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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이 품은 한국사 두 번째 이야기 ㅣ 지명이 품은 한국사 2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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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답사를 다니다보면 그 동네의 이름만으로도 그곳을 스쳐지났던 역사의 한줄기를 유추해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오래된 것일수록 그곳이 어떤 곳이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가끔 서울 시내를 지나치면서 세종로니 충정로니 퇴계로니 하는 거리의 이름을 볼 때 고개를 갸웃거릴 때가 있는데 그 地名과 역사속의 인물이 무슨 상관관계일까 싶은 까닭이다. 사찰을 다녀보면 일주문에 쓰인 'OO산OO사' 라는 현판이 붙은 걸 볼 수 있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지금의 이름보다는 옛날의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경우도 많다. 옛날에는 地名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산이나 물을 소재로해서 만들었거나 지형의 특징이나 자연 자원을 소재로 하여 만든 이름도 있고, 신앙이나 풍수지리의 영향을 받아 만들었거나 교통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말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동네이름중에서도 앞에서 열거한 이유를 근거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내려오는 것도 찾아보면 꽤나 많을 것이다. 더구나 한다하는 옛사람들은 사물이든 자연이든 제 흥에 겨워 이름붙이기를 좋아했다. 가까이에 있는 古宅을 찾아가보더라도 집안의 건물이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어디 그것뿐일까? 그 주변을 흐르는 물이나 바위에도 이름붙이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의미로 삼기도 했다. 그러니 동네이름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내게는 지금의 地名보다는 옛地名이 훨씬 더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생긴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했다거나 느껴지는 혹은 보여지는 그대로의 이름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장승이 서 있는 곳이라하여 장승백이라고 했는가하면 탑이 있다고해서 탑리, 미륵상이 있다고해서 미륵리, 지네를 닮았다고 하여 농다리라고 했다거나 공작새를 닮았다고 하여 공작산이라고 했다거나 하는 것만 보더라도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얼마나 곱고 아름다운 심성을 가졌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강화 살창리에 관한 이야기는 씁쓸하다. 창왕과 영창 대군 두 昌이 죽었다고 하여 그들이 죽은 곳을 지금도 살창리라고 한다는데, 시대를 달리하여 죽임을 당한 두 왕의 혼이 깃들어있는 듯한 이름은 많은 느낌을 전해준다. 비록 255년이라는 간격을 두고 있지만 창왕과 영창대군의 넋은 어쩌면 그 동네를 아직도 쓸쓸히 배회하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여 서글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강화 중심지 읍내에서 두 昌이 죽임을 당한 곳, 즉 殺昌里를 찾아 나서는 길은 무척 어려웠다 는 지은이의 말처럼 옛지명만으로 역사의 현장을 찾아낸다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모른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 하물며 찾아간 관청에서조차 같은 답을 들었을 때는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러나 살창리처럼 지방사투리로나마 남겨진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일터다.
고양시 일산의 이름이 행정구역 명칭으로 정해진 일제의 잔재라는 걸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지금의 일산 일대는 조선 태종대에 고봉현과 덕양현의 앞 글자와 뒤의 글자를 따서 고양현으로 정하였다. 일산의 옛 이름은 中面으로 그 이전에는 고봉현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1755년의 <고양군지>에도 모두 중면이라는 명칭으로 표기되어 있어 일산이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랬던 것이 후에 일산신도시로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일제가 임의대로 남긴 이름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문제라는 지은이의 말에 어느정도는 공감하게 된다. 신라 진흥왕 때 전국을 9주5경으로 나누어 고양지역을 한산주라고 했으며 후에 고봉현으로 개칭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하니 원래의 이름을 찾아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로움이 필요할테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한국어 발달 과정상 한민족→위대한 민족, 한글→큰글(위대한 글, 훌륭한 글, 높은 글), 한강→큰강(넓은 강) 등의 뜻으로 볼 때 한산(큰산)→고봉산→일산으로 변이된 것으로 보인다 는 지은이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하늘을 떠받들고 산다는 동네, 봉천동.. 달동네의 대표적인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의 봉천동은 옛날의 봉천동이 아니다. 새롭게 개발되어 아파트군단이 늘어선 동네로 변신했다. 그러나 여전히 못사는 동네처럼 불리워지는 이름이 싫어 거기 사는 사람들이 개명신청을 했고 새로운 이름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한때나마 그곳에서 살았던 나는 못내 섭섭함을 감출 수 없었다. 달동네 시절에 나는 그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봉천동과 신림동을 아우르는 그곳의 옛모습과 변천과정이 아직까지도 나의 기억속에는 뚜렷하게 남아 있다. 부자동네건 가난한 동네건 그 이름이 안고 있는 수많은 기억들은 이름이 바뀐다고하여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이 옛날에는 그랬었다는구나, 하면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그게 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만 치중하는 우리네 사회의 병폐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더디게 넘어간다고 지지대고개, 근심을 잊었다고하여 망우리, 제비꼬리를 닮았다고하여 연미정, 은혜를 갚고자하여 지은 절이니 봉은사... 등등등 수도없이 많은 이름이 저마다의 의미를 안고 생겨났다. 생긴대로, 보여지는대로, 느끼는대로 이름을 붙인다는 게 지금은 왠지 어설프고 낯설게 다가올지도 모르겠지만 정감어린 이름임에는 분명해보인다. 그 이름에 얽힌 우리 역사의 한조각을 들춰보는 재미도 괜찮았다. 지명이 품은 한국사 이야기를 시간날 때마다 하나씩 찾아보고 싶어진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