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 - 의심 많은 사람을 위한 생애 첫 번째 사회학
오찬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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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세상이 왜 이따위죠?"  昨今의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뱉었을 말이다. 그래, 맞아. 도대체 세상이 왜 이따위인거야? 하지만 그 말의 속을 들여다보면 다분히 이기적인 의미가 들어있다. 세상이 나를 위해 돌아가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거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 책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세상이 왜 '이따위 것' 이 되었는지를 한번 파헤쳐보자고 우리를 토론장으로 이끌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그 토론장으로 가볍게 들어설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는. 그만큼 우리의 삶은 피상적이다. 본질적인 것은 외면하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하고 그것을 쫓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 나는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몇이나 있을까?  책속에 '프로파간다' 라는 말이 많이 보인다. 쉽게 말해 '선전'이란 의미인데 넓은 의미로 '글이나 말 또는 다른 모든 형식을 포함하여 여론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행해지는 커뮤니케이션' 을 뜻한다고 한다. 이익을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말할 필요없는 필요악일테니 결국 조작과 왜곡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말일터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남긴 "인간은 대개 자신이 믿고 싶은대로 믿는다"라는 명언처럼 사람들은 대개 '주어진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익숙한 대로만 생각한다. 비판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날의 한국' 에서 더욱 낯설다. 한국은 '비판'과 '비난'을 동의어로 착각한다.  비판은 '합리적 의심'이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반대를 위한 반대' 와 같은 '나쁜' 이미지로 이해한다. 게다가 한국 사회의 '과잉 긍정주의'는 이를 부추긴다. (-151쪽)  위의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더 말할 것도 없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비판과 비난은 엄연히 다름에도 동일시하고 있는 우리의 사회적인 문화현상을,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 몇이나 있을까?  지나치게 신성시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결속력이 비판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비판이 거세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먹고사는 문제에만 몰두한다는 말은 알 수 없는 두려움까지 불러온다. 저자의 말처럼 비판이 없으니 문제가 있어도 해결되지 않는게 당연한 일이다. '공부하는 기계'로 사는 학생들, '돈버는 기계'로 사는 어른들에게서 무엇도 바랄 수 없는 게 바로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이며 또한 문제라는 말도 공감하게 된다. 아이들의 교육에서조차 '평준화'만을 강조하는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주의일까?  진정한 민주주의라면 경쟁이 있어야 하며 무언가에 대한 토론과 비판도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먹고 살기도 힘들어 사느라고 몰랐던 기성세대는 차치하더라도 지금의 교육현실을 본다면 이건 확실히 관료주의적인 정책의 악습일 뿐이다. 길들여진다는 건 익숙해진다는 말이다. 우리는 어쩌면 그런 악습에 길들여지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스스로 길들여지고 있거나.

 

8장으로 나누어 커다란 주제를 붙여놓았는데 각장마다 보이는 부제들이 눈길을 끈다. '익명' 을 보장받는 순간 '짐승'이 되어버리는 사람들, 인간이 상황에 지배당한다는 것, 나에게 얽혀있는 사회라는 실타래, 포석정은 어쩌다 사적 1호가 되었을까?, 나의 가치판단은 사회적인 것이다, 주변이 당신의 관심을 결정한다, 우리는 왜 '이미지' 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숫자와 사회, 한국의 교육이 김기덕 평가에 미친 영향, 미술관에 걸리면 무조건 예술이 된다, 증오로 먹고사는 미디어, 나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등...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소제목들이다. 한줄의 문장만으로도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다방면에서 우리의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학습되어지는 우리의 모든 것들이 불러오는 수많은 모순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자신이 믿었던 것이 틀렸는지 확인조차 하지않고 틀렸다는 걸 알았다해도 자신의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걸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 모두가 똑같이 입고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개성이라고 말하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세우면 날을 세워 비난을 하는, 그러나 그런 모든 현상이 누구 하나를 콕 집어 말할 수 없다는 현실이 우리를 외롭게 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은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본질적인 것들을 파헤치고 있다. 불평불만이 아니라 다른 한쪽도 한번 보자는 것이다. 보여주는 것만 보지말고 보여주지 않는 다른 한쪽도 한번쯤은 보자고 말한다. 보고싶지 않은 것도 한번쯤은 돌아보자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회는 나와 이미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까닭이다. '모두'가 사회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고민한다고 해서 그저 자동적으로 '좋은 사회'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물어놓고는 저런 말을 보여주는 저자의 의뭉스러움에 고개를 젓게 된다. 저 문장을 보면서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다. 지금 한창 들떠있는 영화 <1987>에서 여학생이 이렇게 물었었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 .....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다!  사회와 자신과의 관계를 이해아고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판적 시민'으로서 멋지게 살아보자는 제의를 외면해서는 안될 것 같다. 비난이 아닌 비판하는 양심!으로. 결론은 이 한문장이다. '이의를 제기하는 건 애국의 가장 고귀한 형태다'... /아이비생각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대안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자체가 상식적으로 변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책의 뒷표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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