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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비밀 ㅣ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마탈러 형사 시리즈... 형사? 그렇다면 추리물이겠군. 추리라는 장르는 잘 만나면
짜릿한 전율을 느낄 수 있어 꽤나 괜찮은 느낌이 남게 된다. 그러나 그렇고 그런 추리물이라면 열이면 열 모두가 낚였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까닭인지 추리소설의 마니아가 아닌 나로써는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1941년 10월 19일로 시작되어지는 이 소설의
첫장을 넘기면서도 내내 심드렁했던 나의 반응이라니.... 거기다가 배경이 독일? 시대적으로나 배경적으로 보았을 때 나치와 유대인의 어떤 기억을
이야기 할지도 모르겠다는 섣부른 짐작을 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나타난 악보, 더구나 60년 만에 공개된 세계적 작곡가의 친필 악보가 하나의
동기로 부여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를 끌기 시작했다. 소설의 문체는 그다지 튀지 않는다. 극과 극을 달리는 설정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서서히 빨려들고 있는 나의 시선을 자각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60여년 만에 아들에게 전달된 오래된 서류봉투속의 악보. 시대적인 시각으로 그것을
들여다보던 많은 사람들의 속된 욕망은 그 악보로 인해 꿈틀대기 시작하고, 결국 그 악보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악행들이 저질러지고 말았다.
아우슈비츠에서 비참한 삶을 마감해야 했던 아버지가 어딘가에 살아있을 아들에게 남겨놓은 유품속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담겨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감춰진 비밀 따위에 관심을 갖는 현대인들은 없었다. 단지 그것으로 인해 생겨날 이익만을 쫓았을 뿐이다. 그 유품을 빼앗기 위해 벌어진
연쇄살인은 단순히 눈으로 보여지는 사건만으로 끝나서는 안되는 거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중반부까지 그 단순함만을 쫓아가고 있다. 그것도 아주
치밀한 긴장감으로.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라는 나치와 유대인의 상관관계를
얼만큼이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도 세상을 향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하는 독일이란 나라를 보면서, 그 반성과 사죄로
유대인들의 아픔이 얼만큼이나 치유될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단언컨데 우리에게 사죄는커녕 반성조차 하지 않는 일본보다는 낫다!)
이 소설의 흐름을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시킬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서 끝내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만약 이 소설속의 배경을
일제강점기로 두고 그에 맞춰 말로는 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른 한 사람이 있었으며 그것을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보아왔던 포로가 있었다면, 그리하여
그 참상을 낱낱히 기록하여 자신의 아들에게 남겨두었다면,..... 미루어 짐작하건데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이름을
바꾸고, 사는 곳을 바꾸고, 끝내는 자신의 과거가 밝혀질 어떤 기록이 자신앞에 나타난다면 그 역시 이 소설속의 인물처럼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촘촘한 글의 짜임새만큼이나 내게 다가오는 느낌이 긴장감을 내려놓지 못하게 한다.
책장을 덮고 나니 갑짜기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도 이 책속의 소리없는
외침처럼 우리의 아픈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싶어서. 한여름밤의 비밀은 그렇게 풀렸지만 우리에게는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채 떠도는 비밀이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할때가 있다. 이 나라는,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영원히 투명해질 수 없는 나라일거라고. 때로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풀리는 문제도 많다. 덮어두면 언젠가는 썩게 된다. 부패된 것들은 냄새를 풍긴다. 그러나 어떻게 된일인지 우리는 그 냄새마저도 모른 척 참아내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아픈 현실이 아닐까 싶다. 스릴러 문학의 새로운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말이 보인다. 얀 제거스라는 작가의 다른 작품을
한번 더 읽어보고 싶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