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야의 달력 - 마야 문명 최대의 수수께끼에 얽힌 진실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 지음, 박병화 옮김 / 열음사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종말론, 어찌보면 꾸준하게 우리 곁을 맴도는 화제다. 그런데 이 세상이 끝나는 날이 정말 오기는 올까? 지구촌을 뜨겁게 달군다는 2012년의 세계종말론은 근거있는 이야기일까? 수도없이 많은 재난 영화를 보았다. 지진, 화산폭발, 쓰나미... 그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던 인간은 자연앞에서 너무나도 작은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영화들은 자연과 공존해야 한다는 작은 메세지를 전하고자하는 노력을 숨겨두었다. 종말론은 그것과는 본질 자체가 다른 것 같다. 2012년 12월 21일. 우리보다 훨씬 앞선 문명을 만들어냈다던 마야인들의 달력에 적혀 있다는 그 날짜가 왜 하필이면 이 세계가 망하는 날로 해석되어졌을까? 우리보다 더 발달된 천문학의 세계와 과학관을 보여주고 있다는 오래전의 문명은 많다. 나스카 문명, 잉카문명, 아스텍문명... 그런데 그들은 왜 사라진 것일까? 제대로 된 기록조차 남겨두지 못한 채 사라져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그런 것에 대한 왜곡된 사실과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 그러한 까닭에 나처럼 아주 단순한 호기심으로 이 책을 접하게 된 사람이라면 일견 당혹스러울수도 있겠다. 하지만 흥미롭다. 다 읽고나니 뭔가를 하나 얻었다는 생각에 조금은 우쭐해지기까지 한다. 온 인류를 지배할 수 밖에 없었던 달력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보자.
책을 읽기 전에 정말 마야의 달력에 세계의 종말이 적혀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었다면 과감하게 버려라.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아하! 하는 느낌표를 바로 찍게 될테니까. 일전에 <앙코르와트>에 대한 다큐를 실감나게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작, 방송되었던 것인데 정말 놀라웠다. 우리가 지금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규정해 놓은 것들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활발하게 진행되어지고 있다. <앙코르와트>에 대한 것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건축이나 구조물도 연구대상이기는 하겠지만 그 안에 새겨진 벽화나 부조(돋을새김)를 보게되면 더더욱 흥미로워진다. 그것들을 토대로 유추되는 고리들이 서로 맞물려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되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보지 못했고 가볼 수도 없는 시대에 대한 밑그림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기록조차 남겨지지 않았다면, 쉽게 흔적을 찾아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마야문명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착은 놀라울 정도로 강하다. 끝까지 파헤쳐 작은 조각이라도 찾아내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니... 그런 단편적인 조각만으로 모든 걸 말 할 수 없는데도 마치 다 얻은 것처럼 수많은 오류들이 쏟아져나온다. 바로 그런 오류들에 대한 바로잡기쯤이라고나 할까?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우리네 속담을 한번 생각해보자. 어설프게 떠도는 많은 오류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우롱하고 있는지.. 누군가는 숨겨놓은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그래야 '만들어지는 것들' 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본다면 2012년의 종말론에 사로잡힌 우리의 모습을 다시한번 반추하게 된다.
