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피시 - 제23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오사키 요시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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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모두 슬프거든. 아무리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우쭐거리며 사치미 뚝 떼고 걸어가는 사람도 누구나 채워지지 않는 빈틈 같은 걸 갖고 사니까. 다들 외로워...(-171쪽)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이나 인연을 갈구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은 어떻게 구분되어질까? 그 모호한 기준앞에서 잠시 망설인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수많은 인연과 맺어진다. 그 인연이 오래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을 것이고, 그 인연이 좋은 인연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물론 있을 것이다. 우연한 만남... 그 우연한 만남이 아주 소중한 인연으로 자리잡게 되기도 하고 필연적으로 만나야만 할 인연도 있을터다. 만약 이 사랑이 정말 진심이었다면, 이 세상 어딘가에서 반드시 재회하게 될거라고 유키코는 말했지만 십구년만에 다시 만난 유키코와 마지막으로 나눈 말은 '안녕'이었다. 십구년동안이나 미루어두었던 그 말... 길을 헤매다가 정말 우연히 만났던 유키코와 그토록이나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며 아픔을 나눠가지려 했었던 그 마음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유키코의 말대로 사람들은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은 달라진다. 그렇게 유키코와 야마자키가 헤어지게 되었던 것처럼. 누구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선택의 기로에 서게되지만 선택의 기준은 항상 자기자신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게 된다.


파일럿 피쉬.. 물속에 미리 넣어두면 수조의 상태를 물고기가 살아가기 좋은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준다는 물고기. 그런 물고기가 정말 있을까? 물고기를 길러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속에도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곁에 두고도 모른채 살아간다면 왠지 아쉽고 또 억울할 것 같다. 이 책은 에로잡지를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는 야마자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있다. 묘하게도 과거와 현재가 겹치며 하나의 이야기로 엉키는 상황에 마음을 빼앗긴다. 굳이 야마자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투명막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 남자의 일상이 낯설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모습, 그 자체일 뿐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상황에 처하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떤 모습인지.


나이를 먹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그렇게 쌓여만 가는 그러면서도 두 번 다시 손이 닿지 않는 것들이 늘어가는 게 두렵다. 분명 지금 이 순간처럼 잊을 수 없는 행복하고 조용한 시간 하나하나가...(-189쪽)


한번 맺어진 인연은 헤어질 수 없다는 말이 여운을 남긴다. 끊을 수 없는 인연의 고리... 곁에 없는데도 꺼지지않는 불꽃처럼 그렇게 나의 시간속에서, 나의 기억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좋은 일일까? 좋든 싫든 어떻게도 할 수 없는 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 삶의 언저리에서 언제고 내 삶속으로 파고들수 있는 것이 기억인 까닭이다. 글자를 통해 눈으로만 느껴지는 이 책의 깊이는 얕다. 그러나 그 글자밑에 숨겨둔 의미는 한없이 깊다. 십년만에 다시 읽은 책인데 그 때나 지금이나 그 깊이를 알 수 없음에 허를 찔린다. 내가 느끼는 일본소설의 매력이다. 그때와는 또다른 어떤 여운이 내게 남는다. 색다른 경험이다. 문득, 가슴 한켠으로 싸늘한 바람 한점이 지나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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