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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페이스
아미티지 트레일 외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도 한때 하드보일드, 느와르 액션에 빠져들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매우 오래전, 내가 아직 너무 어렸을 때라 기억이 희미한다.
그저 기억나는 거라곤 무법천지 혼란이 난무하는 가운데에도 그들만의 질서가 있었고
진한 남자들만의 우정, 그리고 배신, 언제나 결말엔 총성과 함께 매캐한 연기 속의 혼란...
돈에 울고 웃는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모습들만 기억이 난다.
이런 종류의 소설은 처음 접해보는거라서 더 그 신기한 매력에 빠져들고 단숨에 읽은 것 같다.
그리고 그리 어려운 풍자없이도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그리고 대범하게 그 시대상을 느낄 수 있는 글이라 더 좋았다.
이 책에는 호레이스 스탠리 맥코이의 <그들은 말을 쏘았다> 와 아미티지 트레일의 <스카페이스>
두 편의 하드보일드 소설이 실려있다.
두 편의 공통점은 경제공황의 암울한 사회현실 속에서도 어떻게든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던
두 청년의 비극적인 결말의 소설이라는 점이다.
우습게도 두 소설의 작가들 또한 불운의 삶을 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참 안타깝다.
좀 더 오래 살아있었더라면 좀 더 굵직굵직하고 멋진 그들의 글을 더 볼 수 있었을텐데...
<그들은 말을 쏘았다> 은 한 여자를 죽인 죄로 법정에 선 청년, 로버트 시버튼이
자신에 대한 판결을 들으면서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법의 심판은 그에게 너무나 가혹하기만 한데 그는 자신의 일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세상에 대해 비관적이기만 한 그녀, 글로리아는 항상 죽음을 꿈꾸면서도 한편으론 대박스타가 되기를 꿈꾸었다.
사하라 사막으로 가 단편영화를 찍고 싶다는 그의 꿈은 총에 맞아 쓰러지는 그녀와 함께 물거품이 되었을테지.
흥분과 순수한 기쁨의 열기보다는 상금에 눈이 먼 사람들의 음모, 범죄가 난무하던
댄스 마라톤이라는 장소자체가 로버트의 앞으로의 비극을 예견하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자고 일어나면 스타가 될지도 모르는데. 헵번과 마거릿 설러번, 또 조세핀 허치슨도 다 그랬잖아.
하지만 용기만 있다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어. 뭐나면, 창문에서 뛰어내리거나 시가전차 앞으로 뛰어드는 거야."
... (중략) ...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사람들은 사는 데는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서 왜 죽는 데는 관심이 없는지 몰라.
왜 그 잘난 과학자 양반들은 더 오래 사는 방법에만 목을 매고 기분 좋게 죽는 방법은 알아내려고 하지 않는 걸까?
이 세상에는 나같은 사람, 그러니까 죽고는 싶은데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할 텐데 말이야."
- p.18-19
<스카페이스> 는 갱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토니 구아리노는 미국이민자로 가족을 사랑하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을 존중하지는 않았다.
열심히 살았지만 항상 가난했기에 그들의 방식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진주조개가 진주를 품듯, 그렇게 성실한 가정에서 또 하나의 갱이 잉태되는 것이었다 (p.162)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표현이다.
부와 성공을 꿈꾸던 토니가 갱이 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부조리한 사회속에 살고있었다. 어느 쪽이 진정한 선이고 악인지 구분할 수 없는 혼돈의 시기였다.
경찰과 검사들,지방의원들은 갱단들과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었고 서로의 이익안에서
서로의 불법적인 일을 눈감아 주고 있었다.
토니의 잔인성과 호전적인 성격은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의 가족애와 그의 윤리관은 어느정도 호감이 갔고
그랬기에 그의 비극적 결말에선 매우 안타까웠다.
가족을 사랑하던 마음은 둘째치고서라도 혼돈의 시기에 그가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그는 정말이지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갔기 때문이었다.
알 파치노 주연의 동명의 영화는 원작과는 내용이 좀 다르다고 한다.
나는 다시한번 토니의 삶을 영화로 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되도록 원작에 충실하게.. 그 살떨리던 기장의 순간순간들, 성공에 다다라 희열에 찬 토니의 모습
그리고 여자의 질투와 오해로 마지막에 치닫는 마지막 숨가쁜 총격씬과
죽음의 순간, 총알을 피하지 않던 그의 마지막까지... 그 모습이 참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