시 나의 본분은 글쟁이이니 너무 다른 일에 힘을 쏟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정중하게 거절했다.(p.9-10)

  와타누키 세이시로는 졸업 후, 학창 시절에 산속의 호수에서 보트를 타다가 행방불명 된 친구의 집에서 집지기 노릇을 하게 된다. 북쪽은 산이고, 산 옆에는 호수에서 끌어온 작은 수로가 있다. 남쪽은 밭으로, 그 밭에는 수로에서 끌어온 용수로가 있다. 연못이 있고... 마당에는 배롱나무, 고향초, 수련, 달리아, 어성초, 하눌타리, 대나무꽃, 백목련, 무궁화, 잔대, 야고, 단풍, 칡, 싸리 억새, 뻐꾹나리, 들국화, 노간주나무, 애기동백, 용수염, 레몬, 남천, 머위, 바람꽃, 패모, 산초, 벚꽃, 포도... 등이 계절별로 찾아온다. 작가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포함해서 집지기로 사는 동안 마당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는데, 정령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신비롭다.

  이불에서 머리만 빼꼼히 내밀고 벽 쪽을 보니, 족자 속의 백로가 허둥지둥 옆으로 달아나는 모습이 보이더니 어느새 족자 속에는 비가 내리고 그 너머에서 보트가 한 척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노를 젓는 사람은 아직 젊은...... 고도였다.(p.13)

  죽은 친구가 나타나고,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들어와 같이 산다. 꽃과 나무, 벌레와 짐승... 이웃 주민과 산사의 스님, 요괴와 영혼... 봄, 여름, 가을, 겨울... 마당에는 각가지 사연이 있다. 절반은 알지 못하는, 마치 식물도감 같은 다양한 식물의 등장은 일본 특유의 정서와 함께 판타지의 세계로 독자를 인도한다. 마당은 작은 우주이고, 그곳에서는 색다른 인연이 존재한다. 이생의 현실하고 확연히 다른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신앙이란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는 것이며, 그래야만 저렇게 안타깝고 아름답게 떠오르는 법일세. 물론 비바람을 견디며 단련되는 신앙도 있겠지만, 이것은 이런 형태인 걸세. 함부로 파내서 남들의 시선에 드러내는 것만이 언제나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야. 특히 지금 여기 사는 우리들과는 속한 종교가 다르네. 밖으로 파낸다 하더라도 호기심의 시선을 받을 뿐이겠지. 그럼 가장 소중한 그 순수의 부분이 위태로워질 뿐이지 않겠는가.(p.87)

  넋을 잃고 무언가를 한없이 바라볼 때가 있다... 그것이 천혜의 자연경관이든 귀여운 애완동물이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멍하니 바라본다. 이것은 무언가에 홀린 것인데, 수달은 인간을 홀려서 물고기가 어망에 가득 잡힐 때까지 수로를 바라보게 만든다. 자연을 호기심과 감탄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을 작가는 상상력을 동원해서 무언가에 홀린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만남과 공존... 꽃과 열매는 매년 찾아오는 정해진 손님이지만, 여기에서는 경이롭게 느껴진다. 때로는 기이함이 부담스럽지만, 오늘은 마당에서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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