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힘
원재훈 지음 / 홍익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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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날은 타인이 나를 이해해주리라는 일말의 기대를 다시 한번 접은 날이었다. 정처없이 계속 걸었고, 괜찮다가도 문득문득 치밀어올라 계속 울었다. 해가 지고 오갈데 없어진 나는 도서관으로 갔고, 책은 어제 생각없이 빌리고 가방채로 그대로 들고 나와서 들어있었다. 웃겼다. 내가 내일 가장 고독하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려는 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고 다 읽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신기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제목에서 예상가능한 그대로에 충실한 내용이다. 가장 고독했던 시기에 가장 본연의 힘을 이끌어내 훌륭한 창조를 해냈던 인물들을 많이 알려준다. 당연히 작가, 미술가등의 예술가들이 대부분이다. 창조엔 필연적으로 고독한 시기를 지나야 하기 때문일까. 그 외의 고독한 직업인 종교인, 산악인, 철학자들이 왕왕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하나같이 이름 앞에 '위대한' 이란 수식어가 붙어있다.


 비단 '위대한'을 지향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살다보면 누구나 몸서리치게 고독한 때가 있기 마련이고, 그 때에는 주변에 사람이 있든 없든 혼자 인 것만 같다. 그 때 '위대한'이 될 사람과 나의 차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중할 무언가가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일 것이다. 그런 사람은 고독할 때에도 고독하지 않다. 단지 고독해 보일 뿐이다.


 작가에겐 글이 있고, 예술가에겐 그림이 있다. 산악가에겐 산이있고 철학가에겐 삶이 있다. 나에겐 무엇이 있는가. 그걸 생각해보면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자 슬퍼할 것도 없고 절망에 빠질 일도 없어졌다.


 사람마다 고독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 누군가는 고독과 외로움을 동의어로 생각할 지 모르고, 누군가는 너의 고독은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라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 나보다 더 고독하다고 내가 힘들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이사람들에 비하면 사정이 낫네' 하는 상대적 위안을 받고자 한 것도 아니다. 내가 이런 책을 읽고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은 답이 없다는 답 뿐이다. 


 견디다보면 '위대한' 날이 올거라고 생각해서 '위대한' 자들은 그 지난한 날들을 견딘 것일까. 미래의 내가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을 보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은 과연 당시의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을까? 똑같이 막연하고 막막했을 것이다. 젊은 시절의 릴케 또한 "힘내!"라는 말에 구원받는 사람이었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다. 똑같은 것이다.


 고독은 어차피 없어지지 않는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은 내버려두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야 한다. 책은 '견뎌내라'고 얘기한다. 그 위대한 자들도 그냥 '견뎠다'. 그렇다면 무얼 하며 견딜 것인가. 작가에겐 글이 있고 예술가에겐 그림이 있다. 나에겐 무엇이 있을까. 아직 없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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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심연 - 뇌과학자, 자신의 머릿속 사이코패스를 발견하다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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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일단 소재부터 매우 흥미진진한데다가 재미까지 있다. 그리고 무척이나 놀라웠다. 싸이코패스에 대한 놀라운 얘기들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뇌를 연구하는 저명한 학자조차도 자기 자신에 대해 이렇게나 몰랐다는 것이. 이상한 자기합리화 같지만 나는 여기서 큰 위안을 받았다. 그래, 내가 지금 나를 모르겠는 건 당연한거야! 자기계발서가 나쁜거야


 저자는 의대교수로 재직중인 뇌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싸이코패스의 뇌를 봐달라는 의뢰를 받고 공통된 특징을 찾아 논문까지 썼는데, 다른 연구의 대조군으로 찍어놨던 가족들 뇌 사진에 전형적인 싸이코패스의 뇌가 있었고, 그 뇌는 자기 자신이었단다. 이게 인트로다. 그 후 책은 '앗 그러고 보니, 앗 이런적도 있었지, 앗 그래서 그랬던 거였나'의 흐름으로 흘러간다.(저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통수를 몇번이나 맞는다. 아니 대체 주변에 수많은 심리학자, 정신의학자들이 있고 자신도 뇌를 연구하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신을 모를 수 있나 생각될 정도로. 까면 깔수록 나오는 요소들이 너무 많아 읽는 나조차도 놀랍다. 심지어 60대가 되어서야 알게되는 사실이다.)


