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게 너무 깊이 들어왔다
곽효환 지음, 이인 그림 / 교보문고(교재)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정호승의 <수선화에게>,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서정윤의 <홀로서기>,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연탄재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고 묻던 안도현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와 같은 시들은 학창시절부터 꾸준히 내 곁을 맴도는 시들이다. 진정한 교복세대였던 나의 학창시절에는 광화문 거리에 나가면 예쁜 그림과 어울어진 시를 손글씨로 모양을 내서 표구를 하던 표구점이 많았었다. 어디 그것뿐일까? 그 뒤로 환상적인 그림과 함께 시한구절씩 적힌 껌종이를 모으는 것이 하나의 취미처럼 자리잡을 때도 있었다. 가끔 근현대사를 주제로 다루는 박물관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풍경들이다. 감히 말하건데 그 때는 지금처럼 이렇게 삭막한 세상은 아니었다. 한 줄의 싯구에도 가슴 절절함을 전해받을 수 있는 따스함이 우리에게는 있었다는 말이다.

 

詩, 어찌보면 참 쉬운듯도 한데 작정하고 들여다보면 그것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인생이나 자연현상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느낌을 언어로 표현했다고는 하지만 같은 것을 보고도 각자의 느낌으로 달리 표현하니 그것을 읽는 사람조차도 그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석이 달린 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온전히 나만의 감정으로 해석하고 받아 들이고 싶은 욕심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해석이 필요한 시도 많다. 교묘하게 비틀린 사상이 그 안에 담겨있는 경우도 많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많은 사람이 한편의 시를 보며 공감을 하고 그것으로부터 작은 위안을 찾아내는 경우는 대체적으로 시가 어렵지 않다는 거였다. 자기만의 어떤 사상을 詩속에 담기보다는 더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도록 쉽고 편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닌듯 하다. 책속에서 같은 봄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의미가 서로 다른 작품을 보게 된다. 김종해의 <그대 앞에 봄이 있다>와 김종철의 <봄날은 간다>처럼 말이다. 상처없는 사랑과 삶은 없는 거라고, 삶의 여정에는 어쩔 수 없이 喜怒哀樂이 있으니 순리대로 살면 되는거라는 말인텐데 와닿는 느낌이 다른 걸 보면 詩라는 게 참 묘하다.

 

이 책속에 소개된 시는 중앙일보에 연재되었었다. '시가 있는 아침' 이라는 제목이 좋아서 즐겨보았던 부분인데 다시 책으로 보니 반갑다. 하지만 어려운 시는 다시 읽어도 어렵다. 역시 내게는 쉽게 다가오는 느낌의 언어들이 맞는 모양이다.

 

오일마다 어김없이 열리는 관촌 장날

오늘도 아홉시 버스로 장에 나와

병원 들러 영양주사 한대 맞고

소약국 들러 위장약 짓고

농협 들러 막내아들 대학등록금 부치고

시장 들러 생태 두어마리 사고

쇠고기 한근 끊은 일흔다섯살의 아버지,

볼일 다 보고 볕 좋은 정류장에 앉아

졸린 눈으로 오후 세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기력조차 쇠잔해진 그림자가 꾸벅꾸벅 존다

이런 시를 가만히 읽다보면 마음 한켠이 따스해진다. 이병일의 시로 제목이 <어떤 평화>다. 머리속에 그려지는 그림을 따라가다보면 늙으신 아버지의 작은 평화를 나도 함께 누릴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정철훈의 시처럼 묘한 끌림이 느껴지는 시도 있다.

 

폭풍 몰아치는 밤

빼꼼히 열린 문이 쾅 하고 닫힐 때

느낄 수 있다

죽은 사람들도 매일밤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는 걸

내 흘러간 사랑도 그러할 것이다

<자정에 일어나 앉으며> 라는 제목을 보면서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쩌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보았음직한 상황인데 짧은 문장속에 숨겨놓은 말하지 않은 어떤 의미들로 인해 문 닫히는 소리가 내게도 들려오는 것만 같다. 정말이지 詩라는 게 참 묘하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