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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평점 :
압도적 역사추리 소설이라는 말을 인정한다. 그만큼 몰입도가 있다는 말이다. 서서히 빠져드는 묘미가 있다. 중반부를 넘어서면서야 겨우 범인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씨줄과 날줄이 교묘하게 얽혀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러면서 과연 책속의 주인공은 그 난관을 어찌 빠져나갈까 싶어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마지막까지 읽고나서야 송자가 누구인지, 이 책의 배경은 또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宋慈는 1186년 중국 푸젠성의 젠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교육에 집착했다. 아버지의 기대에 따라 의학과 법학, 범죄학 수강한 후 과거 진시에 급제했고 저장성의 행정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 직책에 부임하지 못하고 말았다는 소개글이 보인다. 평생을 법의학 연구와 분석에 바쳤으며 그가 도입했던 혁신적인 기법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고 하니 보통 인물은 아니었던 듯 하다. 인류 역사상 처음이자 가장 중요한 법의학 서적인 <세원집록>이 그의 작품이라 한다. 세원집록... 찾아보니 중국 송나라 송자가 편찬하여 1247년에 간행된 법의학서라고 나온다. 宋이전의 법의학 지식을 총정리하여 펴냈는데 檢屍, 사상자의 판별, 죽음에 이르도록 한 藥과 毒物등을 소개하였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법의학에 관한 것은 근대 과학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점이 많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宋慈와 그의 저서에 관한 이야기다.
중국의 역사속에서 宋代 는 문학도 그렇지만 여러가지 산업과 기술이 발달한 시기였다. 북송과 남송의 시대를 거쳐 나침반이나 화약이 실용화되어 그 우수성이 증명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당연히 화약과 화기의 제조 기술도 발전했다. 책속의 배경이 바로 그 시기인듯 하다. 이야기는 막힘없이 긴박하게 흘러간다. 도망자 신세가 되어 숱한 고난을 거치면서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가족을 모두 잃고, 자신의 삶마져 바람앞의 등불같은 처지에 놓여있을 때에도 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자신을 옭가매는 사건의 진실을 추리하는 주인공의 가쁜 호흡이 내내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다. 이분법적으로 말해 세상에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를 궁지에 몰아넣는 사람도 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누군가를 시기하여 모함을 하는 일 역시 삶의 한 단면이다. 그런 모든 과정을 우리는 겪어낸다. 그리고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수많은 판단과 선택을 요구하며 그 판단과 선택의 결과로 기뻐하거나 후회를 하거나... 이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중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이름만큼은 실명이라고 했다. 팩션이다. 역사적인 사실에 허구를 붙여 만들어낸 이야기. 그러나 책속의 배경은 결코 허구가 아닌 듯 하다. 팩션이라고는 하지만 앞서 말했던 송자라는 사람의 삶과 宋이라는 시대배경이 사실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중국 역사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전설처럼 전해져내려오는 악비의 이야기는 많은 걸 시사한다.
가끔 이렇게 몰입도가 강한 책을 만나게 되면 알수없는 흥분이 나를 찾아온다.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기며 숨고르기를 하고, 주인공을 따라가며 범인을 유추해보는 시간이 재미있다. 범인을 미리 알려주고 시작하는 형식이어도, 기가막힌 반전으로 범인을 드러내는 형식이어도 탄탄한 구도를 갖추고 있는 추리소설이라면 그 맛은 오래도록 기억되게 마련이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세상의 진리중 하나는,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사람은 항상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게는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는다. 아니라고?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