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분의 일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혜영 옮김 / 오후세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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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감이 장난이 아니다.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이어지는 이야기는 잠시라도 흐름을 놓칠까 조바심을 내게 된다. 이야기 전개방식 또한 멋들어진다. 주제는 간단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니라는 거다. 책속의 말처럼 우리의 삶이라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해답이 들어있는 경우는 진짜 많을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 누군가와의 약속, 누군가를 향한 믿음... 그렇게 누군가와 맺어지는 관계라는 게 아주 자연스럽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들로 이루어진다. 급전이 필요해서 은행을 털기로 작정한 세 남자. 그러나 그 남자들과 얽힌 일련의 사건들속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깔려 있다. 제각각 자신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하나의 사건이 한정된 공간속에서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정신적인 유대감이다. 공평하게 서로 주고 받는 것 같아도 냉정하게 따져보면 결코 공평하지 않은 그 무엇..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내세우면서도 서로 다투고, 항상 너보다 내가 더 많이 어쩌고 저쩌고 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뭔가 손해를 보는 건 항상 자기 자신이 아닐까,라고 의심을 하는 것이다. 우리돈으로 20억원을 줄테니 당신이 가장 믿고 당신을 가장 믿는 상대를 배신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흔히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고들 하지만 현실도 과연 그럴까? 어쩌면 돈앞에 장사없다는 말이 진리일지도 모르는 세상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촘촘한 짜임새 덕분인지는 몰라도 배신과 배신이 꼬리를 무는 상황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누가 더 상대방의 밑바닥까지 읽어내는가가 관건인 이 사건이 의외로 신선하게 다가오는 건 왜일까?

 

오랜만에 읽은 일본소설이었다.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보았음직한 상황. 역시 현실감각이 바탕으로 깔려 있다. 내가 느끼는 일본소설의 매력이다. 군더더기 없는 번역이 맘에 든다. 이미 벌어진 결과를 놓고 하나하나 퍼즐처럼 맞춰가는 과정이 주는 재미도 괜찮았다. 많지 않은 등장인물 사이에서 팽팽하게 조여오는 긴장감을 느껴보는 재미도 좋았다. 책띠의 말처럼 인생은 한방일까?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우습게도 그 한방이 내게로 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산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가질 수 있다는 마지막 문장의 여운이 강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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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금 잔혹사 - 그들은 어떻게 조선의 왕이 되었는가
조민기 지음 / 책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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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만나는 왕은 몇 명이나 될까? 대충만 헤아려봐도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태조 이성계를 시작으로 고종의 아들 순종까지 모두 27명의 왕을 가진 조선왕조. 그 많은 왕이 다 어디로 가고 우리는 늘 들어왔던 이름과 다시 만나는 걸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야사가 많은 왕일수록 우리와 만날 확률이 높은 듯 하다. 그런데 또한번 생각해보면 조금은 씁쓸해지기도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왕의 모습이 제대로 된 모습인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아마도 그런 마음에서 이 책의 주제를 잡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들의 진정한 모습이 궁금했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나 역시도 각색되거나 포장된 왕의 얼굴보다는 진실된 모습과 마주하고 싶은 욕심이 있긴 있었다. 역사는 평가하는 자에 따라 다른 시선을 두게 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크게 네가지의 주제로 나누었다. 왕으로 선택된 남자, 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 왕으로 태어난 남자, 왕이 되지 못한 남자... 나 역시도 흥미를 갖고 자주 들여다 보았던 주제가 있으니 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와 왕이 되지 못한 남자였다. 왕이 되고 싶었다는 말은 많은 의미를 안고 있다. 왕이었으나 왕일 수 없었던 남자들의 속내가 거기에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렇다하여도 선조와 인조만큼은 용서 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 많은 인재를 두고도 제대로 된 정치 한번 해보지 못하고 끝까지 찌질이 역할밖에는 하지 못했던 두 남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에 와서 우리에게 더 많이 회자되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지... 일전에 영화로 만들어졌던 광해군의 일화는 흥미로웠었다. 또다른 시각으로 선조와 인조를 그려낸다면 나 역시 삐뚤어진(?) 시선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까?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일 듯 싶다.

