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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학실록
이성규 지음 / 여운(주)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정말 그랬을까?' '음, 그럴수도 있겠군!'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거지?' 이런 따위의 궁금증을 자아냈던 사건들은 의외로 참 많다. 굳이 역사를 들춰내지 않더라도 우리 삶속에는 그야말로 미궁으로 빠져든, 그래서 한번쯤은 되짚어 생각해볼만한 그런 일들이 꽤나 많을 거라는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미 지나가버린 머나먼 역사의 흔적속에서 그런 의문점을 찾아냈다. 경종이나 정조처럼 독살설에 휘말렸던 미궁의 사건들도 있지만 한때는 혜원 신윤복이 여자였다거나 하는 것처럼 어이없는 이야기들도 떠돌았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른바 과학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무슨 이야기일까 싶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일단은 흥미롭다. 그 시절에 정말 그런 일도 있었을까 싶은 사건도 다루지만 어디선간 한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한 사건 또한 다루고 있음이다.
옛날에는 자연적인 현상마저도 정치와 무관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상상의 동물들까지 만들어내며 '성군'이니 '태평성대'니를 운운했겠는가 말이다. 우리가 서수瑞獸라고 일컫는 동물들(기린이나 봉황, 해치와 같은)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상상속의 괴수가 출현했다는 부분을 보면서 아무런 생각없이 만들어낸 것들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메뚜기떼가 나타나 논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놀라웠다. 그야말로 성경에서나 나옴직한 이야기가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메뚜기의 특성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어 그야말로 과학적인 논리를 잣대로 들이대니 아하, 그렇구나 싶어 무릎을 치게 된다. 세종이 그토록이나 아꼈다던 인재 장영실이 어느날 갑짜기 사라져버린 이유라거나, 이순신 장군을 영웅으로 만들었던 거북선의 실체에 대해서 가끔은 혼자 궁금해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기도 했었는데, 책을 읽으며 같은 주제를 만나게 되니 순간 반갑기도 하고 순간 긴장이 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일종의 사건들이 그때 이전에 이미 있었던 일이라면 기분이 어떨까? 정조의 화성행차시 한강을 건너게 해 주었다는 배다리나 거북선과 같은 경우는 이미 그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있었던 일이라해서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가가 중요한 까닭이다. 설치기간만 20여일을 잡아야 했다는 배다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에는 왜 다리가 없었을까? 그것은 한양이라는 도성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해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니 도성방어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 싶다. 조선시대에도 서양인 외인부대장이 있었다는 건 이채롭다. 돌부처가 땀을 흘리고 붉은 말이 절에 들어와 울다가 죽었다거나, 여우떼가 궁궐로 들어왔다거나, 물고기가 강변으로나와 죽었다거나, 우물물이 핏빛으로 변했다거나 하는 것들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나 봄직한 이야기들인데, 조선시대에도 황새가 패싸움을 하니 왕후가 죽고, 개구리가 떼로 몰려와 패싸움을 하니 세자가 죽었으며, 그런 현상으로 말미암아 나라에 큰 변고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왠지 좀 그렇다.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하는 식으로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어찌되었든 아무데서나 볼 수 없다는 오로라를 조선의 밤하늘에서 어떻게 볼 수 있었는지, 자그마치 530여년간이나 운하를 파려고 했으나 끝내는 파지 못했다는 이야기, 창경원 동물들이 왜 독살당해야만 했는지와 같은 이야기들은 다음장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흙비'가 조선시대에도 내렸다는 사실이다. 자연현상이라는 것이 단지 문명의 폐해만은 아닌 모양이다. 역사를 배우게 되면 흔히 그 시대로 돌아가 생각해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그와 반대로 역사적인 현상들을 이 시대의 잣대에 맞춰 이야기하고 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었는지를 다시한번 되새겨보는 시간이 주는 의미는 의외로 깊었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