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록스님 With 108 산사순례 프로젝트 - 산사 순례는 신나는 수행
향록 지음 / 도반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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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佛,法,僧 부터였다. 무엇이든 기본부터다. 우리나라 불교계를 대표하는 사찰이기도 하다. 양산의 통도사, 합천의 해인사, 순천의 송광사를 일러 三寶寺刹이라 한다. 통도사가 佛, 해인사가 法, 송광사가 僧 에 해당한다. 다시말해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을 모시는 곳이 佛이요, 그 부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法이요, 그 법에 따라 수행하는 승려를 일러 僧이라 한다.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통도사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부처님의 진시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다. 물론 부처님의 진시사리를 모셨다는 5대 적멸보궁이 있기는 하지만 불법사찰로써의 위력은 통도사가 으뜸이다. 해인사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장경판전이 있다. 대장경을 봉안한 곳이기 때문에 법보사찰이다. 해인사를 품고 있는 가야산의 풍경이 또한 압권이다. 송광사는 승보사찰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스님이 이 곳에서 배출되었다. 고려의 고승 보조국사가 이곳에서 社를 도모하기도 했다. 송광사의 불상은 그 크기가 정말 대단하다. 그렇게까지 크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뭐였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이들 삼보사찰은 총림히라도 하는데 이는 승려의 교육과정인 院, 院, 院의 기능을 모두 안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니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라해도 삼보사찰부터 순례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다음에 찾아가는 곳은 어디일까 궁금한 마음이 앞섰다. 삼보사찰을 다녀와서 그들이 찾았던 곳은 의외로 조계사였다. 늘 시끄럽고 세간의 관심속에 존재하는 그런 곳이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나라 불교의 가장 중심점에 선 사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책의 말을 빌자면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는 곳이기에 소중하다고 한다. 음, 뭐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孝의 사찰이라 하는 용주사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는 아들 정조의 마음이 가득담겨 오롯이 그 孝心을 느낄 수 있는 곳...  불교에서의 孝는 욕망을 좇지않는 보다 근본적인 마음이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월정사, 법주사, 마곡사, 수덕사, 직지사, 동화사, 금산사, 고운사 쌍계사, 화엄사, 대흥사, 선운사, 봉선사, 불국사... 많은 사찰을 순례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모두 조계종 사찰이다. 108 산사를 순례하자면 천태종이나 태고종 사찰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과연 종파를 따지지 않고 그런 사찰을 찾아갈 수 있을까? 새삼 궁금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절집을 찾아가는 내게 너무나도 고마운 시간이었다. 물론 이 책속에 등장한 사찰을 두어곳을 제외하면 모두 가 보았다. 수행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답사 차원에서 절집을 찾고 있지만 절이라고 다 같은 절이 아니다. 그 절집을 안고 있는 산세의 풍경 또한 저마다의 특색을 안고 있어서 어느날 문득 찾아갔던 곳에서 나도 모르게 합장을 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마음에 이끌려 법당으로 들어가 기도를 할 때도 있다. 절은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는 곳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가끔은 실망감을 안고 돌아설 때도 있지만.... 종교를 떠나 우리의 문화로 자리잡은 불교를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욕심이 있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나로부터 비롯되어진다는 그 말씀이 좋아서 내심 불교신자가 되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108 산사 순례 프로젝트의 첫번째 이야기라고 하니 두번째 이야기도 기대된다. 사찰을 찾을 때마다 염주 한 알씩을 받는다는 그들의 발길에 평안이 깃들길 기원해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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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조형 빛깔있는책들 - 고미술 20
신영훈 글/사진 / 대원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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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를 다니다보면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한옥일 것이다. 우리가 전통가옥이라 부르는 집. 기와집도 있고 초가집도 있고 너와집도 있는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기와집만 전통가옥이라 부르고 있는 듯 하다. 왜 그럴까?  그뿐 아니라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도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멀리서만 바라보게 되는 게 전통가옥이다. 그건 또 왜 그럴까?  궁금한게 참 많았다. 다가서고 싶었기에 알고 싶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 나의 시선을 사로 잡았던 책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찾아보면 한옥에 관한 책은 엄청 많다. 1989년에 태어난 책이니 벌써 서른살이 다 되어간다. 책표지의 사진을 보면서 저 문을 좀 더 활짝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안양루 아래로 펼쳐진 멋진 세상을 더 많이 보고 싶은 까닭이다. 기대감에 부풀어 책장을 넘기니 처음부터 커다랗게 펼쳐지는 양동마을 풍경이 이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렇듯 이 책속에는 가보지 않아도 황홀경에 빠져들게 하는 천연색 사진들이 먼저 나를 맞이해 준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어떤 이의 말은 들을수록, 생각할수록 참 멋진 말이다. 그러나 전통가옥과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는 게 그리 쉽진 않다. 일단 용어부터가 어렵다. 건축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 까닭에 두번 세번의 공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머리부터 아파온다는 게 솔직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몇 권의 책을 보면서 어설프게 알게 된 것은 용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거였다. 용어를 이해한다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으나 가옥의 앉음새나 그 생김새마다 품고 있는 의미들은 정말 이채로운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사찰에 가면 그 무엇하나도 그냥 있는 것이 없다는 말처럼 우리의 전통가옥속에서도 그냥 있는 것은 없었다는 말이다. 방의 넓이를 정할 때 우리의 선조들은 자신의 몸을 기준으로 안정감을 생각했다.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창을 설치할 때도 어떤 문은 미닫이로, 또 어떤 문은 여닫이로, 덧문을 달거나 분합문을 설치하기도 했다. 처마의 길이조차도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졌다는 게 신기했다. 연못 하나도 담장의 무늬하나도 그냥 있는 게 없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점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고 있다. 더구나 그 집에서 살아갈 집주인의 사상을 담기도 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의아할 수도 있겠으나 당시의 사회이념이나 생활문화를 생각해본다면 정말 멋진 일이었다.

