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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는 잠들지 않는다
임종욱 지음 / 북인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서포 김만중.... 예학의 대가 김장생의 증손자. 숙종의 첫번째 부인 인경왕후의 숙부. 그러니 외척이 된다. 그의 어머니 또한 윤두수의 4대손이라 한다. 배경으로만 보아도 한자리 했었음을 익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 그가 이런 저런 이유로 유배를 가고, 마지막 유배지인 남해에 위리안치되었을 당시의 상황이 이 책의 배경이다. 그 와중에 어머니 윤씨가 병으로 죽고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한 그는 56세에 남해에서 숨을 거둔다. 그의 작품중에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구운몽>과 <사씨 남정기>가 또한 이 책속의 현실로 살아 숨쉰다. 소설이 또하나의 소설속에서 현실이 되었다가 또다시 소설로 재탄생되어진다는 조화가 교묘하게도 잘 어울린다. 이렇다하게 극적인 끌어당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몰입도가 강하다. 안개에 젖듯이 서서히 작품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그 기분 또한 과히 나쁘지 않았다.
이 소설속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김만중의 작품 두가지는 <구운몽>과 <사씨 남정기>다.<구운몽>은 주인공 양소유가 8명의 여인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 모두가 꿈이었다는 반전이 멋드러지게 보이는 작품이다. 꿈속에서 살았던 영웅의 길은 어쩌면 우리가 현실속에서 이루지 못한 이상일 것이다. 꿈일지언정 자신이 꿈꾸던 것을 이루었으니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결국 꿈에서 깨고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설정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사씨 남정기>는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하고 장희빈을 중전으로 책봉했던 사건에 대하여 쓴 작품이다. 숙종이 빨리 정신을 차렸으면 하는 바램을 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안에 녹아있는 권선징악의 의미는 상당히 큰 듯하다.
이야기는 김만중이 유배처인 남해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책을 읽기 전에 어쩌면 고전풍으로 엮어내지 않았을까 내심 조바심이 났었는데 의외로 책장이 잘 넘어갔다. 가볍게 일렁이는 파도처럼 남해에서의 일상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음이다. 어쩌면 그가 유배지에서 정말 저렇게 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막힘이 없다. 작가라고해서 왜 극적인 장치를 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가 받아들였던 유배처의 모든 일상을 통해 김만중이란 인물을 그려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왕실의 일족으로 상당한 권세가였을 그의 면모가 특별하게 튀지않고 남해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얽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또한 그를 찾아와 자신의 심중을 털어놓는 백성들의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마져도 느껴진다. 백성들과 얽히지 못하는 양반님네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잔잔함... 이 작품의 매력은 그 잔잔함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일상과도 같은.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