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 기행 - 고개를 들면 역사가 보인다
김봉규 글.사진 / 담앤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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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 뜻부터 새겨봐야 할 것 같다. 현판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편액과 주련을 통칭해 일컫는다는 말. 지금까지 편액과 현판을 같은 의미로 써왔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간단하게 말해서 건물의 명칭을 나타내는 표지가 편액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편액의 글씨를 아무나 쓰지 못했다.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말일 터다. 굳이 4대명필이라 하지 않더라도 명필로 유명했던 이름은 꽤나 많다. 詩, 文, 畵, 에 능했던 사람들 역시 당대의 명필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명필을 논하기보다는 어떤 연유로 편액의 글씨를 썼는가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건 나만의 욕심일까? 그래서인지 글씨체보다는 그 안에 얽힌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게 들려온다. 부록으로 실린 서체의 종류와 변천사는 흥미로웠다. 갑골문에서 왔다는 전서는 선이 직선적인 것이 특징이란다. 전서가 너무 복잡해 쉽고 간편하게 고친 것이 예서이고(내가 볼 때 예서는 한껏 멋부린 글씨체다), 예서에서 비롯된 해서는 초서가 표준없이 난무하는 것을 바로잡고자하여 만들어졌단다. 모범이 될만한 글씨가 해서라 하니 우리가 보기에 깔끔하고 정갈해보이는 서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거기에 비해 뭔가에 쫓기듯 휘갈려 쓴 글씨를 초서라 하는데 글씨를 쓰는 속도와 글자의 크기, 점획의 모양등을 미루어 볼 때 그것을 쓴 사람의 개성이 가장 잘 나타난다고 한다. 그리고 또 행서가 있다. 가장 실용적인 글씨체라는 행서는 너무 간략한 탓에 알아보지 못하는 초서에 예서의 형태를 붙여놓은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단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글자체에 대해 다시한번 공부해 볼 수 있던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액이나 주련을 볼 때마다 똑같은 타령을 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답사를 다니면서 수많은 현판을 보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담양 소쇄원의 글자들이다. 담벼락에 새겨진 글씨도 그렇고 '齊月堂' 이나 '光風閣'이란 당호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찾다가 유학자 주돈이의 사람됨을 평하여 "흉회쇄락여광풍제월 (胸懷灑落如光風霽月)"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이라는 말을 보고 고개를 끄덕거렸었다. 그의 마음이 시원하고 깨끗하여 마치 맑은 날의 바람과 비갠 날의 달과 같도다, 라는 의미이니 선비로써 그와 같음을 좇고자 했음을 익히 알수 있게 해주는 당호가 아닌가 싶다. 주변에 있던 息影亭은 단순히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뜻으로만 알았었는데 그것과 얽힌 이야기를 새롭게 알게 되어 좋았다. 크게 나누어 정자와 누각에 걸린 현판, 서원과 강당에 걸린 현판, 사찰에 걸린 현판으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지만 첫머리에 밝혀둔 글쓴이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라의 명필 김생이 썼다는 마곡사의 대웅보전도 그렇고 공민왕의 글씨로 전한다는 많은 편액도 문화유산으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홀대를 당하고 있다는 말이었는데 글쓴이의 안타까움에 공감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현판의 모양이나 장식등도 차이가 있어 시대적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말에 기억을 더듬어 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편액을 바라보면서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싶어서다. 옛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이나 사상을 그 안에 담았을 수도 있기에 그것을 쓴 사람에 대한 지식이나 역사적인 단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편액 역시 그저 그런 하나의 글자에 불과한 까닭이다. 찾는 사람 모두가 공부를 한다면 좋을 일이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안내글에 설명구 한두줄 더 끼워넣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욕심을 부려보게 된다. 耳懸鈴鼻懸鈴.. 문득 생각난 말이다. 사찰의 편액은 보통 그 성격에 맞춰 당호를 붙이거나 주련 역시 부처님의 말씀을 쓴 경우가 많아 어느정도는 이해하기 편한 부분도 있는 듯 하지만 정자나 누각 혹은 서원과 같은 곳에 걸린 편액이나 주련은 그것을 만든 사람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의미가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참 어렵다. 책을 보는 내내 고집스러운 옛선비들과 마주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풍류를 알았으나 제 멋에 겨운 아집으로 똘똘 뭉친 그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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