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여신 백파선
이경희 지음 / 문이당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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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제를 앞에 두면 어쩔 수 없이 일본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역사속에서 일본의 역사로 흘러 들어간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백제의 숨결을 일본에서 찾아내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일본땅을 밟으며 동분서주했을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실재하는 백제의 흔적은 보는 순간 무언지 모를 울컥함이 목을 치고 올라오는 걸 느끼게 한다. 가끔은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도 있다. 직접 보지않고 TV화면이나 사진을 통해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럴까? 하나된 공간속에서 함께 살아왔을, 그리고 함께 살아갈 우리를 같은 민족이라하니 아마도 그런 감정쯤? 그건 아닐 것이다. 분명 우리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왠지 낯선, 혹은 미덥지 않은 그 존재감이 그곳에서 오히려 환대받고 있음이 서글퍼 그럴수도 있겠다는 나만의 생각에 잠시 빠져본다. 그래서 문득 이런 물음표를 던지게 되었다. 역사의 한단면을 주제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어떤 사명감(?)과도 같은 느낌으로 초고를 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말이다. 그럴수도, 그렇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막사발은 말 그대로 막 만든 사발이다. 처음엔 밥이나 국을 담는 그릇이었다가 오래되고 금이 가면 막걸릿잔으로 쓰기도 했다는 막사발. 지금의 우리에게 청자나 백자와 같은 도자기가 그다지 가깝지 않은 느낌으로 전해지듯이 막사발 역시 그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잃은지 오래라 한다. 일본에서는 상당히 높은 값을 받는다는 막사발을 두고, 사실은 막 만든 것이 아니니 막사발로 불러서는 안된다는 말이 있다고 하지만 옛 것을 작금의 시선과 잣대로 평한다는 건 뭔가 잘못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속에서도 백파선의 혼과 정성이 담긴 세 개의 막사발이 등장하지만 바로 그런 의미를 찾아내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관심과 사랑이 있다면 굳이 명칭을 바꾸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이야기는 조선의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시작된다. 알다시피 우리의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가거나 건너간 것이 어디 한번뿐일까? 예로부터 조선과 중국의 도예기술은 최고였다. 옛날 일본의 실력자였던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우리의 막사발을 얼마나 중히 여겼는가는 여러 문헌상에서 이미 밝히고 있는 일이다. 그것을 만든 우리야 그들이 왜 그렇게 막사발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당시 일본사회의 문화적인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면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그릇을 일생 하나라도 만들면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던 일본 도공이 있었는가 하면 한번이라도 만져볼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하던 사람도 있었다하니 우리의 막사발 위세가 어떠했는지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일본에서 '이도차완(井戶茶碗)' 이라 불렸다던 막사발을 만드는 여자도공 백파선의 흔적을 따라가 그들이 어떻게 일본속에 적응하며 살아냈을지 한번 상상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국경을 초월한 사랑, 그토록이나 어려운 환경속에서 어떻게 살아냈을지, 그리고 어떤 사랑을 했을지 내심 기대가 컸던 책이다. 거기다 하나 더 보탠다면 가슴 시리도록 아팠을 우리의 도공에 관한 역사를 글쓴이의 남다른 시선과 문체를 통해 보고싶어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읽고나니 뭔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진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 하나가 빠져 있는 듯한 그런 느낌 말이다. 일본무사와 조선의 여도공 사이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거기에 머물렀던 우리 도공들의 아픔. 책은 담담했다. 바로 이거야, 하며 눈앞으로 책을 끌어당길만큼 진한 그 어떤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밋밋함... 그 밋밋함이 이토록이나 강한 아쉬움을 남기는 것일까? 모르겠다. 읽는 사람마다 제각각의 느낌으로 끝을 맺을테니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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