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뿔 1
고광률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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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격정의 세월이 있었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거리를 날아다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처음엔 너만의 일이었다가 점점 나의 일, 우리의 일로 변화되었던 그런 사건들이 하나둘씩 불거져 나오던 그런 때가 있었다는 말이다. "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 는 말도 안되는 말이 세상속을 떠다니고 우리는 너나 할 것없이 어이없음에 치를 떨었었다. 세상의 모든 고요가 모여들던 그 아침을 나는 기억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교복을 입고 등교하던 단발머리 여학생들의 궁금증이 풀리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일이 생겨났고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아닌 누구라 할지라도 그 영화를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화려한 휴가>... 그 영화가 개봉되고 나는 아들녀석의 손을 잡고 영화관을 찾았다. 어린 녀석이 무엇을 알까마는 엄마의 기억속에는 이런 일들도 있었단다, 말해주고 싶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원하지 않았던 일과 마주치는 순간도 있을거라고. 나 역시 그 공간속에 있어보지 않아 그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중의 한명일테지만 한시대를 살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은 아팠다. 정말 저런 일이 있었나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던 아들녀석의 목소리를 내가 기억하는 한, 많은 사람의 기억속에 아픔으로 남겨질 저 날들을 작가는 다시 되새김질하여 꺼내놓고 있다. 아직 다 삭지도 않은 그것에 대해 다시 말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그 마음을 가늠해보고 싶은 욕심이 인다.

 

5.18... 이야기는 처참했던 광주를 배경으로 두고 시작되어진다. 지방신문의 한 기자가 나이어린 깡패의 칼에 찔려죽고, 그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고자 하는 또 한명의 기자를 따라가며 무서운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과연 이 시대의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추리형식을 택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적인 묘사를 너무 장황하게 펼쳐놓아 짐짓 이야기가 늘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에 하는 말이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전해주고 있는 이야기속에서 긴장감이나 긴박한 그 무엇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자료조사와 수많은 수정을 거쳐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8년이나 걸렸다는 말을 보았다. 작가는 아마도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을 다 담아낼 수 없음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책속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돌아다니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알 수 없는 지루함이 밀려오기까지 했다. 무언가를 사러 재래시장을 갔는데 길 양편에 늘어선 상인들의 물건을 보며 아무것도 사지못한채 스쳐지나는 것처럼.  

 

말하지 않아도 눈치챌 수 있는 진실은 많다. 굳이 들춰내지 않아도 모두가 해답을 알고 있는 일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밖으로 끌려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를 미칠것 같게 만드는 일도 많다. 이 책속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가슴속에 구멍하나씩 안고 산다. 누구나 가슴속에 오래된 뿔 하나쯤 숨기고 산다. 그 구멍속으로 세월이라는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시린 가슴 부여안고 꺽꺽거리며 속울음 삼키는 순간이 있다. 누가 되었든 무슨 일이 되었든 하나쯤 걸려들기만 하면 그 감춰둔 뿔을 드러내 들이받아버리겠다고 벼르며 살아가고 있는 순간들도 있다. 이렇게 아픈 이야기가 잊혀질 수 없는 까닭은 나보다 더 큰 구멍, 나보다 더 오래된 뿔을 숨기고 사는 사람들 때문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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