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선인장 - 사랑에 빠졌을 때 1초는 10년보다 길다
원태연.아메바피쉬.이철원 지음 / 시루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추억 공사 중 사랑통행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현재 미련구간 복구공사로 인해 사랑통행이 금지되오니  다른 사랑을 이용하시거나 부득히한 분은 공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복구가 끝난다 해도 예전 같은 행동은 어려울 것 같으니  이 점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무슨 안내판같은 이 글을 문단띄기만 해주면 한 편의 詩로 다시 태어난다. 제목이 '복구공사'다.  앞의 글처럼 한동안 회자되었던 또 다른 詩를 소개해본다면 '상사병'이다. 
처음에는 예쁘게 시작되는 병  
조금 심해지면 약간씩 짜증나는 병 
거기에 더 발전하면 합병증까지 유발시키는 병 
완전히 중증이 되면 속이 새까맣게 타버리는 병  
그러나 안 걸리는 것보다 걸려보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는 병 
세월이 약이 되는 병... 특별한 표현법 없이도, 굳이 예쁜 말을 골라쓰지 않았는데도 한 줄, 한 줄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은유라는 걸 써서 드러내지 않고 숨겨두는 기법도 있긴 하지만 나는 왠지 이렇게 쉽고 편하게 다가오는 글이 좋았다. 그래서일까? 너무 어렵거나 너무 깊이 파고 들어야하는 짧은 글들은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말로 표현되어지는 글이 바로 원태연의 작품이 가진 매력이기도 하다. ( 뭐, 이건 나혼자만의 느낌일수도 있겠지만- )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사랑해요 당신이 나를 생각하지 않는 시간에도>... 그가 발표했던 작품들의 이름조차도 너무나 애틋하게 다가왔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랬던 그가 다시 돌아왔다. 원태연이라는 이름이 반가웠다. 벌써 10년도 훌쩍 넘겨버린 시간속에 존재했던 이름... 책꽂이에는 가끔 들러주는 나의 손길을 기다려주는 작은 시집이 있다.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그렇다고 맨날 사랑타령만 했던 그가 아니다. 詩라는 걸 제대로 알기 전인 학창시절부터 그와 함께 했다던 글속에서 젊은이의 패기를 느껴볼 수도 있다.  - 아리랑은 없어도 가라오케는 언제나 만원이다 건빠이는 외쳐대도 지화자를 외치는 이는 없다 로바다 야끼가 포장마차보다 많아진다 사찌꼬는 따라 불러도 우리의 소원을 부르면 어색하다 우리 스스로 다시 한번 식민지가 되려고 구슬땀을 흘려가며 아주 광적으로 노력들을 하고 있다. - '대가리가 단단한 건지Ⅰ' 라는 작품인데 시절이 많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가하면 우리의 힘겨운 삶도 들어있다. 
같은 말인데
골프 치고 온 아줌마와
생선 팔다 온 아줌마는
왜 표정이 틀릴까  
왜 그럴까? ...  '공쳤어'라는 제목을 가진 이 詩속에 들어있는 속내는 들춰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같은 말인데 하늘과 땅처럼 멀기만 한 그 느낌을. 기쁨과 슬픔처럼, 행복과 불행처럼 같이 가기는 하지만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어떤 것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다시 돌아온 그의 작품 <고양이와 선인장>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보여진다. 비를 피할 수만 있다면 어디에서도 잠을 잘 수 있고, 먹을 수만 있다면 쓰레기통 뒤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길고양이의 이름은 '외로워'다.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가 바쁘다는 말만큼이나 많이 입에서 뱉어내는 말이 바로 '외롭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게 길고양이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주인공  선인장 '땡큐' 역시 우리의 자화상일 것이다. 움직일 수는 없으나 너무나도 많은 외로움과 기다림에 익숙해진 사랑을 그 안에 품고 있다.  누군가의 아픔을 고스란히 제 몫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땡큐'는 어쩌면 희생이 필요한 사랑의 속성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시 태어난다면, 이라는 전제를 내세운 질문이 서글프다. 길고양이는 선인장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선인장은 하얀 길고양이로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는 그 대목에서 잠시 가던 마음을 멈추게도 한다.

마침내는 쓰레기봉투에 버려진 선인장을 따라가며 마지막 힘을 다하던 길고양이 '외로워'는 쓰레기더미 위에서 따가운 선인장의 가시를 끌어안고 잠든다. 잠들어버린 그의 이야기가 반전처럼 펼쳐지던 다음 이야기는 짧은 순간 내 가슴 한켠을 싸아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또 한번의 실수를 용납할 수 없어서 용기있게 도전할 수 있었던 사랑이야기.. 그 이야기속에서 나는 다시한번 원태연이라는 이름의 마력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역시 다시 만나길 잘했다. 이 책 속에서는 글과 그림이 교묘하게 서로를 감싸준다. 그림이 있어 글이 존재하고, 글이 있어 그림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전해받는다. 까만 종이위에 노란 별만 콕콕 찍어놓은 두 쪽의 그림을 보면서 어쩌면 시인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 제 이름은 땡큐예요. 고맙다는 뜻이래요. 저에게 가끔 물을 주고 내 기분을 궁금해해주던 남자아이 철수가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땡큐라고 지어줬어요. 고마워요... 나 이제 하나도 외롭지 않아요 -  /아이비생각 


행복 만들기   - 원태연 -

화장실에 앉아
담배에 불을 땡기고
신문을 펼쳐드니
이 시간만은
누구도 안 부러운 거 있지
근데 이게 웬일이야
나오자마자 시작되는
이 걱정거리들은
역시 사람은
무언가에 열중해 있을 때
가장 행복하지 싶어
해서 생각한 건데
행복이란
생각하기 나름이지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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