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금오신화 책상 위 교양 14
이가원.허경진 옮김 / 서해문집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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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에 담긴 글을 크게 나눠보면, 만복사에서 저포놀이를 한 이야기 : 萬福寺樗蒲記, 이생이 담 너머로 아가씨를 엿본 이야기 : 李生窺墻傳, 부벽정에서 취하여 놀았던 이야기 : 醉遊浮碧亭記, 남쪽 저승을 구경한 이야기 : 南炎浮洲志, 용궁 잔치에 초대받은 이야기 : 龍宮赴宴錄.. 으로 4개의 이야기가 어울어져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두 금오신화라는 틀속에 있는 글인데 4개의 글을 따로따로 알고 있었다는 게 이상하다. 금오신화는 금오신화대로, 이생규장전은 이생규장전대로, 만복사저포기는 만복사저포기대로.. 왜 그랬을까?  단순히 매월당 김시습의 작품으로만 외워왔던 학창시절을 떠올린다. 어디 이것뿐일까? 모든 교육의 방향이 비뚤어져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억지일까?

 

글마다 현실적이지 않은 주제를 안고 있다보니 우선은 지은이를 이해하는게 우선일 듯 하다. 매월당 김시습... 그를 생각나게 하는 특징을 조금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3세 때부터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여 한시를 지을 줄 알았고, 세종에게까지 알려질만큼 5세 때 이미 '神童' 소리를 들었다.  15세의 나이로 묘옆에 여막을 짓고 3년동안 어머니의 시묘살이를 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간의 무상함을 깨닫게 된 김시습은 불교에 입문한다. 당시의 시대가 유불교체기였다는 걸 생각하면 그의 작품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수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의 나이 21세 때 계유정난이 일어났는데 그 소식을 듣고 보던 책들을 모두 모아 불사른 뒤 스스로 머리깎고 중이 된 후 전국 각지를 떠돌게 된다. 死六臣이 처형되던 날 밤에 시신을 챙겨 임시 매장한 사람이 김시습이었다는 말이 전하기도 한다. 계유정난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이들로 朴彭年, 成三問, 李塏, 河緯地, 柳誠源, 兪應孚를 가리키는 死六臣과 金時習, 南孝溫(혹은 權節), 元昊, 李孟專, 趙旅, 成聃壽를 가리키는 生六臣이 있다. 死六臣이 죽음으로 충절을 표현했다면 生六臣은 한평생 벼슬하지 않고 단종을 위해 충절을 지킨 사람들이다.  현실에 불만을 품고 31세 때 경주의 남산인 金鰲山에 金鰲山室을 짓고 살았다. 이때 매월당이란 호를 사용한다. 근본적으로는 유교를 받아들였지만 불교적인 사상을 병행, 禪家의 교리를 유가의 사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지만  불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시기였음으로 후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불교와 도교의 신비적인 것을 부정하기도 했다.

 

그의 파격적인 삶의 여정을 살펴보면 자유스러웠을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지 행실이 그렇게 보였을 뿐 가슴속에 쌓인 울분을 어떻게도 할 수 없었기에 그런 파격적인 행보가 있었을거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자신의 뜻과는 부합되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불만을 작품속에 표현했다는 말이 오히려 깊이 와닿는다. 당시로 볼 때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내세웠다고는 하지만 유교적 가치관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사상적으로도 많은 흔들림이 있었을 것임은 분명할 터다. 세상사람들이 보기에 미친 짓을 했다는 그의 행적에 대한 옮긴이의 말처럼 그가 그렇게 된 원인이 자기가 신봉하던 忠臣不事二君의 유교적 가치관이 무너진 충격 때문인지, 자기 앞에 보장되었던 출셋길이 막히게 되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어느쪽으로 보느냐에 따라 작품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게 된다는 말에도 공감하게 된다.  "유교에 마음을 두면서도 불가에 몸을 맡기고 있었기에 당시에 괴이하다는 평을 받았다"는 율곡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시대가 바뀌었으나 지금인들 다를 게 없어보인다. 현실은 이론이나 이상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이렇게 글로나마 자신의 이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행복한 일일수도 있겠다는 혼자만의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구나 꿈을 꾸고 성공을 바라본다. 그러나 누구나 그 꿈을 이루고 성공하지 못하는 게 현실인 까닭이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이상의 실현이 아니라 현실로부터의 도피였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다.


금오신화는 선녀나 용왕, 지옥, 귀신과 같은 말을 통해 불교적인 냄새를 풍긴다.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만복사에서 부처님과 저포놀이를 하고 왜적의 침략 때 억울하게 죽은 귀신과 사랑을 하게 되는 양생의 이야기 <만복사저포기>는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천녀유혼>을 생각나게 한다.  이생이 담너머로 아가씨를 엿보고 사랑에 빠지지만 이별하게 되는 절절한 사랑 이야기 <이생규장전>, 평양을 무대로 부벽정에서 취하여 선녀와 놀았다는 이야기 <취유부벽정기>, 조선 초 유행한 지옥의 관념을 소재로 남쪽 저승을 구경한 이야기 <남염부주지>에서는 불교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생이 용궁잔치에 초대받아 여러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용궁부연록>... 모두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상상속의 이야기다. 하지만 작품마다 들어있는 시를 보면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충분히 현실적이란 느낌을 준다. -한생은 세상의 명예와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명산으로 들어갔다. 어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와 같이 주인공들이 세상을 등지게 되는 결론으로 끝이나지만 왜그런지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다가왔다. 고전을 그저 딱딱하고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아들녀석을 위해 마련한 책인데 내가 재미있게 읽었다. 덕분에 매월당과 <금오신화>라는 작품에 대해 다시한번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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