 대중에게 많이 쓰이는 용어인 것 과는 달리 학계에서 '싸이코패스'란 말은 의견이 분분하다. 명확한 것이 아니기에 싸이코패스적 특징을 완전히 다 갖고 있는 명백한 경우가 아닌 이상 다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은 아니란 얘기. 저자에겐 분명한 싸이코패스적 특징을 보이는 뇌가 있지만 결정적인 한 요소가 빠져있다. 그것은 바로 '어린시절의 학대'. 그렇기에 그는 싸이코패스 통념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반사회적 성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현재 무탈히 성공한 사회인이고, 의대교수인 뇌과학자이고, 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고, 가정도 꾸리고 잘 살고 있다.


 그래서 그는 까면 깔수록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싸이코패스적 특징(과 폭력 성향을 지닌 혈통, 그리고 정신장애)에도 자신이 앞으로 범죄자가 될 거란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그가 나름대로 결론 지은 '세 다리 의자(두개는 뇌와 유전자의 특징으로 본성에 해당하고 한 다리는 '어릴 적 학대'로 양육에 해당)' 이론에서 자신은 분명하게 한 다리가 없으므로. 그리고 어린시절은 이미 지났기에 그 다리가 만들어질 일은 앞으로도 영영 없을 것이므로. 그렇기에 그는 계속해서 밝혀지는 부합되는 특징을 발견해도 웃어넘길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동시에 과학자로서 그가 생각해왔던 것들도 전복된다. 양육과 본성 중, 본성(80%)에 많이 기울어져 있던 저울에서 자기 자신 만큼의 무게추가 양육 쪽으로 달리게 된다. 그 자신이 증거이므로. 그러나 이걸 양육이 본성을 이겼다거나 양육이 본성보다 크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 그는 여전히 내재돼있는 사람이다. 다만 치명적인 반사회적 성향만 양육 덕분에 발현되지 않았던 것일 뿐, 그는 확실히 사고방식자체가 '보통사람'과는 이질적이다. 서문에 자신의 얘길 솔직하게 밝힌만큼 누군가 나를 떠나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하더니 책을 읽어보니 확실히 그럴만하다(그리고 몇은 떠났다).


 싸이코패스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알려진 '타인에 대한 공감' 저자는 이게 없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걸 몰랐다(원래 없는 사람에게 뭔가가 없다고 자각하기란 힘들다). 자신은 외향적이고 사교적이고 인기 많은 재미난 사람이었기에. (그동안 가까운 사람들이 그의 이질적인 특성을 무수히 얘기해왔지만 귓등으로 듣기도 했다) 자신의 뇌가 싸이코패스의 뇌라는 게 밝혀지고 그를 계기로 과거를 되짚어보다가 결국 인정한다. '아, 그래, 난 역시 타인에 대해 관심이 정말로 없던 거였어!' 이상하게도 난 여기서 웃었다. 뭔가 통쾌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타인을 공감하려고 노력하면 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그는 재확인 했을 뿐이다. '나는 정말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고. 그건 바꿀 수 없는 사실이라고. 그러나 그는 이제 성의를 보인다. 흥미없는 모임에 참석하는 것 같은 방식으로(그렇지만 그건 그냥 맞춰주는 것 뿐이지 그가 바뀌려고 한다거나 바뀐 것은 아니다).


 책의 마무리는 일종의 합리화처럼 읽었다. 싸이코패스에 대한 무시무시한 통념과는 달리 그런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범죄자로 크는 것은 아니고,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도 아니라는 얘기(불필요했다면 세대를 거쳐 유전자가 없어졌어야 할 테지만 남아있다는 건 곧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얘기이므로). 다만 위험한 특성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정도의 얘기를 해준다.


 범죄자로 만나는 싸이코패스의 말을 들어보면 확실히 인간의 선을 넘은(혹은 없는) 느낌이지만, 이렇게 사회적인 싸이코패스의 얘기를 들어보니 어떤 점에서 보통사람들과 사고방식의 차이가 나는지를 짐작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시선이 다르고 느끼는게 다르니 생각도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뇌가) 다르게 태어난다' 그러므로 '바뀔 순 없다' 그러나 '(친사회적으로) 다듬어질 수는 있다.' 


+) 중간중간 뇌 스캔사진과 함께 생물학적 설명이 꽤 구체적으로 가미되는데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도식으로 알고 있던 것과 글로 접하는 건 역시 다르다.

