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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아래 봄에 죽기를 ㅣ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일본소설을 읽는다. 어쩌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나를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제목조차도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던 책... 습관처럼 작가 이력을 찾아보았다. 48세의 이른 나이에 심부전으로 사망했다는 말이 보인다. 문득 우습지도 않은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그 작가, 꽃아래 봄에 죽었을까? 책표지의 이미지가 강한 느낌으로 다가왔기에 그런 질문을 생각해냈는지도 모르겠다. 아련한 기억과 현재가 함께 교차하는... 하지만 우리의 삶속에는 현재의 시선보다 아련한 기억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혼자 가만히 중얼거려본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왠지 쓸쓸했다. 스산한 봄... 그런 느낌이었다는 말이다. 등장인물 모두가 그렇게 외로운 현재를 살아내고 있는 것 같다.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뒷골목의 맥주바가 배경장소다. 거기 모이는 사람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다. 짧은 하이쿠가 각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어주는 듯 하다. 하이쿠... 일본 시문학의 일종. 5,7,5의 운율로 읊는 정형시. 일반적으로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인 키고(季語)와 구의 매듭을 짓는 말인 키레지(切れ字)를 가진다. 여운을 남기는 것이 특징이라고 되어 있다. 이를테면 우리의 七言絶句와 같은 것인가 보다. 그런데 이 책속에서 만나지는 하이쿠의 음률이 사실상 내게는 전해져오지 않는다. 그만큼 일본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이겠거니 한다. 시작되어졌나 싶으면 아주 짧게 그들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런데도 묘하게 처음과 끝이 맞물려 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이런 단편모음집이 조금은 껄끄럽다. 읽고나서도 무언지 알 수 없는 갈증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채워지지 못한 어떤 감정이 못내 나를 아쉬워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책에 손을 뻗은 건 순전히 제목탓이다.)
맥주바의 주인인 구도의 추리력은 정말 놀랍다. 펼쳐지는 여섯 가지 이야기속에서 주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서도 기가 막히게 수수께끼를 해결해낸다. 누군가 흘려놓은 단서를 슬쩍 줍기도 하고, 보일 듯 말 듯 던져놓은 미끼를 잘도 찾아낸다. 그런 그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참 많은 사람의 사연을 들어주었겠구나, 참 많은 삶의 형태를 바라보았겠구나 싶다. 누군가를 푸근하게 안아줄 수 있는 그런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마스터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긴 맥주바 '가나리야'에 모이는 사람 모두가 제각각 탐정이긴 하다.
추리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강하게 끌려들 만한 요소는 없어 보인다. 한 대 얻어 맞을 반전도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일뿐이다. 무겁지도 않고 깊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묘한 여운을 남긴다. 여섯 가지 이야기중에서 세번째로 들려주었던 '마지막 거처'가 가장 강한 분위기로 나를 이끌었다. 노부부가 삶의 마지막 거처로 삼았던 그 강의 끝줄기, 낡은 오두막, 그리고 반갑지 않은 손님 카메라맨.. 사진전의 포스터가 없어져버린 이유속에서 나는 우리 삶의 모습을 찾아낸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가 그렇게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포스터가 없어져 텅 비어버린 벽면처럼 그렇게 채워지지 않는 가슴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당연히 긴장감이나 전율을 느끼고 싶었다. 추리소설이었으니까. 그런데 잔잔한 삶의 한 모퉁이를 돌아 나온 기분이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