 

소현세자나 효명세자와 같이 왕이 되지 못한 남자의 이름은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건 광해군의 이름이 아닐까 싶다. 반정으로 왕위를 잃었으나 죽지않고 자신의 수명을 다했던 그가 유배지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을지... 광해군이 반정없이 오랜시간 왕위를 지켰다면 조선의 정세는 어떠했을까? 소현세자가 뒤틀린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아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면 조선의 정세는 어떠했을까? 당시의 세상을 살아보지 않았으니 단언하지는 못하겠으나, 광해군이나 소현세자의 세상이 열릴 수 있었더라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앞선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오래도록 나의 심중에 안타까움을 불러온다. 

 

각 주제의 말미에 달아놓은 토막상식은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관직의 품격이나 벼슬만 어느정도 알고 있어도 사극이나 사서를 보는 흐름이 원활하지 않을까 싶다. 당쟁의 흐름만 알아도 조선의 정치는 어느정도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 과연 정상적으로 왕위를 이었던 임금은 몇 명이나 될까? 세자로서 살았던 기간이 길수록 왕의 자리에 앉아 있었던 기간이 짧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보인다. 본편보다는 토막상식이 더 눈에 들어오는 건 왜인지... 어찌되었든 지금까지 많이 다루었던 주제임에는 분명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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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2 : 자연 명승 편 - 김학범 교수와 함께 떠나는 국내 최초 자연유산 순례기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2
김학범 지음 / 김영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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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洞天' 이란 말이 있다. 신선이 산다는 별천지를 이르는 말인데 한마디로 말한다면 산좋고 물좋은, 그야말로 끝내주는 경치를 보여주는 곳이다. '洞天' 이란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다지 멀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장 가까이에서 찾아본다면 조선시대 한양에서 유명했다던 '백석동천'과 '청계동천'이 있다. 한동안 이곳저곳을 그야말로 들쑤시고(?) 다녔던 TV프로그램으로 인해 더 유명해진 백사실계곡이 있는 곳이 '백석동천'이고 부암동 위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안평대군의 집터라는 곳 주변에서 '청계동천'이라 새겨진 바위를 쉽게 만날 수가 있으니 그 시대만해도 백악산이나 인왕산이 얼마나 좋은 곳이었을까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겸재 정선이 그렸다는 <인왕제색도>만 보더라도 인왕산의 빼어난 자태를 볼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동천'이란 말을 듣게 되니 두개의 장면이 떠오른다. 하나는 예천의 '仙臺洞天'이고, 하나는 성흥산성으로 오르던 길에서 보았던 '雨花洞天'이다. '선대동천'이야 말 그대로 신선이 사는 곳과 같다는 의미일테지만, '우화동천'이란 말은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 주변의 풍광보다는 뒤에 자리한 대조사의 영향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말이 안고 있는 의미가 상당히 매력적임에는 분명하다. '선대동천'이라 할 수 있을만큼의 경관을 자랑하는 선몽대는 추천해주고 싶은 곳중의 한 곳이기도 하다. 바위위에 세워둔 정자의 당당함 또한 대단하다. 그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가히 신선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함은 물론이다. 그러니 '洞天'이라는 말을 썼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의 경치가 그 시절에 비해 조금은 덜 할테지만 사실 찾아보면 그에 견줄만한 경치를 보는 게 어렵지는 않다. 보자고 들면 보인다. 책의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보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명승지는 정말 많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명승지로 뽑은 기준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저 경치만 좋다고해서 명승지로 지정한 것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살펴보니 글쓴이의 전작으로 역사문화 명승을 다루었던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1>이 있었다. 전작을 먼저 보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불교문화권에 속한 우리는 답사를 가든 명승지를 찾아가든 쉽게 절집을 만나게 된다. 그 절집들이 자리한 곳의 대부분이 산좋고 물좋은 곳이니 바로 그곳이 명승이 아니고 어디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 크게 본다면 역사문화 명승이나 자연유산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오래전 안면도의 꽃지해수욕장에서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 사이로 지는 해를 본 적이 있는데 예상대로 책속에서 그 곳을 만나니 반가웠다.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던 청송의 주산지를 처음 찾았을 때는 그 경관보다는 왠지 모르게 안스럽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기도 했었다. 우리나라를 일러 금수강산이라 한다. 그만큼 빼어난 경치를 가진 곳이 많다는 말일 것이다.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 사이를 걷고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아스팔트위를 걷다가 어느 순간 시원한 바람과 눈부신 햇살을 맞으며 걷는 산천에서의 일상은 상상만으로도 황홀할 것이다. 그러니 이 도시를 떠나는 순간 어딘들 '洞天'이 아닐까? 하지만 그 멋진 경치를 품고 있는 곳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간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음이 급해진다. 하루빨리 미황사를 품고 있는 달마산을 보고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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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맨발
한승원 지음 / 불광출판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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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라는 제목을 달고 화제가 되었던 사진 한장이 있었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었다. 오랜 연습과 고된 훈련으로 제멋대로 찌그러져버린 못생긴 발.. 그 생김새가 말해주는 인내의 세월이 아름답다는 말이겠지만 그 후로도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의 발을 사진찍어 올리며 아름다운 발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박지성의 발, 이상화의 발처럼 말이다. 문득 생각난 동화 한편 때문에 책을 읽다가 슬그머니 웃음이 나기도 했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눈, 코, 입, 귀, 손, 발이 서로 제가 더 잘났다고 떠들어댔다는 동화말이다. 결국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몸뚱이 자체를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게 발일테니 어쩌면 발이 더 큰소리 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살풋 웃음이 난 것이다. 발은 사람의 모든 장기를 그 안에 담고 있으면서도 온갖 더러운 것을 밟고 다녀야 한다는 것 때문에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손이나 발만큼 그사람의 역사를 표현해주는 존재도 없지 싶다. 그만큼 발의 중요성은 두말 할 필요가 없을 터다. 그래서 그 발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사람의 맨발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내심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의 모습보다는 또다른 부처의 모습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한방 맞은 느낌이랄까? 뭔가 색다른 것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마저도 내려놓지 못하는 나의 욕심이었다는 걸 알게 되니 한편 부끄럽기도 하다.