 과학은 어쩔 수 없이 (아무리 쉽게 설명한다 하더라도) 글보다는 도식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

 글 이해하면서 동시에 떠올리면서 읽느라 그 부분에서 좀 오래 걸렸는데

 전문용어가 많으므로 딱히 이해가 안가면 그냥 날림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어차피 결론은 굵은 글씨로 빠밤하고 표시되어 있으니.

 (흐름에는 지장없다)


 생물학용어가 번역이 잘 되어서 

 (역자가 제멋대로 작명하는 경우도 많이 봤는데 이 책은 잘 번역됨. 

 그리고 영어를 옆에 계속 표기해주어 식별이 쉬웠다)

 마지막에 역자를 봤더니 화학과 출신이더라. 어쩐지.



++) 책을 읽으면서 또 놀랐던 것 하나는, 아직도 뇌와 유전자는 연구가 덜 돼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의대 교수 조차도, 아직 많은 것을 모른다.  

 너무나도 복잡하고 많은 것이 얽혀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결과로 원리와 작동방식을 추측하고 이해해보려고 할 뿐이다.

  


+++) 원제는 『The Psychopath Inside』인데 제목도 참 잘 바꿨다. 흥미유발로 딱인 듯.



+++) 혹시 인터넷에서 싸이코패스 테스트나 싸이코패스의 특성을 읽고 혹시...? 했던 사람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면 좋겠다.

 주변에 짐작가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더.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알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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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찌질한 위인전 - 위인전에 속은 어른들을 위한
함현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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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질하다'는 단어에는 많은 것이 함의되어 있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무엇을 '찌질하다' 여기는지는 각자 다를 것이다. 책은 '찌질한'이라는 수식어에 어떻게든 넣어서 설명하려 했지만 그들 대부분이 내가 생각하는 찌질한 범주에 들어가진 않는다. 몇은 찌질한 것을 넘어 치료가 필요한 환자일 뿐이고, 몇은 자신의 찌질함을 알고 처절하게 직면해나가려 했기에 오히려 더 위대하고, 몇은 맞긴 하다. 그들은 확실히 찌질했다.


 상식적으로 세상에 찌질한 면 하나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어린시절 읽었던 위인전으로는 전혀 알 수 없었기에 읽으면서 나의 유년시절을 사기당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위인이라 불리는 자들의 업적만을 열거한 위인전들은 사기다. 커서 생각해보면 확실히 해로운 책이다. 한쪽 면만 보여주기에.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고 간단하지 않고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여주고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책들은 분명히 해롭다. 


 이 책 또한 위인의 찌질한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 쪽 면만 보여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맥락을 살펴봐준다. 물론 인물간의 편차는 좀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 훌륭한 사람이 왜 그런 언행을 했는지 상황을 살펴봐주고 가급적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인물의 평전속에서 문구를 찾아오기도 하고, 시대상황을 설명해 주기도 하기에 굳이 평전을 읽지 않아도 대신 읽어서 정리해준 저자 덕분에 평전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위인마다 편차는 좀 있다. 어떤 위인은 신랄하게 까고, 어떤 위인은 별로 할 말이 없는데 길게 늘인 것 같기도 하다. 그건 나의 배경지식에 따른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김수영, 고흐, 이중섭, 리처드 파인만, 허균, 괴벨스, 간디, 헤밍웨이, 넬슨 만델라, 스티브 잡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중에서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안다고 할 수 있는 이도 없었다. 고작 그들의 저작 혹은 관련책 한 두권을 읽어봤거나, 위인전에서 만났거나, 그의 그림을 봤거나 노래를 들었거나 하는 정도였다. 그나마 책으로 만난 이는 이미 아는 것 반 모르는 것 반이었지만 작품으로 만나 삶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잘 몰랐던 이들은 읽으면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김수영은 오히려 읽으면서 더 대단하다고 느꼈고('김일성 만세' 얘기가 매우 인상깊었다), 넬슨 만델라 또한 여전히 위인이라고 생각한다(그가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기에 더욱더). 고흐와 이중섭은 그저 불쌍하고 또 불쌍했고, 파인만은 가장 안 찌질한, 그래서 쓸 거리가 없는데 억지로 썼다고 느꼈다(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매우 양호하기에). 허균의 파멸은 안타깝고(그토록 천재라면서 왜 다른 방식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괴벨스는 비뚤어지는 과정이 신기했다(위인이 될 만한 능력이 노선을 어떻게 잘못타는지를 알 수있다). 간디는 읽으면서 가장 배신감 느꼈다(그의 모순적인 한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기에).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찌질함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은 헤밍웨이와 스티브 잡스. 책임전가하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전혀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은 캐릭터다. 그리고 외전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찌질하지 않지만 왠지 찌질함(루저)을 대표하는 가수였고, 위인도 아니었지만 어쩐지 가고나서 위인이 된 듯한 '찌질한 위인'의 모습으로 살다간 그이므로 책에 실릴 만 하다.


