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통 - 죽음을 보는 눈
구사카베 요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심신상실자의 행위는, 이를 벌하지 않는다. 심신박약자의 행위는, 그 형을 경감한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일본 형법 제39조다.

우리 형법에도 있다.

제10조(심신장애인)  ①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③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 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뉴스를 봐도 신문을 봐도 좋은 이야기보다는 나쁜 사건이 더 많다. 아니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두기 위해 어쩌면 그런 것만 더 부각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볼 때마다 분통을 터트리게 하는 사건들이 있다.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술을 마셔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핑게를 대거나 정신과 치료 운운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먹었다면 술먹은 것 자체도 범죄다. 누가 억지로 입을 벌려 술을 들이부은 건 아닐테니까. 그럼에도 그 이해할 수 없는 법의 테두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호한다. 악법도 법이란 말인지... 그런데 얼마전부터 술을 마셨다거나 하는 등의 행위를 핑게로 인정하지 않고 강력하게 처벌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대찬성이다. 그 사람을 위해서도 그런 조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묻지마 범죄가 횡행하는 昨今의 시대에 살면서 이미 만연하는 사회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일축하기엔 뭔가 좀 찜찜하다. 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외면하려한다면 언젠가는 정말 무서운 세상이 우리 곁을 맴돌 것이다.

 

고베의 한적한 주택가에서 일가족 네 명이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S사이즈의 모자와 XL사이즈 신발 자국... 범인이 남겨놓은 흔적은 이상했다. 뭔가 균형이 맞지 않는다. 이런 모순된 정황과 말할 수 없이 잔인한 범죄수법은 그가 정신장애자일 것이라는 짐작을 불러오게 된다. 정말 그럴까? 사건과 얽히게 되는 두 명의 천재의사는 또 뭐란 말인가! 그들은 환자의 얼굴을 보기만해도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죽을 사람인지 나을 사람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그들은 얼굴에 나타나는 범죄자의 표식을 알아볼 수가 있다고 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소설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한순간도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때로는 분노하면서, 때로는 안타까워하면서... 주인공 다메요리, 천재의사중 한명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들어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천재성을 한눈에 알아본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또 한명의 천재의사 시라가미다. 자, 이제 둘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어질까?

 

일가족 살인사건을 쫓는 형사 하야세. 죽을 힘을 다해 범인을 잡아 넣어도 어떻게 된 일인지 형법 39조에 의해 감형 되거나 풀려나는 현실을 보게 된다. 그런 까닭으로 그는 형법 제39조의 불합리함에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의 분노와 안타까움은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다. 우리의 현실속에도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니까. 하지만 이 소설속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임상심리사로 등장하는 나미코를 통해 정신장애자 보호시설에 관한 것들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고, 우리가 스토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관한 정신적인 면을 다시한번 짚어주고 있다. 어느날 나미코를 통해 자신이 일가족 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말하는 중학생 여자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다메요리. 그로 인해 결국 일가족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지만 그 복선 또한 기가 막힌 결과를 가져온다는 게 반전이라면 반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무통...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다. 선천적 무통증, 조현병...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병이다. 앓고 있는 이들이나 그 주변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커다란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무서운 害惡을 끼칠 수  있는 것이라면 받아들이는 이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숨가쁘게 달렸다. 마지막을 보고 난 후 나도 모르게 후우~~ 숨을 내쉬었다.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책장을 덮으니 무통이라는 제목이 시선을 빼앗는다. 무통.... 어쩌면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병은 아닐까? 비이커속의 개구리는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의 온도를 감지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러가지 현상을 생각하게 된다.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 묻기보다는 그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하기에 급급한 우리의 모습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비이커속의 개구리는 아닌지... 우리 모두가 무의식중에 심신상실자로 살아가고 싶어하는 건 아닌지... 기시감,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 소설속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현실감이 놀랍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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