 

싯다르타는 샤카족의 태자로 태어났다. 어머니 마야 왕후가 아이를 낳고 7일만에 죽자 이모 마하 프라자파티 왕후의 손에 의해 길러진다. 자라는 과정이야 왕세자 교육을 받는 우리네 역사속의 왕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그들만의 계급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싯다르타가 출가를 하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카스트 제도는 브라만(승려계급), 크샤트리야(무사계급), 바이샤(工商계급), 수드라(노예계급) 등 4개 계급 외에 수드라 이하의 계층으로 구성돼 있다. 수드라 이하의 계급이란 것은 불가촉천민이라 불리는 '다리트(Dalit)'로 온갖 멸시와 배척을 받으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3D 업종에 종사한다. 이들은 인도 인구의 15%를 차지한다. 이보다 더 낮은 계급도 있다. '부족민' 또는 '트리발(Tribal)' 로 일컬어지는 토착민들인데 약 5,000만 명정도나 된다고 한다. 다리트와 트리발은 아예 카스트에 끼지도 못하는 열외 인간으로 사람대접을 못 받는다. 계급으로 나뉘어진 인간사회를 어떻게 해보지도 못한 채 열반에 든 석가모니도 그렇고 인도가 내세우는 위인 마하트마 간디도 어쩌지 못했던 것이 바로 카스트 제도인 걸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반에 든 후 제자 가섭에게 관밖으로 발을 내밀어 보여주었다는 일화도 그렇지만 부처와 제자들과의 일화에 대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모든 것이 '신의 뜻' 이라는 말로 정당화시켜버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어 고뇌에 빠진 싯다르타가 마침내 출가를 결심하고 성을 나서는 장면은 항상 알 수 없는 기대감에 부풀게 한다. 원래 없었던 것이라거나 非想非非想處 와 같은 어려운 말들은 차치하고라도 八正道만큼은 그대로 가슴속에 우뚝 세워두고 싶은 욕심이 난다. 마음이 고통에서 멀어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팔정도는 中道를 말하기도 하는데, 해탈에 이르는 바른 길은 감각적 쾌락을 구하는데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나친 고행으로서 자신을 괴롭히는데 있는 것도 아니며, 그 양 극단을 떠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도가 불교의 발상지임에도 불구하고 불교신자가 그다지 많지 않은 이유를 혹자는 불교의 남녀평등 사상이 카스트제도에 반하는 까닭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내부의 권력다툼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수행중인 싯다르타를 찾아와 했다는 악마의 말이 생각난다. "인간은 그때그때 죄를 짓고, 참회하고 신께 빌어 용서를 받으며 살아가도록 점지되어 있다"는. 그러니 신께 복이나 구하면서 살라는 그말은 왠지 서글픈 여운을 남긴다. 솔직하게 말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었지만 부처를 '영혼의 스승'이라 말하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영혼의 스승에게 바치는 헌정글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부처의 일생중에서 출가에 더 큰 의미를 두고 글을 썼다고 한다. 아이에게 읽혀도 될 만큼 쉽게, 이해하기 편하게 쓰여진 글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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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의 목소리들 - 1900년, 여기 사람이 있다
이승원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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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여기 사람이 있다... 부제가 주는 느낌이 이채롭다. 여기라면 어디일까? 그것도 1900년대라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1900년대라면 우리가 흔히 근대라고 말하는 시기다. 근대화의 시기라하면 어떤 게 가장 먼저 떠오를까? 모던 보이나 모던 걸? 전차? 소소하게 떠오르는 것들이 모두 18C 말에서 19C 초의 것들이다. 그만큼 시끄러웠을 것이다. 저마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을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어서. '시사만평으로 읽는 대한제국 사람들의 목소리'라는 말이 흥미로웠다. 시사만평, 대체로 단 한컷의 만화로 표현되어지는 세상의 이야기다. 어렸을 적부터 신문 한쪽에 실리는 만화가 좋았다. 그 습관이 지금도 웹툰만 보면 마음을 빼앗겨버리게 만들었지만 몇 장 되지 않는 그림으로 많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다는 그것이 정말 좋았다. 그 당시의 사회상을 그림 몇조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자(?)들에 대한 부러움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시사만평 혹은 만화만평이라는 말을 들으면 지금도 여지없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고바우 영감>이 있다. 위로 삐죽하게 솟아오른 머리카락 한올이 매려적인 아저씨가 주인공인데 풍자도 풍자지만 불합리한 모순에 대해 속시원하게 비판하기도 했던 모습도 볼 수 있어 좋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동아일보에 이 만화가 실렸었는데 지금이야 모든 신문이 그게 그거라는 의식이 팽배하지만 나 어렸을 적만해도 신문과 신문의 차이는 확실하게 있었던 듯 하다. 그때까지만해도 각 신문마다 저만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는 말도 될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모두 <대한민보>에 실렸던 이도영화백의 시사만평과 그에 어울리는 사회상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책속에서 보여지는 한 컷의 만화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찌보면 어리숙해보이기도 하고, 어찌보면 조금 부족해보이기는 해도 속감정을 불러낼 정도의 공감대가 깊을 때도 많았다.

