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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개항부터 해방 후까지 역사를 응시한 결정적 그림으로, 마침내 우리 근대를 만나다!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1년 6월
평점 :
우리의 역사를 공부할 때마다 있는 듯 없는 듯 넘어가는 부분이 아마도 근대사일 것이다. 왜 그러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학자마다 다른 의견이 너무나도 많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것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겠느냐는 지극히 추상적인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서 의아했다. 우리의 역사를 누구 한사람의 시선으로 고정시켜 볼 수는 없는 일일텐데 학자마다 시선이 달라서라고? 그리고 아직은 해결되지 못한 일이 많은 까닭이라고? 너무나 편협적인 생각이다. 전체적인 그림으로 평가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하는 말이다.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시민의 사회가 성립되는 관점으로 근대사를 말한다면 우리의 근대사는 어디서부터가 시작일까? 아무래도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시점이 우리 근대사의 시작은 아닐까? 그렇게 따진다면 일제 강점기부터 우리의 근대사가 시작인 걸까? 철통같은 쇄국주의정책으로 대문을 걸어잠궜어도 서구문물은 우리 생활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서구문물을 받아들여야 했던 우리의 자세는 어떠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궁금증이 어느정도는 해소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장황한 근대의 이야기를 한장의 사진을 앞세우며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서고 있다.
이념과 이상이 대립하고 독립과 해방을 부르짖었던 지식인들의 움직임을 테두리로 서민들의 생활상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실제적인 그림속에 나타난 우리의 이야기들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을 통해 보았을 때 대체적으로 1800년대 고종의 시대부터 시작하는 우리의 근대사는 일본강점기라는 쓰라린 기억부터 훑어내린다. 황제로써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했다는 고종과 그와는 반대로 왕실의 친인척이라 하여 권세를 누렸던 사람들의 사치는 그야말로 극과 극을 달린다. 일본에 의해 망가지기 시작하는 우리의 모든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사람들.. 어쩌면 그들의 눈물과 외침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것이다. 타국의 화가들이 그려낸 우리의 역사속에는 나라잃은 백성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그 때까지도 살아숨쉬던 반상의 모습이 있었다. '모던 걸' 과 '모던 보이'의 말이 어떤 의미에서 탄생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毛短, 즉 머리가 짧다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어진 말이다. 단발령을 거부하며 상투 자르기를 마다했던 사람들속에서도 하나둘씩 늘어가던 단발머리.. 바로 그 짦아진 머리가 곧 우리의 근대를 대표하는 모습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대별로 엮어지는 굵직한 역사의 제목을 앞세우기 보다 그안에 담겨진 우리네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더 좋았던 시간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쉬움이 너무나도 많이 느껴지던 시간이었다. 세계가 알아준다는 고려의 비색을 모른 체 살아야 했던 조선의 도공들이 오히려 일제에 의해 비색을 알게 되는 모순이라니.. 우리의 서당이 없어지게 된 연유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때문이었다는 건 정말 서글픈 일이다. 일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말살하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아 세계문화유산이 되어준 종묘제례악은 길이 보존할 문화유산임이 분명하다.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그 때의 이화, 진명, 숙명, 경기등은 명문고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지금의 명문고는 내가 학생일적의 명문고와 의미가 다르다. 적어도 그때는 전통있는 학교를 명문고라고 했다. 그렇게 불리웠던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상세하게 알게 된다. 신여성과 모던걸들을 배출해냈던 여학교였던 까닭이다. 그 시절을 대표할 수 있는 절절한 사랑이야기도 한 몫 거들겠다고 나선다. 현해탄을 건너던 윤심덕과 김우진의 사랑이 있었고, 천재시인 이상과 당시의 모던걸 변동림의 뜨거운 사랑이 있었다. 그들의 사랑이 끝내는 아픔으로 귀결되지만 지금에 와서는 자유연애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곤 한다.
나 어릴적에는 크리스마스실이라는 것도 있었다. 결핵퇴치를 위해 벌였던 운동이었다. 36년이라는 일제강점기가 우리에게서 빼앗아간 것은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6.25라는 전쟁이 두번째로 우리를 할퀴고 지나간다. 같은 민족끼리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총을 겨누었다고는 하지만 따지고보면 힘없는 나라의 설움이다. 그 어렵던 피난살이에도 공부의 끈만은 놓치지 않았다던 우리의 부모님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애쓰던 흔적을 그림을 통해 바라보게 된다.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전쟁이 일어났듯이 휴전이 되었고 나라는 분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는 일어섰다. 새벽종이 울렸네 ♬ 새아침이 밝았네 ♪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 살기좋은 새마을 우리 힘으로 가꾸세 ♪ 어렸을 적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노래다. 그리고 혼분식장려로 인한 도시락 검사는 지금 나에게 하나의 추억으로 남겨졌다. 하얀 쌀밥위에 거무죽죽한 보리쌀을 한 켜 살짝 얹은 것을 선생님은 밥을 파헤쳐가며 검사를 하셨었다. 지금은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책을 다 읽고나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긴장의 끈일지도 모르겠다는... 편리함과 안일함에 젖어버린 지금의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망해가는 조선의 양반사회가 투영된다. 문벌주의와 연고주의가 판치는 지금이 그때와 너무나도 똑같다. 편을 가르고 싸우는 파벌싸움이야 어느나라나 같을거라고 제쳐놓는다해도 말이다. 오로지 저하나만을 생각하는 관료들의 행태 역시 마찬가지다. 백성을 우습게 알고 기술인을 홀대하는 세상.. 오래도록 제길을 찾지 못하고 흔들리는 교육의 현실 하나만 보아도 시름만 가득해진다. 제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상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싶다. 힘겨웠던 시대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였다. '함께'라는 말, '같이'라는 말, '더불어'라는 말...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할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는 말이다. 현재의 문제에 대한 답은 역사속에 있다는 말을 다시한번 떠올린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