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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 - 부차트 가든의 한국인 정원사 이야기
박상현 지음 / 샘터사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책장을 열면 커다랗게 보여지는 이미지가 나를 맞이한다. 하얗게 보이는 길을 따라 걸어오라는 듯이. 정말 꿈결같은 그림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라고 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그들의 마음도 아름다울 거라고. 책장을 펼치면서 문득 내가 좋아하는 꽃을 머리속에서 헤아려보았다. 가장 좋아하는 목련, 수국, 다알리아, 그리고 향기와 빛깔이 고와서 사랑하게 된 프리지아까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송이가 큰 꽃을 좋아하고 있었구나 싶었는데 꽃도 편애를 하는 것 같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창 산으로 들로 쏘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 때는 눈에 띄는 작은 야생화가 좋아 야생화와 관련된 책을 사서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기도 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이름이 잘 안외워지던지... 도무지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꽃이름이 미워서 딴에는 꽃이름을 바꿔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기억이 나 빙그레 웃음이 나기도 했다. 야생화와 정원화는 분명 다른 것 같다. 꽃에 대한 갈증도 풀 수 있어 좋았다.
꽃만 열심히 들여다보았던 나의 우매함을 깨닫게 된다. 꽃만 보지말고 그 줄기와 잎도 보라고 열심히 가르쳐준 사람도 있었건만 내게는 왜 그렇게 꽃만 보여지던지. 그래서그런지 수국의 잎이 깻잎과 똑같다는 말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토양의 산도가 높으면 파란색 꽃이, 낮으면 빨간색 꽃이 핀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붉은 해바라기와 검정색에 가까운 꽃잎을 가진 튤립의 모습은 놀랍다못해 신기하기까지 하다. 놀랍고 신기한 것이 어디 그것뿐일까?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만 잔뜩 키워버렸다. 안타까웠던 점은 같은 꽃인데도 서로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는 거였다. 물론 한국식으로 바꾸어 부른다는 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단지 굳이 한국식으로 바꿔 부르지 않아도 될 듯한 이름이 보여 한번 해보는 말이다. 보는 사람의 시선까지 생각해가며 꽃을 가꾼다는 부차트 가든의 정원사들 이야기는 부럽기까지 했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릴 줄 아는 배려가 고스란히 녹아있어 내 마음까지 푸근해졌다.
집에서 작은 화분 하나라도 키워본 사람은 안다. 그 꽃이 우리의 사랑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를. 정성어린 마음과 손길끝에서 꽃이 핀다는 것을. 얼마전 가족행사가 많은 5월인지라 화원을 하는 지인에게서 아르바이트를 부탁받았었다. 첫날만 해도 황홀경에 빠져 감탄사를 연신 뱉어냈었다. 그런데 막상 일이 시작되고 시간이 흐르다보니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것도 참 어려운 일이겠구나 싶어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었다. 며칠동안이지만 경험삼아 한번 해 보겠노라고 나섰다가 쉽지 않은 일임을 알고 혀를 내둘렀는데, 책을 통해 자신의 일터를 소개하고 있는 지은이의 마음은 분명 나와 같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져 있어 읽으면서도 내내 기분이 좋았다.
책속에는 단순히 부차트 가든이라는 일터에서의 생활만 있는 게 아니다. 꽃과 나무의 이야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 꽃과 나무를 통해 먼 기억속으로 들어가 가족을 이야기하고, 친구를 이야기하고, 이웃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사는 이야기에는 情이 있다. 그 느낌이 그대로 나에게 전달되니 나까지 행복해지고 지은이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속에서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한송이 꽃을 통해 어린시절 즐겨보았던 만화를 다시 보았고, 없어지는 게 아까워 아껴먹던 그 시절의 과자를 떠올리며 입맛도 다셔보았다. 사루비아(샐비어) 꽃을 따서 그 꽁무니를 쪽쪽거리며 빨아먹던 옛이야기가 내게 미소를 선물해준다. 아련한 그리움이 바람결처럼 살랑거리던 시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 부차트 가든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으며 걸을 수 있어 행복했다. 한동안은 그 꽃들의 얼굴이 내 기억속에 머물것 같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