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와 다산, 통하다 - 동서 지성사의 교차로
최종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 2008. 3. 19.~ 2008. 3. 25.

<그리스인 조르바>에 이어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읽던 중이었다. 

출퇴근시간대 지하철 안에서 주로 책을 읽는 나로서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으며 쉽사리 그 내용을 가늠하기 힘든 <감시와 처벌>을 가벼운 마음으로 지하철 안에서 읽으려고 시도를 한 것은 너무 무리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사실, <감시와 처벌>은 절반가량 읽기는 했으나 도대체 무엇을 읽었는지 푸코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짜증이 슬슬 나기 시작하여 <감시와 처벌>은 휴일에 시간을 내어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리라 마음먹고, 미리 사두었던 최종고 교수의 <괴테와 다산, 통하다>를 서재에서 꺼냈다.

법대생 시절부터 개인적으로 법사학과 법철학에 관심이 많은 터라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법사학/법철학 교수인 저자의 논문을 빠짐없이 읽곤 했었는데, 최종고 교수의 글들은 여타 법학교수의 글과는 뭔가 다른 맛이 있어, 과연 이 분이 괴테와 다산에 대하여 어떤 내용의 글을 쓰셨을까 하고 내심 기대에 부푼 상태였다.

주지하다시피 괴테는 법학을 전공한 문학가이고, 다산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형법 교과서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학자인데다, 두 사람 모두 다방면에서 그 재능을 펼쳤던 제너럴리스트인지라, '괴테와 다산'이라는 그 제호만으로도 경외심이 느껴졌다.

게다가 다산은 내가 최고로 존경하고, 내 인생의 지침인 분이어서, 내가 알지 못하는 다산의 또 다른 부분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저자는 다산과 괴테의 삶과 사상, 학문적 업적 등을 교차방식으로 전개하여 서술하고 있는데, 읽기가 매우 수월하다.

'글이 수월하게 읽힌다'는 것은 저자가 괴테와 다산에 대해서 남에게 가르칠 만큼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독자에 대한 전달력이 좋다는 의미이다. 몇 년전에 한길사에서 출간되었던 <루소>를 읽었던 적이 있는데, <루소>를 읽으면서 고생했던 기억과 비교된다.

자신이 쓴 글이 전문적 학술논문이 아닌 바에야 일반인이 읽어서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면 글쓴이의 이해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어떤 노교수님의 강의도 있었는데, 이런 점에서 최종고 교수의 글은 탁월하다고 할 수 있고, 영남대 법대 박홍규 교수의 <돈키호테처럼 미쳐>는 이 책과 비교된다.

다만, 이 책이 다산 보다는 괴테에 좀 더 치우쳐 있는 것은 아쉬운 점인데,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다산보다 괴테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한 아이러니한 풍토에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내 경우에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중학교 1학년 시절에 읽었지만, 다산의 저작물은 법대 3학년 시절에 <목민심서>를 처음 읽었으니, 다른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까? 어쩌면 <파우스트>는 알아도 <흠흠신서>가 무슨 책인지 모르는 이들도 꽤 있을지 않을까 싶다.

저자 역시 다산학에 대한 국내의 상황과 다산의 <여유당문집>의 번역이 아직도 완료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니 내가 전적으로 동의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다산과 괴테에 대한 내용이 아닌 이 책의 에필로그 부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위인을 위인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남이 잘되는 것, 남의 훌륭한 점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빗나간 권리의식으로 불평등을 참지못하는 '평등주의'가 우리의 심성을 자해하고 있다. 잘된 사람과 비슷해지려는 욕구로 발전되어야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보수적인 법학교수다운 글이긴 하나, 우리사회의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과연 우리사회의 불평등이 정당한 불평등인지'를 다산의 사상을 빌어 지적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괴테와 달리 삶의 대부분이 억압과 고통의 연속이었으나 그 억압과 고통을 오히려 혁신적인 작품과 사상으로 승화시킨 다산 선생에 대한 가볍지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책이, 다산 선생의 이해를 위한 입문서로서 훌륭하게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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