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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무사 이성계 -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서권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시골무사라는 말이 선뜻 내 앞으로 달려나왔다. 시골무사라... 그리고 그 옆의 작은 이름 이성계... 책을 앞에 두고 나는 생각해보았다. 이성계라는 이름에 대해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물었다. 위화도 회군, 최영장군, 조선을 건국한 사람, 이방원, 함흥차사... 그 언저리만 맴돌다 말았다. 어쩌면 나에게 있어 역사라는 게 단편적인 조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그때문이었다. 깊은 속내까지 짚어내지 못하고,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던 순간이 너무 많았구나 싶어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이 책의 밑그림은 분명 사실일터인데 자꾸만 허구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혹스러웠다. 깊이있는 울림이 짧은 문체속에서 살아숨쉬고 있는, 그래서 단 하루만의 이야기였으나 너무나도 단단히 나를 조여오던 이야기. 그래서였을까? 그사람의 뒷모습이 그려진 마지막 그림은 너무나도 쓸쓸했다.
배경장면으로 깔린 살풍경.. 복잡해보이지만 복잡하지 않은.. 마치 어린시절 오빠와 마주앉아 실뜨기를 하며 하나씩 엮어가던 그런 느낌과도 같았다. 손가락마다 걸린 실 한 줄의 팽팽함과 오빠 손가락에 망처럼 걸린 실그림을 다시 내 손가락으로 옮겨오던 그 진지함이 책을 읽는 순간 나를 찾아왔다. 안풀릴 것 같아도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가며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고려가 왜 조선으로 탈바꿈해야만 했는가를. 물론 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의 고리처럼 조금 미흡했다고 느껴졌던 부분도 있다. 잠시 등장하는 어린 난이의 이야기속에서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죽고 죽이는 처절한 전쟁을 다루면서 순수함을 대표하는 아이의 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어했던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경기전에 위리안치당한 듯 하다던 작가의 말이 왠지 쓴소리로 들렸다.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두어두는 형벌이 위리안치다. 중죄인에 해당하는 사람을 이 형벌에 처했다. 그렇다면 이성계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어쩌면 죄인은 우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겉핥기식으로 대충 훑어내리는 우리의 역사인식을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소설 한 권 읽으면서 이 무슨 거창한 화두를? 그냥 내게 던지는 질문일 뿐이다. 우리의 역사속에서 살아숨쉬는 이름들을 적어도 위리안치만은 모면하게 해야 한다고. 그러고보면 우리 주변에 위리안치당한 이름이 수도없이 많다.
단 하루만의 이야기였다. 그렇게까지 나를 조여오던 이야기가... 책장을 덮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또다른 매체를 통해 재탄생되어질 수 있을까? 그 촘촘한 올무의 은근한 조임을 표현해낼 수 있을까? 종이책이었기에 가능했을 그 조임의 느낌을 오래도록 간직할 것 같다. 죄송한 말 한마디만 하자면 <남한산성>을 휘돌아치던 김훈의 마력같은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군더더기없이 깔끔한 문장들이 너무나도 좋았다. 가쁜 숨결을 함께 느낄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었다. 그 내면까지 들여다보지 못했던 한 남자의 고뇌를 함께 느껴보자고 이끌어주심에 감사드린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