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산이 있었다 - 한국 등산 교육의 산증인 이용대 교장의 산과 인생 이야기
이용대 지음 / 해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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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때 산이 좋아서 오로지 산만 바라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무슨 해외원정을 갔던 건 아니다. 기껏해야 1000미터도 안되는 산을 올랐을 뿐이다. 모순되게도 건강 때문에 산을 찾기 시작했는데 다시 건강을 핑게로 산과 멀어져야 했지만 그런 내게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산을 오르느냐고 묻곤 했었다. 왜 그렇게 산에 올랐을까? 누구는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분이 너무 좋아서라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산에 동화되어지는 내가 좋았던 것 같다. 한동안 산엘 가지 않았으니 지금은 산행풍경이 어떨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경쟁적으로 누가 더 많은 정상을 찍는지 내기를 하는 것처럼 이 산 저산을 바쁘게 오가던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산은 정복하기 위해 오르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산을 오르며 숨한번 고를 때마다 고개를 들면 나뭇가지 사이로 펼쳐지던 파란 하늘이 좋았다. 산길을 걸으며 두팔 벌려 맞이하는 바람이 좋았었다. 사람소리보다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와 같은 자연의 숨소리가 좋았었다. 산을 오르며 내 무릎 아래에서 살포시 고개 들고 웃어주는 작은 꽃한송이의 웃음이 좋았었다. 그러다 그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 야생화도감을 하나 사서 배낭에 넣어가지고 다녔었다. 아주 작은 그 웃음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절로 미소가 번진다. 마음쉼을 위한 산행이라면 자연을 그렇게 느끼는 거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어느정도는 현실도피성을 담고 있었다해도 오롯이 산과 함께 어울어지는 그 시간이 내게는 참으로 소중했었다. 같은 길을 몇번씩이나 찾아가도 갈 때마다 다른 표정과 느낌으로 나를 맞이해주던 산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일전에 읽었던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에서 공감과 치유의 산행 에세이라는 말이 참 좋았었다. 작가 김별아가 백두대간을 완주하는 여정을 담았지만 그 여정속에서 들여다보았던 단상들은 의외로 깊은 울림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산을 하나의 영적 대상으로 여겨 오른다(登山) 하지 않고 든다(入山) 라고 표현했다던 동양적 사상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라면 적어도 사람들이 자연을 너무 쉽게 대하지 않을 것 같아서.... 언제부턴가 우리는 산을 찾는 것조차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움직이고 있다. 우스개소리로 유명한 등산복을 만드는 나라에 가면 그 등산복을 입은 사람이 없는데 대한민국에서는 자주 볼 수 있다는 말이 안타깝다. 高山에서나 입을 수 있는 등산복을 우리는 약수터에만 가도 볼 수 있단다. 너도 나도 자존감없이 남의 눈치만 보며 살아가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고... 책속에서 보여지던 등로주의란 말은 왠지 껄끄럽게 다가왔다. 너도나도 그 방식을 택한다면 우리나라의 산이 몸살을 앓을 것임은 뻔한 일이다. 등로주의와 같은 것은 그야말로 산에 오르는 것에 대해 진정한 가치를 논하는 사람들만이 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나는 사람을 구분할 때 산에 가는 사람과 가지 않는 사람, 산에 가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읽지 않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글도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한다." 책속에 있는 말이다. 이 글귀를 한참동안이나 들여다 보았다. 멋지다! 산은 인생의 학교다, 라고 먼저 글을 시작했던 것에 공감하게 된다. 백두대간이란 명칭의 역사적 배경을 이제사 알게 되어 조금은 부끄럽기까지 하다. 1769년 조선조 후기에 발간된 지리서 <산경표>에서 그 이름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15개로 분류하고 있다고 하는데, 산맥이라는 개념 자체가 땅속의 구조선을 기준으로 하여 거기에 땅 위의 산들을 억지로 꿰맞추다보니, 땅 위의 산줄기에 물길이 포함되기도 하고 산맥이 강을 건너는 말도 안되는 모순을 볼 수 있어, 근본적으로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배웠던 체계와는 전혀 다르다는 말이 시선을 끈다.

 

우리 산에 자생하는 풀꽃을 기억하라 는 당부는 정말로 잊어서는 안되는 주제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식물은 4,200여 종으로 이 가운데 우리 땅에서만 자라는 것이 400여 종이다. 종류가 많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 효용가치로 볼 때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하니 우리가 우리의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식물자원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미스킴 라일락이나 정향나무와 같이 우리나라가 원산지임에도 불구하고 역수입되어 들어오는 식물자원이 많은 까닭이다. 문화유산을 관광자원으로 인식하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던 어리석음을 식물자원에서 또다시 번복한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가 없으니 하는 말이다.

 

책속에는 등산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있다. 등산학교, 등산교육, 산서읽기, 빙벽, 세계의 여러 산을 정복했던 우리의 산악인들, 월간 <산>이나 <사람과 산>과 같은 잡지 이야기, 지금은 들을 수 없는 메아리 이야기, 비박, 여성 산악인.... 그 중에서도 책, 산을 오르는 또 하나의 길이라던가 비싼 등산복에 기죽은 현실을 안타까워 하던 이야기는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고산과 암벽, 빙벽만을 오르는 것이 등산은 아니라며 자연환경, 생태, 문학, 역사등 여러 방면에 걸쳐 폭넓게 탐구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산에 오르자던 글쓴이의 말은 새겨들을 만 하다. 건강을 도모하고 체력을 단련하는 수단도 좋지만 단순히 오르는 행위만을 생각하지 말고 탐구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말 역시 공감한다.

 

어려서도 산이 좋았네 할아버지 잠들어 계신
뒷산에 올라가 하늘을 보면 나도 몰래 신바람났네
젊어서도 산이 좋아라 시냇물에 발을 적시고
앞산에 훨훨 단풍이 타면 산이 좋아 떠날수 없네
보면 볼수록 정 깊은 산이 좋아서 하루 또 하루 지나도 산에서 사네
늙어서도 산이 좋아라 말없이 정다운 친구 온 산에 하얗게 눈이 내린 날
나는 나는 산이 될테야 나는 나는 산이 될테야

문득 생각나는 노래가 하나 있어 그것을 찾아 들으니 너무 좋다. 저런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텐데.... /아이비생각

 

오늘날의 우리 산에는 많은 인파가 북적이다 보니 훼손과 오염이 늘고 등산객들의 고성방가에 차량 접근까지 더해 소음 공해마저 겹치고 있는 실정이다. 산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요, 본래의 주인은 등산객이 아니라 산에 살고 있는 뭇 생명들이다. 그들은 사람보다 먼저 산에 깃들어 오래도록 살아온 존재들이다. 혹여나 이들에 대한 배려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볼 때다.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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