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일어서다 - 21세기 한국과 불교의 커뮤니케이션
손석춘 지음 / 들녘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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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가 썩어갈 때, 그것을 건강하게 할 책임이 네 군데 있어요. 종교계, 교육계, 언론계, 법조계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 네 곳이 더 썩지 않았습니까? 가장 많이 썩은 게 종교계지요. 그러니 모든 사람이 돈만 좇을 수밖에요." (-30쪽)

 

종교... 언제부턴가 우리는 종교이야기를 하면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심한 경우 자신의 종교를 자신있게 앞세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다.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해서라는 궁극의 목적을 잃어버린 탓이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수단이 되어버린 종교..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작금의 상황으로 볼 때 종종 종교인의 각성을 촉구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그 누구의 잘못이라고 꼬집어 말 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나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쓰러져가는 혹은 무너져내리는 어떤 것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누군가는 다가가야 하고 또 누군가는 힘을 써야하는 까닭이다.

 

얼마전 우연히 TV를 보다가 변해가는 유럽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다큐를 보게 된 적이 있었다. 불교적인 명상수행이 그들의 기도처에서 행해지고 있었는데 한 사람도 그것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했던 말이 생각난다. 종교를 통해 진정한 마음쉼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종교가 아니겠는가,라는....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 모든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같을테니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절집이 세상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말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책은 산중의 붓다가 이제는 '시장'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단순하게 형식적인 의미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종교가 기독교가 되었든, 불교가 되었든 세상속으로 걸어들어올 만큼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먼저 따져보고 싶은 것이다. 우뚝 선 모습으로 우리 삶의 지렛대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면 그것처럼 멋진 일도 없을테니... 변화를 위한 그들만의 노력도 책을 통해 알려주긴 하지만 세상이 소수보다는 다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니 쉽진 않아 보인다. 나와 다른 소수를 안아주지 못하는 세상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인 것을... 책을 읽으면서 내내 안타까움에 마음을 졸였다.

 

책을 읽던 중에 문득 생각나 표지의 그림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머리위의 초에서 흘러내린 촛농이 마치 부처의 굵은 눈물처럼 보여 보는 마음을 싸하게 만들었다. 저 부처는 떨어지는 촛농이 뜨거워 우는 것은 아닐까? 차마 눈을 뜨지 못한 채 굳게 다문 입술로 말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많은 의미를 담은 듯한 그림을 보면서 이 책이 종교서적인가를 묻고 싶었다. -21세기 한국과 불교의 커뮤니케이션- 이란 부제를 달아놓긴 했어도 종교를 빌미로 너무나도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까닭에 읽으면서 조금은 껄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종교와 사회적인 현상을 빗대어 말했는지 그 깊은 속내를 알 수는 없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이나 성철스님처럼 우리에게 이정표가 되어줄 인물이 없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큰 목소리로 시끄럽게 떠들지않아도 울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도 없을테지만, '불교적 시각'이라는 어려운 말속에서 '소통'이라는 열망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무리수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불자가 아니어서일까?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그랬다는 말이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 종교가 없다.  친구따라 주변따라 어린시절 교회에 나가본 적은 있지만 나이들어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 천주교인이나 불자가 되리라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때때로 성당이든 법당이든 들어가 기도하고 잠시 앉아 있기도 한다. 붓다의 가르침이 '지금 여기서'라는 울림을 줄 수 있다는 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책을 읽고 얄팍하게나마 전해받은 느낌이 있기는 있다. 하지만 책장을 덮으면서도 흔히 말하는 '진보성향'이라는 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방심하고 있다 돌려차기에 당한 그런 느낌이랄까?  내가 순수한 종교서적을 생각하고 있었던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말해 종교보다는 우리곁에 만연한 사회적 현상을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도 직설적으로. 뒤에 남는 여운이 그다지 명쾌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누군가의 손을 기다리고 있는 절박함에 공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이미 학습되어져버린 가치로 모든 것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교육의 현실은 또다시 나를 아프게 한다.  

 

'1+9=ㅁ' 와 같은 문제 유형을 보자. 우리가 흔히 비교하는 핀란드나 스웨덴 학교에서는 '1+9=ㅁ'와 같은 문제를 내지 않는다고 한다. 'ㅁ+ㅁ=10'의 유형이다. 1+9=ㅁ에서 ㅁ안에 들어갈 정답은 하나지만 ㅁ+ㅁ=10의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무궁무진이다. 1과 9나 2와 8만이 아니다. -48과 +58을 적은 친구도 나오고, 2.13과 7.87 따위로 적은 학생도 있다.(-181쪽 참조)

창의적인 사고를 외치는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몰라서 못하는 것은 아닐테니 더욱이나 그렇다. 다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해버리거나 나아닌 누군가가 나서주기를 바라는... 그 스님의 말씀처럼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불교의 존재원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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