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일기 - 인조, 청 황제에게 세 번 절하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6
작자미상 지음, 김광순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힘겹게 노를 저어온 송파나루의 사공에게 김상헌이 물었다. " 지금 나를 따르겠느냐? "  사공은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 .... 제게는 처와 아직 어린 딸자식이 있습니다"  그 말을 한 후에 늙은 사공은 김상헌의 칼날에 베였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휘돌아치던 장면이었다. 오래전 가슴 깊숙히 통증을 느끼게 해 주었던 김훈의 <남한산성>에서 그려진 문장들이다. 그 때 작가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묘사는 역사적 평가가 될 수 없다고. 하지만 역사라는 걸 이야기하면서 가명을 쓴다는 것은 더 치졸하다. 역사는 당시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처럼 이렇게 먼 후대에 나타나는 사람들에 의해 평가되는 것인 까닭이다. 아마도 학계의 두런거림을 경계한 것이리라. 하지만 오로지 자신을 감싸는 테두리로써 존재했을 왕을 위해 그 왕을 있게 해 주는 백성을 외면했다는 것은 그다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명분만을 내세웠던 사람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명분과 이유가 있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내게는 김훈의 작품속에서 그 혼돈의 과정을 겪어냈던 서날쇠의 숨결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훗날에 적진을 뚫고 산성으로 들어왔던 뱃사공의 어린 딸 나루를 보면서 김상헌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제가 죽인 사공의 어린 딸이 감내해야 할 그 삶의 무게를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나는 그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1636년 병자년의 겨울은 혹독했다. 산성을 에워싼 적병들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 와중에서도 그들은 말로써 전쟁을 이겨보고자 했다.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립은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 것인지 도무지 찾을 수 없는 안개속의 미로같다.  그 때 그렇게 명분을 앞세워 말싸움만 하지 않았어도 어쩌면 왕이 땅바닥에 머리를 찧는 참혹한 광경까지 연출해내지 않아도 되었을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때 그렇게 사실상 맞서 싸웠다고도 할 수 없는 어이없는 대결만 없었어도 성 안의 백성이 그토록이나 힘겨운 삶의 무게를 감내하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건 내 생각이니 말이다. 삼전도에 비를 세우기까지 50여일의 기록을 남긴 그는 누구였을까?  그는 도대체 이런 기록을 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편지를 찢던 김상헌이나 그 찢어진 편지를 다시 주워 붙이는 최명길이나, 그 때의 나라를 생각했던 마음의 깊이를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어느쪽이 더 실리적이었는가는 따져 묻고 싶은 것이다. 백성이 없는 왕, 백성을 바라보지 못했던 왕이 존재했던 시대의 아픔이다. 왕의 앞에서 장막처럼 드리워진 관료들. 눈이 되고 귀가 되어주어야 할 그들이 왕을 가로 막고 눈멀고 귀멀게 했던... 그들에게서 풍겨오는 썩은 냄새는 역사를 대할 때마다 역겹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을 지은 이를 유추해내는 부분은 정말 흥미로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을 지은 사람도 당시의 상황이 부끄러웠을거라고.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끝내 밝히지 못했을 거라고.

 

청나라 황제와 주고 받았던 편지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당시 조선의 편협함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편지글뿐만 아니라 책속에서 보여주는 각종 자료들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하나하나 주를 달아 세세한 설명을 해 준 것도 그렇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사진을 보여주고 있어 옛글이라 하여 어렵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이에게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뒷부분에서는 선조부터 인조, 효종까지의 선원록을 도표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지금까지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찾아보았던 조선시대의 주요관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 것도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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