    

각설하고 이 책은 일단 휴대하기가 편하다. 그리 크지 않은 사이즈에 두껍지도 않고 가볍다. 그렇다고 안에 담긴 내용도 가볍다는 건 아니다. 물론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모든 것을 다 담을수는 없었을테지만 그럼에도 궁금증을 해소하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는 말이다. 찾아보니 빛깔있는 책들이라는 이름을 달고 정말 많은 주제들이 보인다. 불교문화, 민속문화, 고미술, 음식문화 등 다양한 주제들이 눈길을 끈다. 소소한 궁금증을 풀기에 그만인 책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는내내 내 마음은 이미 민속마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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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이현주 글.그림 / 책고래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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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읽었던 짧은 동화가 생각났다. 담장밑에 심겨진 해바라기의 성장을 그렸던 동화였는데 자꾸만 자꾸만 키가 커져서 마침내는 담장너머의 세상과 만난다는 이야기로 기억된다. 그리고 담장 너머의 또다른 해바라기와 활짝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해바라기 마을의 풍경을 그렸던 그림이 정말 예뻤었다. 이 책의 주인공 '나'는 은행나무이다. 열 살때 이곳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키가 작았을 때는 1층 사람들을 보게 되고 그것보다 조금 더 크게 되니 2층 사람, 3층 사람을 보게 된다. 나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마침내는 어떤 풍경을 또 가슴에 품게 될까?  아이들이나 읽을법한 동화책을 왜 보는 거냐고 묻는 사람, 간혹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에게 동화가 필요한 세상이 아닐까 싶다.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린채 어른이 되어버리는 우리네의 허전함을 채워주기에는 동화만 한 것도 없어 보이는 까닭이다.


