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기장 이야기
송영애 지음 / 채륜서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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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나 제삿날이 다가오면 놋그릇을 꺼내 모래나 연탄재로 닦으시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엄마를 거든다고 옆에서 엄마를 따라하던 기억도 있다. 그러면서 엄마는 말씀하셨었다. 딸들만큼은 맏이에게 보내지 않겠다고. 아주 오래도록 그렇게나 많이 이사를 다니면서도 목기는 버리지 않았었다. 지금에야 사기나 목기보다 더 편한 스테인레스 제기가 있어 편하긴 하지만 말이다. 식기장 이야기는 오롯이 여자들만의 이야기다. 옛날에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큰일나는 줄 알았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집에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물품들이 꽤나 많았었던 것 같다. 가마니부터 멍석이나 절구, 쌀뒤주나 제기, 채반, 광주리, 조리나 옹기 정도는 아마도 기본적인 생활용품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새우젓 독이나 돌확, 맷돌이나 가마솥은 내 기억속에 없다. 곳간 열쇠를 누가 가졌는가에 따라 그 집의 실세가 정해졌다는 말속에서 고된 시집살이를 보게 된다.

 

식기장이 안고있는 우리 문화의 여러 면을 보게 된다. 신선로나 구절판과 같은 식기장보다는 고리나 소쿠리 광주리에 더 정이 가는 건 무슨 까닭인지....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는 옛이야기처럼 도깨비가 와서 신발을 가져가지 못하게 체를 걸어놓았다는 야광귀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던 것이다. 지금이야 많이 볼 수 없는 풍속이지만 조리를 사서 걸어두었던 기억도 있다. 복조리다. 그런데 그걸 거는데도 어떤 규칙이 있었다는 게 재미있다. 소쿠리나 광주리는 지금도 많이 사용하지만 옛날과 같은 재료는 아니다. 시장에 나가보면 플라스틱 소쿠리나 광주리들은 넘쳐난다. 한때 죽공예를 배워보겠다고 이것저것 만들기도 했었는데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만들어진 작품을 보면서 스스로 대견함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쌀뒤주를 이야기하면서 운조루와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아무나 퍼갈 수 있도록 행랑채 곁에 두었다던 운조루의 뒤주와 최부잣집의 여섯가지 가르침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처음 답사를 하면서 양반집 부엌에 엄청나게 걸려있던 소반을 보면서도 그 의미를 이해하기까지 한참 걸렸었다는 생각을 하니 살풋 웃음이 나기도 한다. 다시 생각해보니 단순한 식기장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우리의 삶이요, 역사의 한 단면이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전통적 도량형 자·되·저울을 소개했던 부분과 주령구 이야기는 이채로웠다. 도량형의 '度'는 길이를 재는 단위이고, '量'은 부피를, '衡'은 저울로 무게를 다는 것이다. 성인 남자가 한 손에 담을 수 있는 한 줌 곡물의 양이 한 '홉'이고, 양손에 담을 수 있는 한웅큼이 한 '되', 그 열 배면 한 '말'이다. 한 사람 키만큼의 거리가 '장'이고, 반걸음은 '규', 한걸음은 '보'다. 한뼘과 한아름의 차이야 누구나 다 알 것이고.... 우리가 사용하던 것은 중국에서 들여온 척관법이었다. 길이는 '자', 무게는 '관', 넓이는 '평', 부피는 '되'로 사용했다. 그렇다면 미터법은 언제 들어왔을까? 1902년에 처음 도입되었다고 하지만 일본 도량형제와 미터법을 절충해서 썼다고 한다. 그렇다고 척관법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다. 한번 뿌리박힌 것은 한번에 뽑아내기 힘든 까딹이다. 아파트 크기를 미터법보다는 평수로 이야기하는 게 더 이해하기 편한 게 솔직한 말이니... 안압지에서 발견되었다는 주령구는 일종의 주사위로 술자리에서 썼던 놀이도구라고 한다. 각 면마다 각기 다른 벌칙이 적혀 있다는데 그게 참 재미있다. 그 열네가지의 벌칙으로 신라인들의 음주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고해서 찾아보았다. 금성작무 (禁聲作舞)- 노래없이 춤 추기(무반주 댄스), 중인타비 (衆人打鼻)- 여러 사람 코 때리기, 음진대소 (飮盡大笑)- 술잔 비우고 크게 웃기(원샷), 삼잔일거 (三盞一去)- 술 석잔을 한번에 마시기, 유범공과 (有犯空過)- 덤벼드는 사람이 있어도 참고 가만 있기, 자창자음 (自唱自飮)- 스스로 노래 부르고 마시기, 곡비즉진 (曲臂則盡)- 팔을 구부려 다 마시기(러브샷), 농면공과 (弄面孔過)- 얼굴 간지러움을 태워도(놀려도) 참기, 임의청가 (任意請歌)- 마음대로 노래 청하기, 월경일곡 (月鏡一曲)- 월경 노래 한 곡 부르기, 공영시과 (空詠詩過)- 시 한수 읊기, 양잔즉방 (兩盞則放)- 두잔이 있으면 즉시 비우기, 추물막방 (醜物莫放)- 더러운 것 버리지 않기, 자창괴래만 (自唱怪來晩)- 스스로 괴래만을 부르기(도깨비 부르기) 가만히 살펴보면 지금 우리의 술문화속에서 볼 수 있는 것들도 꽤 보인다.

 

찬장과 찬탁 이야기를 보면서 어린시절을 떠올린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지금처럼 군것질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았었다. 연탄불에 밥을 하던 시절이었지만 오래도록 뜸을 들이면 먹음직스런 누룽지가 솥단지 모양으로 생겨 그걸 간식거리로 먹었었다. 밥을 뜸들이던 시간동안 밥위에 얹어 익혔던 계란찜도 그렇고, 되직한 전분을 밥위에 올려 찌면 감자떡이 되기도 했었는데.... 보리밥과 분식을 장려하던 시절이었다. 지나쳐간 것은 모두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된다. 생활사 박물관에 가고 싶어진다. 오늘 저녁에는 어린 시절에 많이 먹었던 청태김이나 구워 먹어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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