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생뚱맞은 이야기부터 하자. 일전에 인왕산에 있다는 선바위를 찾아 간 적이 있었다. 나라의 큰일을 점쳤다는 국사당과 함께 둘러볼 수 있어 답사차원에서 잠시 들러본 곳이었다. 장삼을 입은 스님을 닮았다는 선바위는 무속신앙의 대상이 되는 바위이기도 하지만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전설이 전해지는 바위이기도 하다. 이 바위를 성 안에 두느냐 성 밖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그 의미가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읽게도 하는 전설이었다. 그곳으로 오르면서 나는 정말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무속신앙의 전설이 깊은 곳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지만 선바위까지 올라가는 길에 지속적으로 보이던 그 많은 무속인들의 거처는 기분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왠지 우리를 주눅들게 만들었었다. 어떻게 이런 곳이 없어지지 않고 아직까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구나 싶었다. 서울성곽 아래라서? 그것도 아니라면 인왕산 자락이라 개발이 허가되지 않은 지역이라서?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이건 밀어내고 보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이렇게 살아남은 곳도 있구나 싶어 놀랐던 것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아래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사라져갔다. 먹고 살기 바빠 우리의 문화 따위(?)는 따질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는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바라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허물고 보자는 식의 도시개발이 뭉개버린 우리의 옛숨결이 어디 하나 둘인가 말이다.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은 이 책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사라져가는 우리의 문화유산들을 안타까워하는 것 같아서다. 물론 찾아보면 아직은 많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피맛골처럼 특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무지와 외면은 뜻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 '~~~터' 라는 이름표만 덜렁 남겨놓고 사라져간 흔적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개발이라는 괴물의 발에 밟혀 무참히 죽어간 것들이다. 다시 복원한다해도 그 숨결이 그대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기에 안타까운 것이다. 책의 제목 '공간의 요정'은 바로 그렇게 죽어간 곳에서 살아가던 요정이다. 자신이 머물던 공간이 사라져버려 더이상은 숨을 쉴 수 없게 된 작은 요정들을 어찌어찌 살려보려 애쓰는 작은 소녀 송이의 이야기다. 그림이 이야기와 함께 가고 있는데 내게는 왠지 글보다 그림이 더 깊이 들어온다. 그 작은 요정들을 살려내기 위한 유일한 도구가 바로 '詩'다. '詩'를 쓰는 詩지렁이와 그 詩를 먹고 사는 작은 요정들의 꿈같은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요정들이 먹고사는 詩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채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情이다. 우리가 너무 쉽게 이야기하고 너무 쉽게 잊어버린.. 잃어버리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었던 그것...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불러보는 것... 그런거다. 그리 어렵지 않은 이야기다. 삭막한 현실속에서 무너져내리는 우리의 오래된 것들과 그 오래된 것들이 안고 있던 따스함.. 그러나 우리는 그 따스함을 아무 생각도 없이 버렸다. 행여나 눈이 마주칠까봐 외면해 버렸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우화라는 형식을 빌어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너무 어렵다. 너무 강한 은유가 오히려 독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생각하는 童話' 나 '어른을 위한 童話' 형식의 글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난해하지는 않았었다.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아주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던 형식이 바로 그런 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은 너무 깊다. 뭔가 보이기는 하는데 좀처럼 쉬운 느낌을 주지 않는다. 실타래처럼 꼬여있다. 그것을 내가 풀어가면서 읽어야 한다는 건 전문서적이 아닌 이상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고역이다. 답답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너무 돌아간 듯 하여 그것이 조금은 아쉽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