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2 : 자연 명승 편 - 김학범 교수와 함께 떠나는 국내 최초 자연유산 순례기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2
김학범 지음 / 김영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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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洞天' 이란 말이 있다. 신선이 산다는 별천지를 이르는 말인데 한마디로 말한다면 산좋고 물좋은, 그야말로 끝내주는 경치를 보여주는 곳이다. '洞天' 이란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다지 멀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장 가까이에서 찾아본다면 조선시대 한양에서 유명했다던 '백석동천'과 '청계동천'이 있다. 한동안 이곳저곳을 그야말로 들쑤시고(?) 다녔던 TV프로그램으로 인해 더 유명해진 백사실계곡이 있는 곳이 '백석동천'이고 부암동 위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안평대군의 집터라는 곳 주변에서 '청계동천'이라 새겨진 바위를 쉽게 만날 수가 있으니 그 시대만해도 백악산이나 인왕산이 얼마나 좋은 곳이었을까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겸재 정선이 그렸다는 <인왕제색도>만 보더라도 인왕산의 빼어난 자태를 볼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동천'이란 말을 듣게 되니 두개의 장면이 떠오른다. 하나는 예천의 '仙臺洞天'이고, 하나는 성흥산성으로 오르던 길에서 보았던 '雨花洞天'이다. '선대동천'이야 말 그대로 신선이 사는 곳과 같다는 의미일테지만, '우화동천'이란 말은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 주변의 풍광보다는 뒤에 자리한 대조사의 영향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말이 안고 있는 의미가 상당히 매력적임에는 분명하다. '선대동천'이라 할 수 있을만큼의 경관을 자랑하는 선몽대는 추천해주고 싶은 곳중의 한 곳이기도 하다. 바위위에 세워둔 정자의 당당함 또한 대단하다. 그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가히 신선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함은 물론이다. 그러니 '洞天'이라는 말을 썼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의 경치가 그 시절에 비해 조금은 덜 할테지만 사실 찾아보면 그에 견줄만한 경치를 보는 게 어렵지는 않다. 보자고 들면 보인다. 책의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보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명승지는 정말 많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명승지로 뽑은 기준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저 경치만 좋다고해서 명승지로 지정한 것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살펴보니 글쓴이의 전작으로 역사문화 명승을 다루었던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1>이 있었다. 전작을 먼저 보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불교문화권에 속한 우리는 답사를 가든 명승지를 찾아가든 쉽게 절집을 만나게 된다. 그 절집들이 자리한 곳의 대부분이 산좋고 물좋은 곳이니 바로 그곳이 명승이 아니고 어디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 크게 본다면 역사문화 명승이나 자연유산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오래전 안면도의 꽃지해수욕장에서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 사이로 지는 해를 본 적이 있는데 예상대로 책속에서 그 곳을 만나니 반가웠다.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던 청송의 주산지를 처음 찾았을 때는 그 경관보다는 왠지 모르게 안스럽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기도 했었다. 우리나라를 일러 금수강산이라 한다. 그만큼 빼어난 경치를 가진 곳이 많다는 말일 것이다.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 사이를 걷고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아스팔트위를 걷다가 어느 순간 시원한 바람과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걷는 산천에서의 일상은 상상만으로도 황홀할 것이다. 그러니 이 도시를 떠나는 순간 어딘들 '洞天'이 아닐까? 하지만 그 멋진 경치를 품고 있는 곳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간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음이 급해진다. 하루빨리 미황사를 품고 있는 달마산을 보고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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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맨발
한승원 지음 / 불광출판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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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라는 제목을 달고 화제가 되었던 사진 한장이 있었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었다. 오랜 연습과 고된 훈련으로 제멋대로 찌그러져버린 못생긴 발.. 그 생김새가 말해주는 인내의 세월이 아름답다는 말이겠지만 그 후로도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의 발을 사진찍어 올리며 아름다운 발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박지성의 발, 이상화의 발처럼 말이다. 문득 생각난 동화 한편 때문에 책을 읽다가 슬그머니 웃음이 나기도 했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눈, 코, 입, 귀, 손, 발이 서로 제가 더 잘났다고 떠들어댔다는 동화말이다. 결국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몸뚱이 자체를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게 발일테니 어쩌면 발이 더 큰소리 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살풋 웃음이 난 것이다. 발은 사람의 모든 장기를 그 안에 담고 있으면서도 온갖 더러운 것을 밟고 다녀야 한다는 것 때문에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손이나 발만큼 그사람의 역사를 표현해주는 존재도 없지 싶다. 그만큼 발의 중요성은 두말 할 필요가 없을 터다. 그래서 그 발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사람의 맨발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내심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의 모습보다는 또다른 부처의 모습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한방 맞은 느낌이랄까? 뭔가 색다른 것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마저도 내려놓지 못하는 나의 욕심이었다는 걸 알게 되니 한편 부끄럽기도 하다.

