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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여행, 길 위에서 달콤한 휴식을 얻다
정인수 글.사진 / 팜파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여행에 대해 한번 생각해본다. 여행... 우리는 왜 늘 여행을 꿈꿀까? 그렇게 꿈꾸었던 여행길에 오르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행복해지는 것일까? 그런게 아니라면 여행의 참목적은 무엇일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 여행이라는 말 앞에 무언가를 더 붙이기 시작한 것 같다. 테마여행이라는 둥, 쉼표여행이라는 둥... 하지만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 이유는 단 하나일 것이다. 쉬고 싶다는 것, 그리고 일탈.. 어찌되었든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여행이다. 그래서 일단 여행가자고 하면 콘크리트 건물이 많지 않은 곳이어야 하고, 자동차의 매연을 피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고, 맑은 공기를 내뿜는 초록의 매개체가 많은 곳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항상 따라붙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진 않다.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결코 일상을 놓지 못하는 까닭이다. 유행가도 있다. TV도 없고, 라디오도 없고, 전화기도 없는 그런 곳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자연주의라는 게 뭐 별거냐? 우리가 문명이라고 생각하는 편리함으로부터의 놓여남이 바로 자연주의지!
몸과 마음이 함께 즐거운 여행이 분명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여행을 떠날 것인가? 어떻게 떠날 것인가, 어디로 떠날 것인가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마음으로 떠나는가는 더 중요한 일이다. 콘크리트 건물이 싫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편안함과 편리함을 놓아버릴 수 없어 나무밑의 콘크리트 건물을 다시 찾아간다. 자동차의 매연이 싫다고 하면서도 절대로 자동차를 두고 가지는 못한다. 유기농이나 웰빙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흙에서 직접 뽑거나 뜯는 나물을 달게 씹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여행은 언제부터인가 눈과 입만 즐거운 여행이 되어버린 듯 하다. 여기서 즐겁다는 건 나를 길들여놓은 모든 것이 그대로 재연되는 것이다! 하지만 글쓴이가 주장하고 싶어하는 여행은 그런 여행이 아니다. 마음이 쉴 수 있는 여행.. 마음도 즐거운 여행.. 바로 그런 여행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그런 여행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보자'는 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를 책을 읽는 사람에게 묻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산을 찾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산에 오르는 것을 접어야 했다. 약간의 무리수가 따랐던 모양이다. 한창일 때는 몰랐던 부분들이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해 이제는 무언가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따지는 것이 많아져 버렸다. 그리고 다시 '떠남' 에 대해 생각해보는 여유가 생긴 듯 하다. 일탈이라는 건 그렇게 큰 주제가 아닌데 너무 크게 생각했다는 걸, 여행이라는 것 역시 일탈이라는 말처럼 너무 무겁게만 생각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행복은 아주 작은것속에 존재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주변의 모든 것들속에 행복은 존재하듯이 가까운 곳이어도 좋고, 먼 곳이어도 좋은 게 일탈이고 여행인 것이다. 단지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떠나는가에 따라 머무는 곳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말이다. 온전히 그 길 위에 나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건 정말 행복한 여행길이며 일탈인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작년 여름의 여행길이 생각났다. 우리 가족에게 진정한 행복과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던 그 순간이... 새벽에 가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한마디 때문에 일찍 일어나 걷게 되었던 고창읍성길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밤새 내린 비가 반짝이는 구슬로 변해 선물처럼 나무에 매달려 우리를 행복하게 했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던 그 안개속의 작은 길은 서로의 손을 찾아헤매게 만들었었다. 더이상의 말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흙과 안개와 빗방울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여행은, 떠남은 그런게 아닌가 싶다. 즐길 수 있는 마음과 머무는 그 곳과 하나될 수 있는 마음이면 족하다. 봄꽃을 보러가는 수많은 북적거림을 버려도 좋고, 미친듯이 흔들어대는 여름바다의 광란속에 나는 없어도 괜찮다. 울긋불긋함보다 사람머리의 검은 빛이 더 많은 가을단풍길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이 책으로 인해 작은 추억의 길을 다시한번 걸어보았다. 행복했다. 남편과 아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었던 그 때의 이야기가 있어 정말 좋다. 즐길 수 있는 마음만 있다면 일탈은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온전히 나를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게 여행인 것이다. 멀고 가까운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작은 것속에서도 느낌표와 쉼표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금상첨화다. /아이비생각