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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들의 전략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최성현 옮김, 미카미 오사무 그림 / 도솔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한마디로 끝내주게 경이로운 책이다. 사람의 삶과 다르지 않았던 풀들의 삶..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그저 스쳐지나거나, 혹은 우리 발밑에 깔려 죽어간다해도 눈길한번 주지 않았을 그런 풀들마저도 저마다 살기 위한 전략을 짠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살아남기 위한, 그리하여 모든 적들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그러나 그들에게서 욕심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살아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소개되어지는 풀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소중하게 내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늘 보아왔던 풀들이 저렇게도 이쁜 이름을 갖고 있었구나 싶었다. 가장 마음 아팠던 풀들은 원예용이었다가 자꾸만 밀리고 밀려 결국은 들판으로 쫓겨나야만 했던 꽃들이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저들만의 삶조차도 변화되어버리는 현실... 그것이 안타까웠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야생화를 사랑한다고 한다. 그래서 관심있게 바라보는 사람이 늘어갈수록, 크게 이야기하자면 자연이 살아나는 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될 식물.. 그 안에 속해있는 작은 풀.. 그리고 우리에게 잡초라고 불리워지는.. 하지만 그들은 정말 강인했다.
이 책에 소개되어진 이름만 기억해도 우리가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제비꽃, 큰개불알꽃, 별꽃부터 시작해서 매혹적인 입술을 내밀고 있는 광대나물을 보게 되면 정말로 그 꽃과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둑새풀, 살갈퀴, 쇠뜨기, 냉이, 민들레를 보면서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와 과연 무엇이 다를까 싶기도 하고, 귀화식물의 대표격으로 귀하신 몸으로 들어왔다가 새로운 꽃들에게 밀려 하나의 잡초신세로 전락하게 된 개망초의 기구한 운명은 또 어떤가! 살아남기 위해 수시로 전략을 바꿔야만 했던 그들을 탓하기보다 그들을 그렇게까지 만든 우리는 뭐가 그리 잘났을까?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광대수염, 클로우버, 새포아풀, 참나리처럼 본 것도 같고, 보지 못한 것도 같은 이름들... 지은이는 친절하게도 그들과 대면할 수 있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세밀화를 통해 그들의 작은 특징까지도 잘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마치 금방이라도 바람이 불면 살랑거릴 것처럼 보인다. 질경이 -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길, 타래난초 - 목숨을 건 전략, 쇠비름 - 기쁜 일이 있으면 문에 걸었던 풀, 닭의장풀(달개비) - 축구팀을 앞서는 조직 플레이, 개구리밥(부평초) - 떠돌이의 삶 처럼 저마다 나름대로의 특징을 살려낸 부제목과 함께 등장하는 풀들.. 그런가하면 아픔을 보여주는 제목도 눈에 띄어 다시한번 훑어보게도 한다.
강아지풀, 방동사니, 바랭이, 땅빈대, 반하(끼무릇), 피, 메귀리, 금방동사니 같은 풀들은 우리가 가장 흔하게 마주쳤던 풀인데도 불구하고 그림을 보면서 아하, 그게 이거였어? 하는 반가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쯤에서 퀴즈를 하나 맞춰보자. 나팔꽃이 먼저일까? 메꽃이 먼저일까? 이 책을 보면서 아차,싶었던 것이 바로 이 대목이었는데 보통은 나팔꽃이 먼저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 학교에서 관찰일기를 써야 할 때 곁에 두었던 꽃이기도 하지만 메꽃보다는 크기도 크고 우리 주변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는 꽃이 나팔꽃이다. 하지만 자연도감에서 나팔꽃은 메꽃과의 식물로 소개되어 있다고 한다. 비슷하지만 결코 비슷하지 않은 두 꽃.. 메꽃이 밭에 침입하면 엄청나게 성가신 잡초가 된다는데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전략 또한 엄청나다. 수를 늘리기 위해서 공포영화속의 주인공처럼 팔을 잘라도 다시 나고, 다리를 잘라도 다시 난다. 거기다가 잘려 떨어져 나간 팔과 다리마저 다시 살아나는 꽃이 메꽃이라고 하니 연약한 생김새와는 너무나도 다른 생존전략이다. 재미있게도 메꽃을 소개하는 부제목이 '그에게만은 지고 싶지 않다'이다. 나팔꽃을 겨냥한 제목같은데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어 살며시 웃음이 나기도 한다.