 읽으면서 어떤 것을 맹신하거나 혹은 어떤 사람을 우상화해 나의 삶의 목표로 삼는 것도 좋지 않겠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모든 것엔 양면이 있다. 항상 좋을 수도, 항상 나쁠 수도 없다. 그러나 한 쪽면만 보여주면 보는 사람은 오해하게 된다. 아 역시 훌륭한 사람은 뭔가 다르구나. 다르긴 다르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선 너무나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성취가 있는 반면 그들도 어쩔 수 없이 극복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 그런 걸 알아야 한다. 하나가 훌륭하다고 전부가 훌륭한 것은 아니므로. 



+) 시리즈로 계속 나오면 좋겠다. 
좀 덜 유명하더라도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 위인들 참 많을텐데.


++) 김수영 평전이 읽고 싶어졌다. 그는 알면 알수록 참 대단한 인물이었던 듯.


+++) 위인의 업적만이 아닌 다른 면을 알고 싶은데 각각 평전을 읽을 시간이 없다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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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2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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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번주로 접어들면서 목격자 제보가 뚝 끊겼다. 

- 첫 문장


☞ 본격적인 재미는 2권 부터다. 인물도 헷갈리지 않으며 세 곳의 상황파악도 다 됐으니 남은 것은 파국으로 치닫는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 뿐.


 1권을 읽으면서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나는 각기 세 곳의 의심스러운 세 사람을 보면서 실은 장소만 다른 것이 아니라 시간도 다른 것이며 결국은 그 세 사람이 동일인물이 되지 않을까 짐작했었다. 형사가 쫓고 있는 이야기가 현재 시간이고, 셋 중 하나가 이와 만날 것이고 나머지 둘은 과거와 더 과거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하고.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더불어 1권을 읽으면서는 이해 가지 않았던 표지의 믿음 어쩌고 하는 문구가 절절히 이해가기 시작했다. 제목인 '분노怒'와는 다르게 사실은 '믿음信'에 관한 소설이었던 것이다. 서로 철썩같이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과거를 모르더라도 자신이 본 상대의 모습만을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내가 상대를 다 알지 못하더라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책은 그걸 보여준다.




(※스포) 


 세 이야기는 처음의 살인사건과 연관된 듯 흘러가지만 사실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셋 중 하나만이 형사가 쫓고 있던 용의자였고 나머지 둘은 전혀 무관한 사람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별개였다. 같은 티비방송을 보고 각자 가까운 이를 의심하고 고민했지만 사실 그들은 전혀 연관성이 없었다. 그리고 의심의 결과는 참혹했다. 100 아니면 0이 되는 도박에서 그들은 다 실패했다. 


 믿지 못한 자는 그 때문에 소중한 걸 잃었고, 믿은 자는 믿었기 때문에 참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각각 믿어야 할 사람을 믿지 못했고, 믿지 말아야 할 사람을 믿었다. 의심하지 않아도 될 자를 의심했고, 의심해야 하는 자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결과를 알고 봤을 때의 이야기이고 내가 만약 그 상황이라면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혹은 의심 할 수 있었을까.


 그렇기에 소설이 하고자 하는 얘기는 처음의 살인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토록 알고자 했던 '왜 죽였는가'의 의문은 끝까지 알려주지 않고 끝난다. 소설 자체도 살인사건과 연관된 듯 하나 실상은 무관했던 것이다. 사건 자체보다는 그로 인해 파생된 의심을 보여준다. 사건을 몰랐더라면 차라리 행복했을.



 아빠 유헤이는 딸 아이코에게 치명적인 과거가 있기에 알고도 좋아해주는 다시로에게도 그 정도의 치명적인 과거가 있어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빚이 많은 것 정도로는 아직 딸 쪽의 무게추가 무거우니까. 그렇게 그는 아빠인 자신조차 딸의 행복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딸의 행복을 잃게 만들었다.