동화의 특성상 등장하는 모든 것은 의인화되어진다. 그러므로 때로는 아파하고, 때로는 자신과 같은 눈높이에서 사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기도 한다. 겉보기에는 나무의 이야기, 꽃이나 바람의 이야기이지만 한번 더 들여다보면 바로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1층, 2층, 3층... 라갈수록 나이를 먹는 나무. 그리고 키가 크는 나무. 열일곱 살이 되자 3층까지 올라가게 되고, 스무 살이 되어 4층 창문으로 보게 된 혼자남은 할머니의 쓸쓸함, 스물다섯 살이 되었을 때 마침내 아파트의 꼭대기층에 다다르게 되지만 무슨 일인지 아파트 꼭대기 층에는 텅 빈 방만 있어 나무는 외로워진다. 그리고 생각하지. 나는 얼만큼이나 자랄까?


나무처럼... 책 제목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속으로는 이 은행나무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 많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의 그런 마음을 자꾸만 뒤로 감추게 하는지... 무엇이 우리에게 내면의 소리를 듣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 나이를 먹을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일까? 나이를 먹을수록 계산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는 게 행복한 일일까?  어느 날 아침, 가지를 아파트 지붕 위로 쭉 뻗어 아파트 너머의 나무들과 인사를 나누는 은행나무처럼 그렇게 마음을 나누며 살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한편의 동화가 마음을 따스하게 보듬어준다. 아주 가까운 곳에 다른 나무가 자라면 나무들은 서로를 향한 가지를 키우지 않는다. 그게 힘들면 연리지나 연리목이 되어버린다. 나무처럼 살 수 있다면 행복할까?  그렇게 살수는 없다고해도 서로를 향한 관심과 배려가 공허한 우리 마음의 처방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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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 인간관계가 불편한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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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하! 무슨 책 제목이 저러냐?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본다면 나도 저런 말 한 적 있다. 그래서인지 책속에 보이는 인간 알레르기라는 말에 기시감조차 느껴진다. 물건도 아니고, 먹는 것도 아닌데?  '인간관계가 불편한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 이란 책표지의 말을 보면서 그렇지, 인간 관계라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싶었다는 말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 왠지 인간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는 것 같아....  몇 번의 상처를 가슴에 품은 후부터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만남을 갖기 시작한 것이. 튕겨져 나오는 내 마음과 다시 만난다는 게 나를 왠지 모를 초라함에 젖어들게 했었다. 이런 경험을 나만?

 

주는 것 없이 싫은 사람도 있고, 받는 것 없이 좋은 사람도 있다는 걸 경험해 본 사람 많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책장을 열어 목차를 훓는다. "나는 인간 알레르기일까?", "왜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가?", "나는 왜 너를 싫어하게 됐을까?", "아무래도 싫은데 어쩌라고!", "나는 나를 조종할 수 있다"... 총 5장에 걸친 부제들이 순간순간 나의 시선에 꽂힌다.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문장들... 사실 이 책, 그다지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렇고 그런 심리상태를 또 말하고 있을거야... 했다. 책장을 넘기면서 수많은 사례를 만나게 되는데 그 사례들이 주는 느낌이 이채로웠다. 흔한 이야기처럼 들리는데도 커다란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내야 할 사회속에서는 정신적인 치료를 요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 거침없이 변해가는 사회를 보면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수많은 병폐가 지금도 우리 주변에 산재한다. 마치 누군가가 밟기만을 기다리는 지뢰처럼.

 

지나치게 결백하거나 무정한 성격도 인간 알레르기의 특징이라는 말이 보인다. 다정함을 잃어버린 작금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다정함이라 함은 한마디로 말해 관심과 배려다. 이해와 용서를 필요조건으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현재 그 모든 조건을 하나씩 하나씩 버려가고 있는 상태다.  인간이 언제부터 타인을 거부하고 배제했는가를 이야기하면서 性善說을 주장했던 맹자와 性惡說을 주장했던 순자를 말하고 있는 부분이 흥미롭다. 순자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면 왜 예와 의가 필요한 것이냐고 맹자를 비판했다는 것인데, 나도 사실은 性惡說을 믿는 사람중의 하나다. 그렇기때문에 선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에 그토록이나 많은 법규와 규범이 필요하지 않았을테니까.

