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를 위한 투쟁 범우문고 178
루돌프 V.예링 지음, 심윤종 옮김 / 범우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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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6. 12. ~ 2008. 6. 15.

법학서적을 읽다보면 외국의 법학자들의 이름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이 이름의 주인들 가운데에는 우리의 기억속에 선택받지 못한 자들도 있고, 선택받은 자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의 기억속에 선택받은 이름 중 ‘예링(R.v.Jhering)’이 빠진다면 한국의 대표음식중에서 김치가 빠지는 격일 것이다.

민법총칙 교과서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예링이다. '권리'의 개념을 소개할 때 바로 '이익설'의 주장자가 바로 이 양반이다. 아직도 나는 권리의 개념에 대한 학설 중 의사설은 사비니, 이익설은 예링이라는 도식을 매우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물론 매우 유치한 암기요령의 결과물이다. 의사설은 '의사비니', 이익설의 'ㅇ'이니까 예링.. 학설의 내용도 잘 모르면서 무조건 이런 식으로 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스운 방법이었지만, 그래도 여태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암기도 하나의 기술이 아닐까 싶다.

법인제도나 점유제도 등과 관련해서도 이 분의 말씀이 나오긴 하나, 법학도로서 예링의 이름이 가장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있는 부분은 채권법의 ‘체약상 과실책임론’이 아닐까 싶다. 학창시절에는 체약상 과실책임론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었는데, 그다지 머리를 싸매면서까지 골머리를 썩혀야 할 심각한 논의는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법철학에서도 예링은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고는 하는데, 사실 그렇게 깊게 공부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나마 기억할 수 있는 것은 흔히 법과 도덕의 구별징표로서 설명하는 ‘법의 강제성과 도덕의 비강제성’에 대한 명제는 바로 이 분께서 주장하신 것이다.  

하여간 예링의 가장 대표적 논문이라고 하는 '권리를 위한 투쟁'을 지금에야 처음 읽었으니, 도대체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권리에 대한 예링의 이익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겨우 117페이지에 불과한 소책자를 읽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과연 나는 법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인지 한심하기 그지 없다.

이 논문의 핵심은 ‘우리는 투쟁하는 가운데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라는 명제로 압축될 수 있을 것 같다. 예링은 ‘법의 목적은 평화이지만, 그 수단은 투쟁이다. 법에 의해 보호되는 권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런 노력도 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권리침해에 대한 부단한 투쟁을 통해서 쟁취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또 ‘권리주장은 사회공동체에 대한 의무다’라고 주장하는데, 헌법학에서 등장하는 기본권 양면성론과 맞닿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 각자가 아주 하찮은 일에서까지도 자기의 권리를 용감하게 주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민족으로부터는 누구도 감히 그가 소유하고 있는 최상의 것을 빼앗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p.109

위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우리나라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외세에 빼앗기는데도 저항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개인의 권리 주장을 이기심으로 몰아부치고, 그러한 주장을 터부시하는 민족성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 논문은 지금 읽어도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대학자의 글은 뭔가 다르다. 名不虛傳은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한편 이 책의 번역자는 독문학자이신 심윤종 교수이신데, 법을 전공하신 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별 무리없이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사고 나서야 <책세상>에서 윤철홍 교수의 번역판이 출간된 것을 알게 되어 매우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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