 유마 역시 자신의 어머니에게까지 잘하는 나오토의 행동이 좋으면서도 미심쩍었다. 낮에는 도통 무얼 하고 다니는 지 몰랐고 만난 기간이 길지 않은 만큼 믿음이 깊지 않았던 것이다(동성애자 커플이라는 불안이 더욱더 의심에 불을 지폈을 것이다. 서로에 대해 완전히 알고 있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관계이기에). 그렇기에 그의 말도 온전히 믿지 못해 (사실 나오토는 가장 진실된 사람이었음에도) 좀도둑과도 쉽게 연결지었고 살인 용의자와도 연결지었다. 결국엔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고, 그 댓가는 가장 뼈저린 결과로 돌아왔다. 절대 되돌릴 수 없는 형태로. 


 믿지 않아야 할 사람인 다나카를 믿은 고등학생 이즈미, 다쓰야는 어른들의 사정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본 그의 모습을 순수하게 믿었다. 그건 그들이 어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그들의 관계는 친구정도의 관계였기에 더 의심할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닐까. 미심쩍은 게 있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는 다른 이야기의 관계와는 조금 다르다. 다른 인물들은 애인 혹은 딸의 애인이 되는, 가족이 되기 전 단계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 관계의 깊이가 얕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쓰야는 다나카를 '믿었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들은 목숨과도 같은 깊이로 그를 믿었던 것이다.


 형사 쪽의 이야기에도 수상한 여자가 나온다. 그리고 형사는 믿었다.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과거이지만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 자신의 의지로 절대 찾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안정적인 듯 보이는 관계는 영원할 수 없다. 뭔가를 빼놓고 믿는 다는 것은 사실 그 자체를 믿지 않는다는 얘기와도 같기에. 형사는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에 관계를 진전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여자쪽에서 형사를 믿지 못했다. 찾아보지 않겠다 혹은 찾아보고 다 알고 있다하더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그녀는 믿지 못했다. 




  결국 타인을 믿고 안믿고는 서로의 저울이 비등하냐 아니냐의 문제일지 모른다. 그러려면 모든 것을 알고 재봐야 하는데 과거를 숨기는 사람과는 무게를 잴 수 조차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재봐야만 한다면 과거의 그사람에 가중치를 두느냐 내가 본 지금의 그사람에 가중치를 두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나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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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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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후, 남자는 여섯 시간이나 현장에 머물렀고, 대부분의 시간을 알몸으로 지냈다. 
- 첫 문장

 

☞ 소설은 참혹한 범행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 부부가 집에서 살해당했고 그 현장에는 '분노怒'가 써있었다는 것과 용의자의 몽타주도 만들어지고 신원확인도 다 됐으나 도주 후 아직 잡지 못한지 1년째라는 설명.


 그리고 소설은 갈라진다. 전혀 무관해보이는 세 곳의 이야기와 범죄자를 쫓는 형사의 이야기로. 3+1의 이야기가 교차전개되기에 처음에는 정신이 없다. 이름부터가 헷갈려서 읽다가 얘가 걘가? 걔가 얜가? 싶어 앞장을 다시 펼쳐보기 일쑤였다. (게이도 나오기에 처음엔 인물의 성별도 헷갈렸다) 중반까지는 그렇게 상황 구별하기에 바빠서 재미라곤 없었다. (꾸역꾸역 읽었다)


 세 곳의 다른 이야기에 세 명의 수상한 자들이 있다. 요헤이-아이코 부녀에게는 직원 다시로가 있고, 게이인 유마에게는 수상한 첫만남의 나오토가 있고, 오키나와로 막 이사 온 여고생 이즈미에게는 조그만 무인도(별섬)에서 만난 다나카가 있다. 이들 각각은 용의자 야마가미의 특징을 하나씩 가지고 있고(오른쪽 뺨에 점 세개, 왼손잡이), 과거를 숨기고 있다는 (모른다는) 공통점이 있다.


 처음에 그들을 사건과 연관시켜 의심하는 건 독자뿐이다. 굳이 사건의 용의자와 결부시키지 않더라도 그들 자체가 충분히 수상한 면이 있어서 수상한 그들과 친밀한 주변 사람은 각각이 다른 이유로 의심한다. 친밀해지는 것과 비례해서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와 동시에 형사쪽에서 텔레비젼 공개수사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용의자의 특징을 알게된 그들은 의심을 추가한다. 그들이 과거를 숨기는 이유가 혹시 이것 때문은 아닐까하고. 


 1권은 그렇게 인물 상황 설명과 떡밥 그리고 의문점만 제기하고 끝난다. 마치 2권 안 읽을 수 없을걸? 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해결되는 건 없다. 모든게 물음표다.


(2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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