마야인들은 대단히 현실적이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면 과거라는 시간속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들은 다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 싶다. 달력이 나오고 시간개념이 생겨나게 되는 원인도 먹고 살기 위한 하나의 방책에 불과했다. 떠돌이 생활이 정착생활로 바뀌면서 그것에 대한 열망은 더 커졌을 것이다. 옛날에는 해보다 달을 더 큰 의미로 보았다고 한다. 달력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달을 연구하기 위해 천문학이 발달했고 그러다보니 시간에 관한 이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이사르가 이집트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클레오파트라라는 여인보다 그곳의 문화에 더 매료되었으며 그곳의 달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이야기는 내게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무지한 스페인의 병사들이 신의 이름을 내세워 마야인들을 파괴시킨 것은 기독교가 지독한 편견에 휩싸인 오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음을 대변한다. 그런데 더 경악스러운 것은 그 오만의 극치가 현재까지도 한치의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유럽이나 서구위주로 편향되었던 것들이 이제는 아시아나 아프리카를 말하기 시작했다. 수도없이 편집되어졌던 세계사의 줄거리가 하나씩 그 잘못된 베일을 벗어던지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도 고삐 풀린 가속화의 특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 시간과 속도전쟁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멈출 줄 모르는 속도앞에서 나 역시 불안함과 뜻모를 거부감이 생겨나고 더 심하면 화가 나기까지 한다. '속도의 독재정치'라는 말에 완전 공감하게 된다. 그런데 이 속도 중시 문화가 전세계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지금과 같은 속도전쟁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캐나다의 이누이트족의 언어에는 시간이라는 말이 없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오직 자연의 현상으로만 시간을 읽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인류의 조상이었기에 자연환경이 제공하는 기준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달력... 그 달력이라는 것이 바로 그렇게 주기적으로 변해가는 자연현상을 기록한 것에서 비롯되어진 것이었다. 거기에 아주 오래된 종교의 역사가 가미되었다. 인류의 조상들이 모셨던 신들이 모두 자연적인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현재도 그렇게 자연신을 우러르며 살아가고 있는 종족은 많다. 지금까지 인류의 달력 역사와 시간개념을 살펴보았지만 고도로 발달된 마야인의 달력이 종교와 정치, 장기적인 시간의 구성요소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들이 나타나는 것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기회를 주기 때문이야. 그자들이 나타나면 그걸로 끝이야. 사람들이 그들에게 자신을 다스릴 기회를 주거든. 진심으로 깨닫지 못한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어. 마치 눈먼 사람에게 무지개가 의미없고 아름다운 새소리가 귀머거리에게 소용없듯이"... 이 멋진 말은 마지막 장에서 들려주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속에 나오는 대사다. 마야의 달력이야기와 함께 들려주는 모모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모모효과에 비교한 마야력의 의미가 가슴 깊숙히 각인되어진다. 시간도둑인 회색도당과 용감하게 맞서 싸우는 모모가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앞을 내다보는 능력을 가졌던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도움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제 결론을 말한다면 2012년의 종말론은 호사가들의 말이라는 거다. 거기다가 종교적인 의미가 깊숙이 파고들어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이게 오직 나만의 결론에 불과한 말일까?
사람들은 자신의 구미에 맞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 이야기가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자극적인 소재라면 더할 나위없이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주변을 떠도는 말들을 살펴보면 사실이 그렇다. 정의보다는 이념이, 진실보다는 거짓이 저만큼 앞서가고있는 경기에서 결승선 안으로 누가 먼저 발을 들여놓게 될지는 아직 모르는 현재진행형이다. 기이한 것은 그 경기를 바라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앞서가는 존재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마음은 그게 아닌데, 생각은 그렇지가 않은데 라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무엇때문에 그 경기를 끝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일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빌어 말하고 있는 저자의 주장은 따끔하다.
저만의 주장에 맞춰 모든 것을 각색해버리는 사람들의 모양새가 그리 보기 좋은 건 아니다. 당시에는 그럴싸하게 포장된 것으로 보여질지는 몰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포장지가 뜯겨져나가면 원래의 모습보다 더 추해지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지금 당장의 만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종말론 역시 그런게 아니었을까? 지금보다도 더 과학적이었다던 마야인들의 문화가 든든한 뒷배경으로 깔려주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현혹당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제대로 확인 된 것이 너무도 적어 아직까지도 확언할 수 없다는 마야문명.. 온갖 의문점을 불러오게 된 그들의 문명을 통해 세상 바로보기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이 책속에 담아놓은 것 같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는, 그리고 한번쯤은 우리의 삶에 대해 되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2012년이 정말로 세계의 종말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80%정도나 된다. 그렇다고 내가 뭐 어떤 종교에 심취해서도 아니고 염세주의라서 그런것도 아니다. 한번쯤은 확 뒤집혀져서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그런 세상이 다시 시작되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오만한 인류가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류의 모습이라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아서.....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