 

싯다르타는 샤카족의 태자로 태어났다. 어머니 마야 왕후가 아이를 낳고 7일만에 죽자 이모 마하 프라자파티 왕후의 손에 의해 길러진다. 자라는 과정이야 왕세자 교육을 받는 우리네 역사속의 왕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그들만의 계급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싯다르타가 출가를 하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카스트 제도는 브라만(승려계급), 크샤트리야(무사계급), 바이샤(工商계급), 수드라(노예계급) 등 4개 계급 외에 수드라 이하의 계층으로 구성돼 있다. 수드라 이하의 계급이란 것은 불가촉천민이라 불리는 '다리트(Dalit)'로 온갖 멸시와 배척을 받으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3D 업종에 종사한다. 이들은 인도 인구의 15%를 차지한다. 이보다 더 낮은 계급도 있다. '부족민' 또는 '트리발(Tribal)' 로 일컬어지는 토착민들인데 약 5,000만 명정도나 된다고 한다. 다리트와 트리발은 아예 카스트에 끼지도 못하는 열외 인간으로 사람대접을 못 받는다. 계급으로 나뉘어진 인간사회를 어떻게 해보지도 못한 채 열반에 든 석가모니도 그렇고 인도가 내세우는 위인 마하트마 간디도 어쩌지 못했던 것이 바로 카스트 제도인 걸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반에 든 후 제자 가섭에게 관밖으로 발을 내밀어 보여주었다는 일화도 그렇지만 부처와 제자들과의 일화에 대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모든 것이 '신의 뜻' 이라는 말로 정당화시켜버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어 고뇌에 빠진 싯다르타가 마침내 출가를 결심하고 성을 나서는 장면은 항상 알 수 없는 기대감에 부풀게 한다. 원래 없었던 것이라거나 非想非非想處 와 같은 어려운 말들은 차치하고라도 八正道만큼은 그대로 가슴속에 우뚝 세워두고 싶은 욕심이 난다. 마음이 고통에서 멀어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팔정도는 中道를 말하기도 하는데, 해탈에 이르는 바른 길은 감각적 쾌락을 구하는데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나친 고행으로서 자신을 괴롭히는데 있는 것도 아니며, 그 양 극단을 떠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도가 불교의 발상지임에도 불구하고 불교신자가 그다지 많지 않은 이유를 혹자는 불교의 남녀평등 사상이 카스트제도에 반하는 까닭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내부의 권력다툼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수행중인 싯다르타를 찾아와 했다는 악마의 말이 생각난다. "인간은 그때그때 죄를 짓고, 참회하고 신께 빌어 용서를 받으며 살아가도록 점지되어 있다"는. 그러니 신께 복이나 구하면서 살라는 그말은 왠지 서글픈 여운을 남긴다. 솔직하게 말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었지만 부처를 '영혼의 스승'이라 말하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영혼의 스승에게 바치는 헌정글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부처의 일생중에서 출가에 더 큰 의미를 두고 글을 썼다고 한다. 아이에게 읽혀도 될 만큼 쉽게, 이해하기 편하게 쓰여진 글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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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의 목소리들 - 1900년, 여기 사람이 있다
