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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 모노가타리 - 일본 고전문학의 최고봉 ㅣ e시대의 절대사상 14
임찬수 지음 / 살림 / 2005년 9월
평점 :
솔직히 이 작품에 어떤 매력을 느꼈던 건 아니었다. 히카루 겐지라는 남자의 일생을
그리면서 그 주변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그렸다는 것과 인생에 관하여 혹은 불교와 관련된 구도정신등을 담았다는 것 때문에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일본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이길래 그토록이나 길긴 인연의 끈으로 우리와 엮여 있는것인지 그게 궁금했던
건지도 모를일이다. 한 남자의 일생을 따라가면서 볼 수 있었던 그들의 사상이나 생활상은 흥미로웠다. 우리말로 치자면 겐씨이야기다.
실제로는 상당히 많은 양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지만 한권으로 해석해놓은
작품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천황을 아버지로 둔 남자 히카루가 겐(源)이란 성을
하사받고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아가는 이야기. 그야말로 최고의 조건으로 태어난 남자다. 아들보다 딸을 낳아 외척세력으로 권력을 누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는 당시의 시대상으로 볼 때 히카루
겐지의 여성 편력은 미루어 짐작할 만 하다. 의붓어머니를 사랑하여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까지 낳았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싶기도 하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본의 역사나 우리의 역사속에서 보여지는 생활상은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 듯 하다. 역시 귀족의 이야기라서 그런 걸까?
일본 고전작품의 최고봉이며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일본의 문학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말이
보인다. 물론 여러 방면으로 평가했을 때 그만한 저력이 있다는 말일 터다. 중세의 학자들이 부처님이 내리신 영험이 아니고서는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평했다하니 대단한 작품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무라사키 시키부라는
작가는 궁녀였다고 한다. 그 당시의 궁녀가 지식인이었다는 말이 놀랍다. 그러나
생몰연대가 분명치않고 그녀의 이름 또한 분명치 않으니 어쩌면 더 환상적인 이미지를 불러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헤이안시대는 일본의 역사속에서 평화로운 시대였다. 그런 이유로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와 문학이 발달할 수 있었던 시대이기도 했다. 여자들에 의해
널리 보급되며 상용되었다는 가나문자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귀족층에서부터 자리를 잡게 되는 불교문화와 전통적인 신앙사상도 그렇고 일반인들의
생활속에 깊이 뿌리내렸다는 陰陽道에 관한 이야기가 이 작품에서 또하나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왕족과 귀족의 생활을 다루고 있다보니
우리의 궁중역사와 비교되는 점이 보여 재미있게 읽었다. 같은 후궁이나 궁녀라해도 저마다의 계급이 있었다는 것과 당호가 곧 그녀들의 이름으로
불리워졌다는 것도 그렇고. 풍류를 사랑했던 우리의 왕족이나 귀족문화도 그에 못지
않아 보인다.
책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귀신이야기가 이채롭다. 그들의 전통적인 신앙이나 일반인들에게
깊이 뿌리박혔다던 음양사상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원령이 된다는 이야기는 좀 섬뜩하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애니메이션 모노노케히메를 떠올린다. 모노노케([物の怪), 즉 사람을 괴롭히는 死靈이나
怨靈으로 귀신을 말한다. 우리의 전통신앙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은 모든 것들에
영혼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정말로 많은 神과 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존재들을 모두 자신들의 생활과 묶어 생각했을테니 참 대단한
일이다. 오죽했으면 억울하게 죽은 원령들을 달랜다는 위령제로 고료에(御霊会)라는 대대적인 종교행사가 있었겠는가.
여자가 한을 품으면 모노노케가 된다는 이야기의 배경은 일부다처였던 당시의 생활상과 관련이 있어보인다. 헤이안시대의 결혼상은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찾아가는 형식이었다고 하니 여자들은 한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궁중사에서도 흔히 보이는 것처럼 사랑을 빼앗긴 여자가
질투와 원한으로 인해 상대방을 저주한다. 하지만 그 마음이
生靈이 되어 상대방을 괴롭힌다는 건 정말이지 놀라운 발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본문학의 단면일수도 이는 하이쿠의 느낌을 참 좋아한다. 그 짧은 글귀속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이나 전하고자하는 메세지의 강함이 나쁘지 않다. ( 렌가나 하이카이에서 제1구를 칭하는 말로 5 7 5의 17음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것이 독립하여 하나의
시로 만들어진 것을 이르는 말로도 사용된다. 하이쿠(俳句) 또는 '호쿠'
라고도 부른다.) 책속에 아와레(あはれ)라는 말이 보인다.
あはれ는 어떤 사물이나 사실에 감동하거나 감흥을 느끼는 것을 가리키는데
헤이안시대의 대표적인 미의식중 하나라고 한다. 본래는 와카에서 느끼는 감동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헤이안 시대의 평화로운 정서나 개인적인 미의식을 표현하는 말로 쓰였다. 예를 들자면 계절이 바뀌는 느낌이라거나 인생의 희노애락과 같은 감정, 혹은 갖가지 상황에 맞닥뜨린 인간의 감정을
말하는 것으로 당시의 왕조문학이나 미의식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한가지
더, 와카에 대해 찾아보았다. 와카는 '야마토우타(大和歌)', 즉 '일본의 노래'의 준말로서 일본의 사계절과 남녀간의 사랑을 주로 노래한 5·7·5·7·7의
31자로 된 일본의 정형시이다.
와카는 漢詩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일본인에 의해 일본어로 일본의 자연을 노래한 것'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와카는
렌가(連歌)나 하이쿠(俳句)의 발달 속에서도 귀족문화의 유산으로서 시가문학의 중심적인 위치를 고수했으며, 오늘날에도 그 형태가
변하지 않은 채
'단가(短歌)'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아울러 우리문화와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원작에 대한 욕심은 없다. 이제 일본서기를 읽어봐야겠다. 언제 읽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___^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