그렇다면 <대한민보>는 어떤 신문이었을까? 1909년에 '대한협회'를 배경으로 창간된 신문이다. 친일단체인 '일진회'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된 '대한자강회'의 후신이라고 한다. 삼일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던 독립운동가 오세창이 사장이었다고 하니 그 신문의 성격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창간호부터 1면에 이도영 화백의 목판 시사만화를 연재하여 신문사상 첫 기록을 세웠으며, 일본인의 난행에 대한 풍자나 경고로 일반의 인기를 끌었으나 한일합방되던 해에 일본에 의해 폐간되었다는 말도 보인다.


1장에서 권모술수의 달인들로 표현되어졌던 무당과 점쟁이편을 보면서 내내 씁쓸했다. 혼란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신을 찾는다는 글이 지금의 시대를 말하고 있는 듯 하여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다. 악의 편에 줄을 서며 기생하는 족속은 어느 사회든, 어느 시기든 다 있게 마련이다. 이 책속에서도 어김없이 찾아온 기회주의자들의 모습 또한 기시감을 불러와 영 개운치가 않았다. 글쓴이의 말처럼 책속에 소개되어진 많은 이야기를 우리의 역사책에서는 만날 수 없다. 하지만 그 역시 우리의 역사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것이 현재의 모습을 반추하는 거울이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이념의 실천만으로 인민의 삶이 행복해지리라는 착각에 빠진 일부 개화파와 국민의 살림살이보다 사익 추구를 위해 권력에 줄을 대는 사이비 보수파는 어쩐지 닮아 있다. 한일병합이라는 어수선한 틈을 타 난립했던 각종 단체의 이권 챙기기는 지금의 선거철 풍경과 멀지 않다...는 글쓴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것이 단지 소문이었다고, 왜곡된 이야기였을 뿐이라고 말하기에는 뒷맛이 너무 쓰디쓴 내용이 아니었나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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