 

세상에 태어나 이름석자 큼직하게 남기고 간 사람들조차 인간 알레르기였다는 말로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니체와 바그너, 서머싯 몸, 쇼펜하우어, 나쓰메 소세키, 생텍쥐페리... 그러나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결국 그 사람이 살아야 했던 환경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람과 함께 지냈는지가 중요하다는 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미 어린시절부터 인간 알레르기의 조짐은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인데 돌고 돌아서 사랑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랑받은 자와 사랑받지 못한 자,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다시 한번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 마음에는 자기 회복 장치가 있다고 하니. 이것도 저것도 안되면 법정스님께서 남기고 가신 말씀, 버리고 살기가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진 않겠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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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덕의 눈물 -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우수상 수상작 시공 청소년 문학
정해왕 지음 / 시공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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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덕이가 누구야?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옛날에 이런 유머가 있었다. 허수아비의 아들이름이 뭔줄 알아? 그거야 당연히 허수지! 그냥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어찌되었든 옛날 유머에서 보듯이 뺑덕과 엮인 뺑덕어미를 생각하면 된다. 뺑덕어미가 어디에 나왔느냐고 묻는다면 뭐 할말은 없다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표적인 효녀 심청의 새엄마가 뺑덕어미였다. 그런데 이 책, 뭔가 좀 수상하다. 심청이가 나오는 책인데 제목이 '뺑덕의 눈물' 이라고?  뺑덕어미도 아니고 뺑덕이라는 말은 다분히 유혹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인물, 뺑덕. 그러나 원래의 심정전속에는 뺑덕이라는 인물은 없다. 그럼에도 뺑덕이 주인공인 이 책... 살펴보니 책표지에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우수상 수상작이란 말이 보인다. 그렇군!.. 고전을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다는 건 내게 작은 설레임을 주기에 충분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작금의 현실에 맞게 고전을 비틀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놀부와 흥부를 바라보는 눈이 그렇다. 그저 마음씨 착한 흥부라고만 배워왔던 모습이 지금의 세상에서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처럼. 그악스럽게 살아가야 할 세상에서 그렇게 착하기만해서야 어떻게 살아갈 수있느냐는 관점으로 바라봤을 터다. 그런데 그런 비틀린 시선도 나름 재미있다. 그렇다고해서 이 책이 아주 엉뚱한 이야기라는 말은 아니다. 원래의 심청전을 따라가고 있지만 의외의 인물인 뺑덕이를 내세워 좀 더 새로운 이야기를 하나 더 만들어냈을 뿐이다. 의외로 재미있다.

 

우리의 역사속에는 효녀나 효자, 열녀나 열부 이야기가 많다. 살점을 도려내거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나누거나, 정조를 지키기 위해 혹은 집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거나 하는...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의 속을 살펴보면 아픔이 있다. 대게는 희생양인 경우가 더 많다. 만들어낸 이야기도 많다는 말이다. 사회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서 그런 희생을 필요로 했다는 말이다. 모순되게도 엄청나게 변해버린 작금의 시절에 와서조차 그런 희생을 알게 모르게 강요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의 규범이라는 게 필요악인 까닭일 것이다. 책속에 등장하는 심청의 속내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 몇이나 있을까 싶다. 힘겨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심청이라고 그런 마음이 없었을까? 어쩌면 그렇게 조여오는 강제적인 사회규범에서 벗어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기 위해 병덕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바보 뺑덕이 되어야 했던 조병덕의 삶에도 사회의 부조리함은 여지없이 담겨있다. 그런 병덕이 심청이 사는 마을로 들어오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청이를 향한 사랑앓이를 하게 된다. 그 사랑이 인당수로 뛰어든 심청을 구하게 되고, 둘 만의 모험은 시작된다. 어찌보면 참 황당하게 느껴질수도 있는 이야기가 생각보다 잘 읽혔다. 이야기의 흐름도 껄끄럽지 않다. 몰입도 또한 예사롭지 않다. 그러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심청외전'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거기에 판소리 심청전의 탄생까지 아우르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다. 이루어지지 못한 뺑덕과 청이의 사랑이 가슴 아플 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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