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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무령왕릉 - 권력은 왜 고고학 발굴에 열광했나
김태식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공주의 한 고분벽화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뒷쪽으로 배수구 공사를 하던 중이었다. 인부가 내리찍은 괭이 끝이 뭔가에 걸려 튕겨져 나왔다. 그것이 무령왕릉 벽의 모서리였다는 걸 아무도 알지 못했다. 벽돌을 따라 파 내려가니 입구인 듯한 아치가 나오기 시작했고 드디어 무령왕을 모신 왕릉이 우리 앞에 문을 열기 직전이다. 일단 문화재관리국에 보고를 하고 어설프게나마 제를 올리고... 참으로 긴박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고분 발굴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되어지기도 한다. 그 긴박함과 참담함이 함께 걸어가고 있다. 그 날, 왜 그리도 비가 내렸을까? 고분에 물이 흘러들지 않도록 밤새워 무덤 앞에 도랑을 파서 물길을 돌렸다. 다음날은 다행히 비가 그쳤고 구멍안으로 들여다 본 터널형의 복도에서는 돌 짐승 한마리가 올테면 와보라는 듯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백제고분. 그것도 도굴되지 않은... 고고학자라면 당연히 가슴이 떨렸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순간에 닥치게 되면 우리의 의식은 순간적으로 마비상태가 되어버린다. 모든 이성은 멈췄고 그랬기에 그 날의 현장에서 진두지취하던 김원룡은 '내가 미쳤었다!'고 그날을 회고했다. 벽돌을 떼어가며 안으로 들어선 김원룡과 김영배의 눈앞에 '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 이라고 써있던 지석이 나타나고... 우리나라 고분은 연대나 이름을 써넣지 않는 것이 하나의 특색이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연대가 써 있고 명문이 써 있는 유물을 눈앞에 둔 고고학자들은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그야말로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으니... 문제는 거기에 기자들과 소문을 듣고 몰려든 공주사람들이 동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종을 터트리겠다는 욕심하나만으로 사진을 찍겠다고 몰려든 가지들에게 왕의 무덤은 속수무책으로 짓밟히고 말았다. 당연히 바닥의 유물은 상처를 입었다. 제자리를 벗어나 뒹굴며 후손들의 철없는 홀대(?)에 비명을 질렀다. 그 북새통속에서 두 사람은 무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들은 말했다. 쓸어담듯이 유물을 걷어냈다고. 그렇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무령왕릉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다시한번 공주박물관에서 박제되어진채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 서울에 남아 있는 일제의 흔적을 더듬어 보았던 시간이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 데라우치 마사타케, 하세가와 요시미치, 미나미 지로, 사이토 마코토, 고이소 구니아키 라는 이름만큼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이름을 목록에 올려야 할 것 같다. 가루베 지온... 일제강점기의 도굴꾼. 무령왕릉 앞에 있는 송산리 6호분을 발굴한 사람으로 이 사람으로 인해 우리가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다고 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우연인지 책을 펼치자 그동안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던 그 이름이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친 것처럼 내 앞을 막아 섰다. 그런 인물이었구나.... 그런 와중에도 가루베 지온이 송산리 고분을 발굴하면서 바로 뒤에 있는 무령왕릉을 왕릉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도운 일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니! 힘없는 나라의 서러움이 깊은 슬픔을 불러온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철저하게 파헤친 사실만을 이야기한다. 무령왕릉 발굴에 관한 전후의 일과 무령왕릉을 파헤치고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세세하게 말해주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졸속으로 이루어진 무령왕릉 발굴의 비화가 빼곡하게 적혀있다. 읽다보면 기가 막혀 가슴을 치는 순간도 있을 것이고, 졸아드는 안타까움에 잠시 숨을 몰아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사건이 우리에게는 커다란 교훈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전무후무한 그들의 행태를 변호하자는 건 아니다. 김원룡의 발굴 회고록을 보면 그 상황에서 고고학 발굴의 ABC가 미처 생각나지 않았었다는 말이 보인다. 고고학도로서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라고. 그러나 그 쓰라린 경험이 경주 고분 발굴의 교훈이 되었으니 그것으로 스스로 위안할 뿐이라고. 그러나 이 책속에는 그 사건에 대한 심판이라는 말도 보인다. 어찌되었든 잘못된 것에 대한 반성과 교훈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게 옳은 일일터다.
책장을 넘기면서 더는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참 많이도 했다. 그 참담함과 뻔뻔스러움으로 표현되어진 글자들이 벌레처럼 스멀스멀 책속에서 기어나오는 것만 같아서. 하지만 그 이야기의 끝을 알고 싶었다. 내가 이 책에 마음을 빼앗긴 그 이유를 알고 싶었던 까닭이다. 무령왕릉 발굴에 얽힌 비화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변하지 않는 지식인들의 편협함이 가슴 한켠을 서늘하게 하기도 한다. 공주박물관을 두어번 찾았던 기억을 더듬는다. 김원룡과 김영배의 혼을 빼앗아버렸다던 진묘수와 묘석이 떠오른다. 책의 두께만큼이나 전해져오는 울림이 크다. 다시 그 박물관에 가고싶다. /아이비생각

발굴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놓은 모습이다. 돌짐승 진묘수의 당당함이 느껴진다. 그 앞이 墓地石이다. 墓地石에는 왕의 墓誌와 干支圖, 買地券을 해서체로 새겨놓았다. 누구의 묘인지를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墓地石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