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불멸주의자 - 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셸던 솔로몬.제프 그린버그.톰 피진스키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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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이성중에서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것은 어느쪽일까? 우리를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원천적인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어지는 것일까?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이 우리에게 외면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음도 그렇다. 인간의 삶속에서 일상적으로 죽음은 외면당한다. 저 유명한 소크라테스조차 철학의 과제는 '죽는 법 배우기'라고 규정했다고 아무리 말해도, '사람이 죽음에 맞서 무엇을 하는가'를 집성한 기록이 역사라고 헤겔이 외쳐댔다고 해도, 실제적으로는 과학심리학 영역에서조차 죽음이라는 주제가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고 한다.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지만 책속의 실험결과는 상당히 놀라웠다. 죽음이 우리의 사고를 그토록이나 강하게 바꿔놓을 수 있다니!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일상에서 죽음을 배제시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이 책은 그런 관점에서 시작한 것 같다. 어린시절에는 죽음에 관한 공포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언제부터, 어떻게 인간은 죽음에 관한 공포를 자각하게 되는 것일까? 죽음을 의식을 하기 시작하면 어떤 느낌이 가장 먼저 찾아오게 될까? 공포? 불안?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것 때문에? 그래서 인간은 불멸을 꿈꿔왔던 것일까?

 

책장을 넘기면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말이 '심리적 안정'이라는 말이었다. 어린시절에는 너무도 중요한 말이라고. 어찌보면 어린시절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속에서 가장 중요한 말일 것이다. 그 말은 곧 자존감이란 말을 내포하며 자존감으로 인해 많은 것이 좌우되기도 한다. 자존감이 결여되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심지어 죽음의 공포와 맞닥뜨리기도 한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죽음에 관한 의식을 갖기 시작하고, 그것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죽음을 히피하기 위한 온갖 내적 수단을 사용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다시말해 죽음을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성장과정에서 겪는 많은 질서, 규제, 규범과 같은 것들이 죽음을 부정하는 일종의 도구 역할을 한다는 말이었다. 전지전능하게만 보였던 부모가 유약한 존재로 인식되어지기 시작하면 아이는 그때부터 자기가 속한 문화의 사회적 권위나 관습으로부터 더 안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말이 어느만큼은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아이라 할지라도 죽음은 피할수도, 되돌릴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자기가 속한 문화가 규정한대로 행동하다는 말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이 세계에 가치있는 공헌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만 안심한다. (-67쪽)  이 말에 공감하는가? 이 말이 곧 자존감이라는 의미일까? 이후로도 책은 계속해서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우리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루고 있다. '자존감', 과연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또 그것이 왜 이 책의 주제로 등장한 죽음이나 불멸과 연관성을 갖게 되는 것일까?  인간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자기기만'을 사용하며, 낮은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기도 한다는 말이 보인다. 그것이 채워지지 못했을 경우에 나타나는 결과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불멸을 꿈꿔온 사람들은 '실제 불명성'과 '상징적 불멸성'의 형태로 불멸의 존재가 되고자 했다. 전자는 사후세계와 영혼에 대한 믿음을 추구하고는 것이고, 후자는 죽은후에도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적 자취를 남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죽지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던 진시황제나 피라미드를 만든 이집트의 파라오에 관한 기록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따지고 보면 옛날에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현재도 과학을 통해 인간은 끝없이 불멸을 꿈꾼다. 냉동인간이라거나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대체인간을 그렸던 영화속의 일들이 과연 영화로만 존재하는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

 

당신은 얼마나 자주 의식적으로 죽음을 생각하는가? 죽음에 관한 생각이 당신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 책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은 많았다. 심지어 강박장애나 불안장애, 정신분열증을 죽음에 저항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살짝 의심이 생긴다. 죽음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내기 위한 학술적인 정의로밖에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자살하는 이유가 자존감이 약해서라고?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고통이 너무 커서 죽음을 택하는 것조차 죽음의 공포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자살하는 사람이 자기가 죽은 후에도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는 말은 왠지 껄끄럽다. 실제 불멸성을 기원하는 바램에서 비롯되어졌다는 주장이 내게는 단지 학술적인 정의로만 다가온다는 것이다. 또하나의 테두리안에 인간을 가두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역사를 통해, 혹은 수많은 실험결과를 통해 죽음에 관한 인간의 무의식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이렇게까지 장황하게 말하지 않아도 죽음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문화를 만들어간다면 간단해진다. 죽음을 두려운 것, 공포스러운 것, 외면해야 할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 것도 문화인 까닭이다. 모든 학문이나 문화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것에 따라 인간의 삶은 좌우된다. 그러니 죽음의 공포에 대처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도 없어보인다.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듯이 죽음도 삶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면 그렇게까지 복잡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주 오래된 역사속에서도 보여지듯이 죽음을 축복의 형태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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