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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 - 잃어버린 역사의 현장에서 100년 전 서울을 만나다 ㅣ 표석 시리즈 1
전국역사지도사모임 지음 / 유씨북스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역사 서술은 붓과 발로 이루어진다... 책표지 뒷면에 쓰인 역사가 이덕일의 말이다. 하지만 그 역사의 현장을 발로 찾는게 마음처럼 쉽진 않다. 서울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수없이 많은 표석을 봤다. 그리고 생각했었다. 이 표석들에게 어울리는 이야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표석만을 따라가며 배울 수 있는 역사가 우리 곁으로 찾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이 책을 지은 사람들이 전국역사지도사모임이라고 한다. 뜻깊은 일을 했다. 언제가는 나올 주제였지만 더 늦기전에 나와 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구석구석 많이도 찾아다녔다고 생각했었는데 가보지 못한 곳도 눈에 띄었다. 오래전 남한강 줄기를 따라 폐사지 답사를 한 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공간에서 塔과 碑만으로 그곳을 상상한다는 게 그리 녹녹치않은 일이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었다. 어쩌면 내 나름대로 상상할 수 있어서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까닭으로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우리에게 잊혀져가는 역사는 얼마나 많은가. 역사가 이덕일의 말처럼 이 책을 들고 잊혀지고 지워진 역사를 되찾는 길에 다시한번 동참해보고 싶은 욕심이 인다. 이야기의 깊이감이 예사롭지 않다.
연인들이 가위 바위 보를 하며 한단씩 올라가던 남산의 그 계단은 드라마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 계단이 일제가 우리의 정신을 말살시키기 위해 지었던 조선신궁으로 오르던 계단이었다는 걸 알고 있는지... 나 어릴적에는 단성사, 국도극장, 명보극장, 피카디리와 같은 곳으로 영화를 보러 갔었다. 그러나 지금은 볼 수 없는 곳이다. 너무나도 빠른 변화의 흐름에 밀리고 밀려 떠내려가고 만 근대사의 한 장면일 뿐이다. 과거와 공존할 길을 찾지 못했던 우리의 욕심이 불러온 결과다. 지금은 탑골공원이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파고다 공원이라 불렸던 곳에 원각사지 십층 석탑이 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 몇이나 되려는지. 어쩌다 노인들의 공간으로 변해버렸는지 알 수 없지만 그곳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가 의외로 많다. 유리상자안에 갇혀있는 원각사지 십층 석탑의 아름다움이, 삼일만세운동의 숨결이 거기에 있다.
39개의 표석을 따라가며 12가지 주제로 듣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 데라우치 마사타케, 하세가와 요시미치, 미나미 지로, 사이토 마코토, 고이소 구니아키 라는 이름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예장동 통감부터를 안내해주시던 분이 단호하게 말씀하시던 기억이 난다. 거기에 나는 또하나의 이름을 첨가했었지. 가루베 지온...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 많은 역사의 현장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그랬다면 우리의 서울도 터키의 이스탄불처럼 거대한 박물관이 되지 않았을까? 오늘은 왠지 그런 욕심을 부려보고 싶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