이승원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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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여기 사람이 있다... 부제가 주는 느낌이 이채롭다. 여기라면 어디일까? 그것도 1900년대라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1900년대라면 우리가 흔히 근대라고 말하는 시기다. 근대화의 시기라하면 어떤 게 가장 먼저 떠오를까? 모던 보이나 모던 걸? 전차? 소소하게 떠오르는 것들이 모두 18C 말에서 19C 초의 것들이다. 그만큼 시끄러웠을 것이다. 저마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을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어서. '시사만평으로 읽는 대한제국 사람들의 목소리'라는 말이 흥미로웠다. 시사만평, 대체로 단 한컷의 만화로 표현되어지는 세상의 이야기다. 어렸을 적부터 신문 한쪽에 실리는 만화가 좋았다. 그 습관이 지금도 웹툰만 보면 마음을 빼앗겨버리게 만들었지만 몇 장 되지 않는 그림으로 많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다는 그것이 정말 좋았다. 그 당시의 사회상을 그림 몇조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자(?)들에 대한 부러움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시사만평 혹은 만화만평이라는 말을 들으면 지금도 여지없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고바우 영감>이 있다. 위로 삐죽하게 솟아오른 머리카락 한올이 매려적인 아저씨가 주인공인데 풍자도 풍자지만 불합리한 모순에 대해 속시원하게 비판하기도 했던 모습도 볼 수 있어 좋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동아일보에 이 만화가 실렸었는데 지금이야 모든 신문이 그게 그거라는 의식이 팽배하지만 나 어렸을 적만해도 신문과 신문의 차이는 확실하게 있었던 듯 하다. 그때까지만해도 각 신문마다 저만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는 말도 될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모두 <대한민보>에 실렸던 이도영화백의 시사만평과 그에 어울리는 사회상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책속에서 보여지는 한 컷의 만화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찌보면 어리숙해보이기도 하고, 어찌보면 조금 부족해보이기는 해도 속감정을 불러낼 정도의 공감대가 깊을 때도 많았다.

그렇다면 <대한민보>는 어떤 신문이었을까? 1909년에 '대한협회'를 배경으로 창간된 신문이다. 친일단체인 '일진회'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된 '대한자강회'의 후신이라고 한다. 삼일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던 독립운동가 오세창이 사장이었다고 하니 그 신문의 성격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창간호부터 1면에 이도영 화백의 목판 시사만화를 연재하여 신문사상 첫 기록을 세웠으며, 일본인의 난행에 대한 풍자나 경고로 일반의 인기를 끌었으나 한일합방되던 해에 일본에 의해 폐간되었다는 말도 보인다.


