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파인더 - 인류 최초의 지혜로 미래를 구하다
웨이드 데이비스 지음, 이승민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는 과학기술과 진보를 향한 숭배에 내재하는

만인을 위한 단일한 문명이라는 이상으로 말미암아 피폐해지고 불구가 된다.

세계관 하나가 소멸할 때마다, 문화 하나가 사라질 때마다 생명의 가능성도 낮아진다. - 옥타비오 파스(178쪽)

 

책을 읽는 내내 곁을 맴돌던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 이 내용을 책이 아니라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아마도 순간순간 느껴지던 공감의 강도나 깊이가 엄청났을거라고.... 부드럽지 않은 주제와 문체가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하는 내 시선을 붙잡아주지 못해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굳이 인류 최초의 지혜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직까지는, 진정 아직까지는 살아남은 소수 민족만의 순수함은 이내 내 속을 파고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으려는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버텨주고 있기에 고마운 그들의 삶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읽는다는 건 결코 경이로운 일이 아니다. 세계화라거나 지구촌이라는 말로 언제부터인가 획일적이며 몰개성화되어져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본다면, 현재 인류가 살아가는 삶의 형태가 우리에게 밝은 미래를 선사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애써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이며 이긴 자 혹은 힘있는 자들에 의해 쓰여진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화적인 획일화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 언어를 비롯한 수많은 種의 사라짐이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화면속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유추할 수 있다는 말은 현재의 삶에 대해 다시한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 하나를 들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던 부시먼을 기억한다.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아직까지도 그들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오직 자신들만이 선택받은 양 거들먹거리며 유럽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던 문화의 틀이 깨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오류와 착오가 있었는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인류 문화사에 진보의 단계는 없다던 말은 깊은 울림을 전한다. 그 부족만의 고유한 지식덕분에 초기 인류의 모습을 하고도 아프리카에 살아남았다는 산족. 야만이니 미개니 하는 말과 문명이라는 말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해보게 된 말이다. 그런 말들은 과연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바다에 정착하여 멋진 삶을 이루어냈던 폴리네시안들에게도 분명 문명은 있었다. 정복되기 전의 그들에게 정복자보다 더 훌륭한 문화가 있었음을 우리는 안다. 우리의 훌륭한 사회가 '야만인들'의 사회보다 유리한 점이 무엇일까를 종종 생각한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음은 왜일까?

 

계절을 견디고 바다를 읽으며 땅의 신성함을 믿는 동시에 우주와 공존할 줄 알았던 인류가 멸종으로 가는 21세기라는 이름의 전차를 탔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의 파괴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작금의 행태를 생각해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지구는 맘껏 소비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닌 까닭이다. 숲을 숭배하도록 배운 아이와 숲을 베도록 배운 아이가 만날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은 보지않고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확연하게 차이가 날 것이기 때문에. 어느쪽을 택할 것인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음은 말 할 것도 없다. 문화충돌의 본질은 미친 듯 날뀌는 권력에 있다는 말이 씁쓸하다. 결국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자만이 불러온 결과물일 터다. '한 사람의 가난은 모두의 수치다' 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던 어느 부족처럼 모두의 안녕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올 수는 있을까?

 

세계적으로 에너지와 물자의 소비를 서구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현재 인구 추계상 2100년까지 지구 네 개 행성만큼의 자원이 필요하다. 하나뿐인 지구로 그 자원을 대려면 지구라는 행성은 식별하기 힘들 정도로 생물권이 훼손될 게 뻔하다. 물론 국제사회의 결정을 움직이는 가치들이 있는 한, 당장 이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211쪽) 천편일률적으로 변해가는 서구화의 물결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꿰뚫고 있는 말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우리가 영화에서나 보았을 그런 황폐한 지구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다는 걸 우리는 왜 알지 못하는 것일까?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최선일까?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한 부족들이 지금도 자신의 문화가 사라지지 않도록 투쟁하고 있다고 한다. 티베트인과 산족, 아르와코족, 위와족과 코기족, 카이오와족, 바라사나족, 마쿠나족, 프난족, 렌딜레족, 탈탄족, 기트산족, 웨추웨튼족, 하이다족, 이누이트족 그리고 폴리네시아 부족 (책에 나와 있는 부족들의 이름을 그대로 옮겨놓은 이유는 그다지 많지않은 소수민족의 삶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형을 미치고 있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싶어서이다!) - 의 이름이 갖고 있는 중요성을 우리가 외면한다면 그것은 분명 인류의 위기이며 지구의 위기다. 책을 덮으니 뒷표지에 이런 말이 보인다. " 전 세계인이 같은 언어를 쓰면 세상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멋진 생각이군요. 그럼 하이다족이나 요루바족 혹은 이누이트족이나 산족의 언어를 세계 공통어로 삼아 볼까요?" 어느 민족이 더 우월하고 어느 민족이 더 열등한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것은 분명 인간의 잣대일 뿐일테니. 모두가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보다 배려와 관심으로 만들어가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금도 하루라는 시간속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아픔을 느껴야만 한다. 이 책은 인간성을 잃어버린 현재의 우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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