내게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던 것이 물옥잠과 물달개비였다. 자색의 수술이 오른쪽에 있느냐, 왼쪽에 있느냐에 따라 우형과 좌형으로 나뉜다는 물옥잠.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예측할 수 없는 잡초의 세계에서 좋다, 나쁘다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분별하기보다 다양성이 풍부한 쪽을 선택한다는 물옥잠. 그렇게 사는 물옥잠의 방식을 우리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절로 숙연해진다. 그런 물옥잠도 멸종 우려가 있는 동식물 시리즈에 이름이 올라 있다고 한다. 그토록이나 강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조차도 멸종될 기미가 보인다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울리는 또하나의 경종이 아닐까 싶다. 잡초가 모두 죽는 날 우리는 살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쓸모없이 만들어진 것은 없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잡초가 잡초답게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으랴, 고 말하던 지은이의 말도 그냥 흘려버릴 수만은 없는 말이다.
또 하나가 바로 아래 사진으로 소개하는 물달개비다. 영어 이름이 '워터 히아신스'다. 그만큼 히아신스를 꼭 닮았고 기품과 품격으로 가득 차 있는 꽃이라고 한다. 이 물달개비가 연못이나 도랑을 덮으면 다른 생물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버릴 만큼 무서운 꽃이기도 하다. 그런 꽃을 없애기 위해서 억 단위의 비용이 든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조건만 좋으면 일주일 만에 배로 늘어날 수 있는 무서운 생명력... 그런데 희안한 것은 이 꽃이 깨끗한 물에서는 살 수 없다는 거다. 더러운 물이어야만 살 수 있다는데 생활하수나 공업용 배수가 흘러든 물 속에는 질소나 인산과 같은 영양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물달개비가 질소와 인산을 흡수하는 힘이 대단히 강해서 수질 정화에 이용하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는 걸 보면 우리에게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물속의 오염물질을 자신의 체내에 받아들임으로써 물을 정화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꽃을 어찌할까?
↖ 물달개비( - 책 속의 그림)
사실 나는 이 책을 보기전까지 물옥잠과 물달개비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둘 다 물속에서 피는 꽃이긴 하나 분명히 얼굴모양새도 달랐는데 너무 쉽게만 생각했던 것 같다. 꽃에게 너무 미안하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평소 관심은 있었으나 궁금하다고만 생각했었던 풀들에 대해 알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이 책이 정말 마음에 들었던 것은 풀포기 하나마다 의인화해서 사람처럼 대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름은 있으나 불리워지지 못하고 이름없는 잡초로만 알고 있었던 작은 생명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지은이의 표현처럼 어쩌면 그리도 인간과 닮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들의 전략이 누구때문에 저렇게 지독스러워졌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때문이다. 인간이 저들을 저렇게 지독한 생활방식을 갖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동식물이 살 수 없는 세상은 인간도 살 수 없는데 우리는 그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싸아해진다. 옮긴이의 말이 또한 가슴을 울린다. 일본의 대학에서는 얼마전부터 잡초학이라는 학문이 자리를 잡게 됐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연구를 했던 지은이가 그 성과를 책으로 풀어쓴 것이라 한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잡초 50가지... 옮긴이의 말처럼 현대인의 삶은 자연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이런 책을 보면서도 에이, 뭐 이런 잡초를~~ 하며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나는 옮긴이의 말을 남겨주고자 한다. 절대 잊지 말고 기억해주기를... /아이비생각
"잡초는 지구의 건강에 긴급 사태가 생기면 달려가 처리하는 식물계의 적십자다. 다행히 지구가 위급한 상황을 넘기면 잡초는 성장 속도가 자기보다 느리지만 보다 크고 튼튼하게 자라는 나무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 알프레드 크로스비
"잡초는 가이아의 백혈구이자 부스럼 딱지이고 반창고이자 항생 물질이다." - 짐 놀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