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여행 - 당신에게 주는 선물
이한규 지음 / 황금부엉이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오래전 지인들과 함께  해남 두륜산을 올랐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나란히 정상을 향해 올라오던 중년의 부부가 있었다. 작은 배낭 하나씩을 짊어지고 올라 온 부부에게는 중고생 자녀가 있다고 했다. 자녀들이 스스로 자신의 일상을 책임질 수 있을 때 틈나는대로 둘이서 이렇게 여행을 다니자고 했다던 오래된 약속을 들려주었었는데, 나도 결혼하면 저렇게 살아야지 하면서 부러워했었다. 그 기억을 이 책이 떠올리게 해 주었다. 여행... 듣기만해도 설레임을 안겨주는 말이다. 두근거리던 기다림의 순간은 왜 그리도 더디게 오는지... 하지만 그런 여행조차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어떤 마음으로 떠나는가? 누구와 함께 떠나는가? 어디로 갈 것인가?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나를 기다린다. 그래서 묻는다. 어느날 갑자기 당신에게 빈 하루를 준다면 어떻게 채우겠느냐고. 그리고 대답한다. 당신에게 그 하루를 선물로 주라고. 말이 쉽지 혼자 떠나는 여행이 녹녹지 않다는 걸 우리는 안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것 같다. 이 험한 세상에 나 혼자 떠나라고? 

 

지은이와 함께 떠났던 여행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하루라는 시간이 정해졌으니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 시간이 얼만큼이나 소요되는지를 따져 목록을 챙겼다.  편도 한시간이면 어디가 적당한지, 두시간이면 여기가 좋을 것 같다고 추천한다. 하지만 너댓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여정은 좀 그렇다. 가는 시간이 그러니 오는 건 당신이 알아서 하라는 말인 듯하다. 좋으면 거기서 더 머무를 수도 있을테니까. 그리고 어떤 성격의 여행을 떠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무언가를 보며 시간을 즐길 것인지, 오롯이 나만의 시간속에서 조용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찾을 것인지, 그런 결정은 온전히 내 몫이다. 기차를 타고 떠나는 즐거움과 차창밖으로 스쳐지나는 풍경을 가슴에 담을 수 있는 황홀함을 느끼고 싶다면 좀 더 멀리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하루'라는 시간을 전제로 내세웠으니 말이다.

 

책속에서 하루여행을 끝마치고 난 후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커다란 주제 세가지가 보인다. 벽화마을과 커피, 그리고 책... 한참 등산에 빠져 있을때 수리산 날머리에서 만났던 납덕골의 벽화를 기억한다. 그저 그림이 좋아서 아무 생각없이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벽화마을이었단다. 힘겨운 삶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가려볼까하여 시작되어진 벽화가 어느 틈엔가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었다는 그 좋은 취지가 나는 좋았었다. 그래서 몇 군데 일부러 찾아가 보기도 했다. 지금은 각 지방마다 내노라하는 벽화마을이 한개씩은 다 있지 싶다. 그런데 요즘은 그 벽화마져도 저마다의 특색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기도... 두번째로 커피향에 빠져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창 밖 풍경이 하나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그런 카페에서, 그것도 조금은 오래된 흔적이 머무는 공간이라면 더 좋을, 그런 곳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은 그야말로 호사다. 마음의 사치를 한껏 부려보는 시간.. 그런 여행이라면 함께여도 좋고 혼자여도 좋으리라. 가끔은 그런 여행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의 고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책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면 빠뜨리지 말고 동행해야 할 친구가 책이 아닐까? 책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해서 책이 없어야 한다는 법은 없을테니 말이다. 지금은 대형서점만 있다고 한탄 아닌 한탄을 하는 세상이지만 의외로 구석구석에 자리한 동네책방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한 모양이다. 헌책방, 오래된 책방... 말만 들어도 머리속에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는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 책방에 들러 한 권의 책을 들춰보기도 하고, 거기 한 귀퉁이 어디쯤에 자리잡고 앉아 따뜻한 차 한잔을 마셔보는 시간은 정말 행복할 것 같다. 그야말로 '文字香書卷氣'다. 그러고보니 하루여행이었지만 충분히 선물로써의 가치가 있는 여행이었다. 진정한 여행은 마음이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바쁘고 힘들게 몸을 움직였어도 전혀 피곤하지 않고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꼭 한번은 나도 가봐야지 생각하며 메모를 한다. 내가 있는 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항동철길은 나도 걸어봐야지, 문 앞에서 돌아서야 했던 만화박물관을 다시 찾아가 내 어린 날의 추억속에 빠져봐야지, 행궁동 벽화마을을 가보지 않으면 왠지 후회할 것 같아.... 지금은 많이 변했을테지만 정말 오래전에 가보았던 청평사에서 지금은 이름 석자도 기억나지 않는  그 날의 동행인들을 하나씩 기억속에서 찾아보고 싶어진다. 나한테 예산, 대전, 강릉, 대구는 좀 멀다. 시간에 쫓기는 발걸음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라 생각하는 까닭에.. 그래도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에 가서 그 마을의 정취에 한번 젖어보고 싶다는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적다보니 꽤나 많다. 언제 다 갈꼬?  내 기억에도 참 좋은 느낌을 남겨주었던 장소가 있다. 인천의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과 시흥의 갯골생태공원이다. 우연히 들르게 된 곳이었는데 거리도 멀지 않고 남는 여운이 괜찮아서 주변사람에게 많이 이야기 해 주곤 한다. 내게도 추천할 만한 곳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여기를 말하고 싶다. 덕분에 '하루여행'이라는 선물을 나에게 줄 수 있어 행복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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