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중앙동, 행운동, 성현동, 청룡동, 온천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좀 더 알아듣게 말해본다면 지하철 서울대입구역 부근의 동네이름이다. 설마했다. 그런데 정말로 이름을 이렇게 바꾸었다는 걸 이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이제는 번듯한 아파트촌이 되어버렸는데 봉천동이라는 이름이 달동네 이미지를 풍긴다는 이유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개명신청을 했다는 소식까지는 들어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이름이 바뀌었다. 하늘을 받들고 산다는 동네, 봉천동.. 산비탈길로 쭈욱 이어지던 판자집들.. 아주 오래전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신림동과 봉천동 사이에 커다란 산이 하나 있었다. 애들 교육만큼은 서울에서 시켜야겠다는 욕심으로 지방에서 올라오신 부모님이 서울살이를 하면서 무너져버린 가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쫓기듯이 찾았던 동네가 바로 봉천동이었다. 당시 봉천동의 은천국민학교에 입학을 시켰는데 신림동으로 이사를 가서도 오빠 손잡고 다니라고 전학을 시켜주지 않아 오빠가 졸업을 해버린 후에도 나는 혼자서 산을 넘어 학교를 다녔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산자락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처럼 아주 오래전의 기억을 안고 그 동네를 찾아가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 이름을 바꾸어달라고 신청했다는 소식을 듣고 왜 그렇게까지 하는거지? 했다. 단지 못사는 동네의 대명사처럼 불려지는 동네이름이 싫어서라는 건 내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근대사의 한페이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 않은가 말이다. 봉천동의 옥탑방에서 내 소설들이 몸을 풀었다고 말하는 소설가 조경란의 봉천동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된 기억을 한번 꺼내보았다. 그녀가 아직도 살고 있는 봉천동은 여전히 봉천동일 뿐이라고.. 내 인생의 도시라는 제목에서부터 책 속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듯하다. 나는 그냥 누군가에게 인상깊었던 동네기행쯤이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해 주었던 곳, 자신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아주었던 곳,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곳... 바로 그런 곳의 이야기였다. 읽으면서 순간순간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모두가 아픔을 안고 살아내는거구나 싶었다. 그들의 힘겨움을 함께 나누어들고 묵묵하게 받아주었던 도시들이 책 속에 있었다. <친구>라는 영화로 대박난 영화감독 곽경택이 소개하는 부산은 그야말로 삶 그 자체였다. 됐나? 됐다! 한마디면 끝난다는 부산사람들의 속내를 볼 수 있어 정겨웠다. 아주 오래전 난생 처음으로 부산역에 발을 디디며 설레였던 순간이 기억났다. 시인 함민복이 소개하는 강화는 일전에 신문지상에서도 보았었다. 강화나들길이 생겨 그 길을 안내하고 있던 함민복이라는 이름이 가물거렸다. 무언가에 반한다는 건 참 아름다운 것 같다. 어느 한순간에 느닷없이 가슴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아버리면 그 곳을 떠난다는 게 그리 쉽진 않은 모양이다. 내게 좋은 느낌을 남겨준 글의 주인공인 시인 안도현이 들려주는 전주이야기에 솔깃해졌다. 빠른 시일내에 가 볼 예정인지라 더 큰 울림이 있었던 것 같다. 전주는 역사의 도시다. 짧은 시간으로 돌아보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기에 여름여행으로 미루어 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전주가 어울림과 나눔의 도시라는 말에 왠지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한다. 시인 유홍준과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이 소개하는 진주와 해남 미황사는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곳인지라 마치 그곳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 설레이기까지 했다. 동대문시장을 글쓴이와 함께 어울렸을 화가 사석원의 말속에서 사람사는 냄새가 풍긴다. 민속학자 황루시가 소개하는 강릉의 또다른 모습을 보게되니 여간 즐겁지가 않았다. 도시는 유명한 관광지만 품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말고도 우리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틀림없이 있다. 그런 것들을 이 책속에서 보게 된다. 소개하는 사람 혼자만의 감정일지라도 이미 글을 읽는 사람에게로 전이되어져 오는 걸 느낀다. 그래서 판화가 이철수를 만나러 제천으로 달려가고 싶어지고, 이원규 시인을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산방에 가고 싶어지고, 서귀포 거센 바닷바람에 창유리가 휘어진다는 화가 이왈종의 거실에 한번 들러보고 싶어진다. 그들 모두가 입을 모아 한목소리처럼 말하는 것은 그 도시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는 거였다. 서울이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것들을 그 도시의 자연속에서 해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연은 그렇게 묵묵하게 사람을 안아주는데 사람은 어째서 그토록이나 매정하게 자연을 떠나고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의 도시에는 그들의 아픔이 함께 있었다. 인천엔 바다가 없다고 말하는 시인 김영승의 이야기에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생활이라는 전쟁터에서 깨치고 터져도 신음조차 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그가 겪어왔던 시간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세상 입맛과 타협하기를 거부한 그의 시들은 세상을 향한 독설과 풍자를 퍼부어대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내 속까지 후련해지게 만들던 지독히도 현실적인 그의 글이 참 좋았다. 그가 소개하는 도시 인천은 그의 말처럼 상처를 안고 희망을 바라보는 도시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인천의 이곳저곳을 한번쯤 다녀본 사람이라면 선악과 고저와 명암이 공존하는 도시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 같다. 김영승은 말한다. 미술관 하나없는 인천이 서울의 문화에 예속되기를 자청하는 게 안타깝다고.. 인천 바다에서 다시 '바위를 뚫는 우렁찬 파도소리'를 듣고 싶다고.. 그들은 한결같이 그들이 머무는 도시가 저마다의 색깔로 빛을 발하기를 소원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한가닥의 빛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들이 있어 그 도시들은 분명 환한 빛을 발하는 순간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게하여 그들의 아픔 또한 기쁨과 환희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소설가 정찬주가 머문다는 '耳佛齋'에 언젠가 한번은 찾아보리라 한다. 그래서 나도 그에게 한 수 배워보고 싶다. /아이비생각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 「반성 16」/ 김영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