1장에서 권모술수의 달인들로 표현되어졌던 무당과 점쟁이편을 보면서 내내 씁쓸했다. 혼란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신을 찾는다는 글이 지금의 시대를 말하고 있는 듯 하여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다. 악의 편에 줄을 서며 기생하는 족속은 어느 사회든, 어느 시기든 다 있게 마련이다. 이 책속에서도 어김없이 찾아온 기회주의자들의 모습 또한 기시감을 불러와 영 개운치가 않았다. 글쓴이의 말처럼 책속에 소개되어진 많은 이야기를 우리의 역사책에서는 만날 수 없다. 하지만 그 역시 우리의 역사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것이 현재의 모습을 반추하는 거울이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이념의 실천만으로 인민의 삶이 행복해지리라는 착각에 빠진 일부 개화파와 국민의 살림살이보다 사익 추구를 위해 권력에 줄을 대는 사이비 보수파는 어쩐지 닮아 있다. 한일병합이라는 어수선한 틈을 타 난립했던 각종 단체의 이권 챙기기는 지금의 선거철 풍경과 멀지 않다...는 글쓴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것이 단지 소문이었다고, 왜곡된 이야기였을 뿐이라고 말하기에는 뒷맛이 너무 쓰디쓴 내용이 아니었나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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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엄마의 느림여행 - 아이와 함께 가는 옛건축 기행
최경숙 지음 / 맛있는책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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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원래 느리게 하는 게 맞다. 요즘의 우리 삶은 그야말로 팍팍함 그 자체다. 그래서 우리는 일탈을 꿈꾼다. 자주. 그러나 그 일탈의 시간은 우리가 꿈꾸는 것만큼이나 자주 와주지 않는다. 시간이 와준다해도, 혹은 힘겹게 그 시간을 만들었다고 해도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그러니 느림여행이라는 것 역시 쉽지 않을터다. 그래서 부러웠다. 가족을 동행하는 느림여행처럼 행복한 순간이 또 있을까? 거기다가 자신의 전공을 접목시킨다면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궁금했다. 그렇게 행복한 순간을 어떻게 전해주려는지가. 글쓴이의 발길을 따라가다 보면 상당히 많은 곳에 머물게 된다. 가는 곳마다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주니 어느정도의 궁금증도 해결하면서 동행할 수가 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 그 이상의 어떤 특별한 느낌을 그다지 전해받지 못해 조금은 섭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보면서 내가 다녀왔던 곳에 대해 다시한번 반추해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기는 했다. 나 역시 많은 곳을 다니면서 느림여행을 꿈꿨었다. 남편과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다녔던 곳은 아직도 꿈결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반면 답사팀과 함께 다녔던 곳은 여전히 정신이 없다. 그래서 나 역시 느림여행을 꿈꾼다.

 

크게 주제를 나눠본다면 이렇다. 옛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전통가옥과 우리 역사의 큰 줄기를 차지하고 있는 불교의 사찰 찾아보기, 조선의 시대정신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서원과 정자 역시 빼놓지 않았다. 거기다가 풍수지리나 전통건축의 용어정리까지... 한동안 고택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전통건축의 용어에 목을 맸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용어를 몰라 고택을 둘러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것은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하고 마음을 내려놓기도 했다. 집은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의 정신을 보여준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에 대해 조금 알고 찾아간다면 괜찮치 않을까 싶다. 사찰을 둘러볼 때는 가기전에 그 사찰이 안고 있는 설화를 하나쯤 알고 가면 재미있다. 거기다가 그 사찰공간에서 숨쉬는 역사적인 사건을 정리해본다면 꽤나 흥미로운 공간으로 다가올 것이다. 사찰의 구석구석에 놓인 것들 모두가 그냥 있는 게 아니라는 말도 있듯이 기본적인 사찰정보만 알고 가도 생각처럼 따분하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다. 서원과 전통정원 역시 마찬가지다. 명심할 것은 지금의 시선, 지금의 생각으로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답사는 옛사람들의 삶속으로 들어가보는 여행이다. 그러니 그 시절의 이야기를 지금의 현실에 꿰어 맞추려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책을 읽다보니 여러 장면이 머리속에 그려진다. 이런 곳에까지 정자를 지었구나 하는 경탄을 자아내게 했던 정선의 구미정과 바위위에 정자를 지어 풍류를 즐겼다던 예천의 선몽대, 탑의 배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스럽게 알려주었던 익산 왕궁리 5층석탑과 석탑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던 장하리 삼층석탑, 하얗게 쌓인 눈 위를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며 좋아라 했던 빙계서원과 정말 멋진 상상을 하게 만들어주었던 외암리 민속마을의 건재고택과 송화댁, 남편과 아들을 옆에 끼고 올랐던 성흥산성에서 백제를 함께 이야기했던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황홀하다. 나는 여전히 느림여행을 꿈꾸며 산다. 아마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건강이 허락하는 한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많은 것을 보러가는 게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순간을 느끼고 싶은 욕심일 뿐이다. 여행은 느리게 하는 것이 맞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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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사람들은 왜 피곤하지 않을까 - 피로 없이 맑게 사는 스웨덴 건강법
