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인문학 1 - 현실과 가상이 중첩하는 파타피직스의 세계 이미지 인문학 1
진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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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다도 글쓴이의 이름에 더 눈길이 갔다. 잘은 모르겠으나 우리시대 진보의 아이콘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인식되어있던 까닭이다. 그럼에도 나는 글쓴이의 작품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작정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사실 나는 진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한창 나이때는 참 좋아했던 말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다지 좋은 느낌을 주지 않아서. 進步라는 말을 찾아보면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지는 걸 말한다고 나와 있다.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한다는 진보라는 말의 의미와는 동떨어진 듯한 그들의 행보가 진보다운 진보를 보여주지 못한 까닭도 있겠지만 어쩌면 나의 편협된 생각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나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간 책의 여운이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아직 남아 있다. 높은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던 것처럼 책속에 머물던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가르는 획기적인 전환점은 문자였다. 문자를 통해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를 모두 기록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숫자코드가 발생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하나의 모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이미지라고 한다. 물론 이미지, 즉 그림문화는 이미 선사시대에도 있었다. 한마디로 차원이 다른 이미지로 고대인의 이미지가 주로 주술적, 주관적 상상에 머물렀다면 현대인의 이미지는 기술적인 형상으로 객관적 현실을 표현한다. 픽셀, 비트, 나노와 같이 주로 '점'의 단위로 만들어지는 이미지 세계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으로 모든 것을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이 놀라웠다.

 

가상현실과 현실가상이라는 말이 책속에 보인다. 글에도 픽션이 있고 논픽션이 있으며 교묘하게 그 두가지를 섞어놓은 것도 있다. 그림에도 추상화가 있고 진경산수화가 있다. 그러나 그둘을 섞어놓은 듯한 그림도 분명 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은 가상현실속인지 현실가상속인지 불현듯 묻게 되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황룡사 벽에 소나무를 그렸더니 새가 날아와 앉으려다 부딪혔다거나 용의 눈에 눈동자를 그려넣었더니 하늘로 올라갔다거나 하는 류의 이야기는 많다. 라스코 동굴의 벽화나 반구대암각화의 그림을 보면서 옛사람들의 생각과 문화를 유추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이미지는 단순히 상상력이나 기술적인 것만을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닌 듯 하다. 지금 우리와 맞닿은 디지털형상은 이성적이며 기술적인 동시에 신화적이며 마술적인 특징을 갖는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문득 가상의 운전게임이 생각났다. 운전대를 잡고 가상의 길을 가고 있지만 실제로 내가 차를 타고 가는 것처럼 느껴져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그야말로 묘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니 디지털형상이라는 게 특이하긴 하다. 파타포는 메타포의 패러디라는 말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단순히 '비유'의 개념일뿐인 은유, 메타포에 비해 파타포는 가상과 현실이 분리되지 않고 중첩된다는 말은 문득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을 되돌아보고 싶게 만든다.

 

가끔 필요에 의해 포토샵을 열때가 있다. 갖가지 잔재주로 만들어내는 수많은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이미지세계라는 게 참 신비롭기까지 하다. 차단막을 치든 가림막을 치든 찍고자하는 피사체는 같다. 다만 찍혀져 나온 결과만 다를 뿐이다. 겹치기를 하든 합성을 하든 만들어내고자 하는 결과물은 하나일 것이다. 다만 보여주고자 하는 자와 보는자의 느낌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과정에 따른 결과의 시간과 공간적인 차이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기도 하고 미래와 과거가 나란히 가기도 한다. 시간이 멈추기도 하고 이미 지나가버렸거나 아직 오지 않은 시간속에 어떤 존재를 보내거나 가두기도 한다. 늙은 사람이 젊어지기도 하고 미운 사람이 예뻐지기도 한다. 우리는 한명의 마술사처럼 이미지를 창조해내고 있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한장의 사진을 두고 보는 이에 따라 달라지는 해석의 의미는 뭘까? 그 사진속에 담고자 했던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다분히 주관적인 까닭이다. 때문에 사진은 상징이라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진으로 그려지는 작위성이나 우연성 혹은 허구나 진실따위를 알아내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생각이 들어가 있는 사진이라면 부연설명없이 그 이미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눈치챈다는 게 어려울거라는 말이다. 가끔 광고를 보면서도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몰라 짜증날 때가 있는데 아무래도 나는 이 책의 말처럼 미래의 문맹자가 될 확률이 높은 것 같다.

 

나는 사실 진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내가 보수주의자라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말이 난무하여 말에 치이며 사는 세상이다. 이 책에서 말했듯이 '비판'만 할 뿐 새로운 현실을 '기획'하지 못하는 진보라면 딱히 진보라는 말을 써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까닭이다. 한마디로 말해 진정한 진보세력이 없거나 진정한 진보세력은 아직 세상밖으로 나오지 않은 형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책을 통해 '나꼼수'나 '일베'라는 말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들의 배경은 뜬금없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 이 세상은 도덕적, 윤리적 감성만으로 살 수 없을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 구속을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곳이다. 한쪽으로만 치우친 논리가 통할 리 없다는 것이다. 그림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사회적인 현상까지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한번 놀랐다. 글자를 모르는 자가 아니라 이미지를 못 읽는 자가 미래의 문맹자가 될 것이다, 라는 책띠의 말이 새삼스럽게 클로즈업되어 내게로 다가온다. 현실과 가상이 중첩하는 파타피직스의 세계, 우리가 지금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만들어진 것들의 세계, 그 세계속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서글프게도! 가장 사실적인 사진이 역설적으로 매우 허구적으로 느껴진다. (-237) 어떤 사진 한장을 분석하며 한 말이지만 왠지 모르게 깊은 울림이 전해졌던 말이다. 그만큼 우리가 작위적인 것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내 생각일 뿐이다. /아이비생각

모든 것이 변경가능하고 아무것도 지속적이지 않다.(-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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