박민선 지음 / 한빛라이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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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 진짜로?" 책의 제목을 보면서 소리나지 않게 외친 질문이다. 세상에 피곤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그말은 곧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말일텐데 정말 조금의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제목이 하도 기가막혀서 그저 씁쓸하게 혼자 지껄여보는 말이긴 했어도 정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싶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피곤할까? 도대체 왜 하루가 멀다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갈까? 우리는 흔히 말한다. 마음을 비우라고. 그리고 내려놓으라고.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 그것은 이론일 뿐이다. 득도의 반열에 오른다면 모를까 그리쉽게 마음을 비울 수도, 내려놓을 수도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인 까닭이다. 그러나 감히 말하지만 어느정도는 비워내고, 내려놓아야만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낭비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풍요속의 빈곤을 외쳐대는 작금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되새겨봄직한 질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책은 우선 스웨덴 사람들이 어째서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밖에 없는지부터 말한다. 많은 나라가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스웨덴의 복지제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따라오는 그 복지제도가 어쩌면 그리도 탐이 나던지... 도입부에서 국가의 투명성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왠지 낯설었다. 우리에게는 어쩌면 꿈같은 이야기일수도 있는 일이 그곳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펼쳐진다는 사실이 그런 느낌을 받게 했던 모양이다. 이제 막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복지제도가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스웨덴에서 이직률 1위를 달리는 직업이 공무원일까? 너도 나도 공무원이나 해보자고 달려드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서글퍼진다. 모두가 제 이익만 챙겨보겠다고 툭하면 집회를 열고 파업을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면 스웨덴의 복지제도는 그림의 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구나 알기 쉽고 편하게 언제든 볼 수 있다는 국가제도(재정)의 투명성이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가 국민의 집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듯 하다. 길어지는 수명으로 인해 자꾸만 불안해지는 노후의 삶을 걱정하게 되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볼 때 혼자여서 더 즐거운 노년이 좋다고 말하는 스웨덴의 복지제도는 어느정도 문화의 차이를 차치한다해도 부러운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답은 간단했다. 우리가 늘 들어왔던 말을 그들은 일상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가공하지 않은 자연식품을 그대로 먹었고(여기에서는 감사하는 마음이 필수다!), 평생 운동하며 체험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이 부분은 어린시절부터 그런 생활태도를 만들어주는 어른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다!). 그곳이라고 인터넷이 안될리 없건만 그들은 스마트기기와 친해지려고 애쓰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인데 그들은 되고 우리는 안된다는 사실이 속상하기도 했다. 수면부족에서 탈출해야 한다거나 스트레스를 잡아야 한다거나 혈액순환을 개선하라는 말들은 솔직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나도 많이 들어왔던 까닭이다. 피곤할 때는 당연히 피곤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나이에 따라 그 피로의 모습도 달라진다고? 그걸 모르는 사람,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피곤한 것인 문제인 것이다.

결국은 삶의 방식이다.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진다. "너나 잘하세요"나 "너부터 해보세요", "나만 아니면 돼" 가 아니라 " 우리 함께 해봐요"를 외쳐야 가능한 피로없는 삶의 실체에 다가설 수 있다. 그럴려면 바뀌어야 할 우리의 문제점이 너무 많은 듯 하여 책을 읽으면서도 왠지 답답했다. 우리나라도 공무원이 이직률 1위를 달리는 직업에 속하는 그날이 올 수 있을까? '눈먼 돈'이라거나 "새는 세금"이라는 말이 대한민국에서 사라지는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 아득하기만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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